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마르 4,26-34.)

2013. 2. 1. 오전 8:11:31

글자

 

2013년 2 1일 연중 제3주간 금요일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마르4,26-34)

 

말씀의 초대

신앙의 여정 안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그것을 기쁘게 인내해야 한다. 온갖 모욕과 환난을 참았던 지난날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하느님을 희망해야 하는 것이다(제1독서).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그만큼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하느님의 나라는 너무나 미약하기만 하다. 그러나 겨자씨가 어떤 식물보다도 크게 자라는 것처럼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그분의 나라는 창대해질 것이다(복음).

☆☆☆

사람들이 빛을 받았다는 것은 진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은 것을 말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신자들의 과거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회상시키며, 온갖 어려움과 박해를 잘 견디어 나가도록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제1독서). 하느님 나라는 마치 땅에 나무가 자라듯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새 훌쩍 자란다. 아주 작은 겨자씨도 자라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커진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다(복음).


 
오늘의 묵상

“혼인하고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홀시어머니와 외아들 사이에서 시집살이를 하며, 병 수발까지 해야 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1코린 13,4)라는 구절을 마치 씨앗처럼 가슴에 심고 묵상하며 어려움을 견디어 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인내하며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순간들이 제가 하느님 앞에 가장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을 보낸 때였습니다.”
한 자매의 신앙 고백입니다. 말씀을 씨앗처럼 품고 자신의 삶을 통해 물 주고 가꾸어, 지금은 가족 안에 평화와 기쁨의 열매를 맺었다는 나눔입니다. 신앙이 없고 말씀이 없었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한 그루의 나무를 가꾸는 심정으로 살아 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주십니다. 다 자란 큰 나무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슴마다 하느님 나라를 열어 줄 믿음과 희망, 사랑의 씨앗을 주십니다. 우리가 비록 돌밭 같은 마음을 가졌을지라도, 우리 안에 심긴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물 주고 가꾸면, 어느덧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우리 자신이 큰 나무가 됩니다.
주님께 의지하는 믿음, 주님을 향한 희망 그리고 이웃을 품어 주는 사랑의 마음이 자라면 우리가 큰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이 나의 넉넉한 그늘 아래 쉴 수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바로 그렇게 자란 우리 큰 마음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

 나무는 저절로 자라는 듯이 보입니다. 때가 되면 잎이 나고, 시간이 흐르면 큰 나무가 되는 듯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저절로 자라는 듯이 보일 뿐입니다. 보이는 나무 뒤에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습니다. 나무의 성장은 뿌리가 좌우합니다.
뿌리는 땅속에 있습니다. 지하에 흐르는 물과 영양을 빨아들여 줄기로 보냅니다. 그러니 뿌리의 활동이 멈추면 나무는 절대로 자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면 이미 뿌리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나무에도 뿌리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모르는
자신만의 시간입니다. 그 부분이 튼튼하면 줄기는 자동적으로 건강해지고 꽃은 당당하게 피어납니다. 보이지 않는 기도 생활입니다. 드러나지 않게 성사 생활에 힘쓰는 것입니다. 남모르게 베푸는 선행이 신앙이란 나무의 살아 있는 뿌리입니다.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된다고 했습니다. 작은 믿음도 정성으로 다가가면 큰 믿음이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정성 역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잘할 때 빛을 발합니다. 강한 겨자 나무도 뿌리가 시원찮으면 자라날 수 없습니다. 언제라도
보이지 않는 부분보이는 부분을 좌우합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하느님의 나라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 마치 씨앗이 자라나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씀입니다. 씨앗 하나가 자라나 열매까지 맺는 과정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씨앗을 심은 바로 그다음 날에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마치 아기를 가지면 그 순간 바로 출산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 달 가까이 임부의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본디 생명력을 가진 것들은 제빵기에서 빵이 툭툭 나오듯이, 인쇄기에서 인쇄물이 연이어 찍혀 나오듯이 생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바로바로 생산되는 것은 물건이지 생명체가 아닙니다. 생명력이 있는 것은 반드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사랑이 한층 완전하고 깊어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믿음, 용서, 사랑과 같은 생명력 있는 것들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씨앗처럼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용서가 잘 안 된다고,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기 어렵다고 좌절하지 맙시다.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그 모든 것이 자라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겨자씨

<자연의 순리에 따라>

양승국신부-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 바라볼수록 안타깝습니다. 한창 꽃피어나야 할 그들이건만, 엄청난 무게의 짐을 하나씩 등에 지고 지척지척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갈팡질팡하는 교육정책, 교육철학의 상실, 설설 기는 공교육, 하늘높이 치솟는 사교육, 교육의 총체적 위기 상황, 그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우리 청소년들입니다.


그러나 한숨만 쉬고 있어서는 안 될 이유가 있습니다. 이토록 열악한 교육풍토 속에서도 우리 청소년들을 위해 묵묵히 자신을 불사르고 있는 ‘참스승’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끝없이 인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시작하는 ‘참스승’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선생님을 뵙고 참으로 기뻤습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아이들을 끔찍이도 생각하는 스승입니다.


아이들보다 1시간 먼저 학교에 도착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기다리는 스승입니다. 마음이 쓸쓸하고 허전한 아이들을 날마다 따뜻하게 안아주는 스승입니다. 울고 있는 아이들의 눈물을 매일 닦아주는 스승입니다.

아이들의 담임교사이자 국어교사, 상담교사이면서도 부모로서의 다중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한 스승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방학이 오면 선생님은 아이들을 위한 보다 유익한 교육 자료 수집을 위해 길고도 긴 여행을 떠납니다. 다양하고 풍부한 볼거리로 가득 찬 수업에 아이들은 무척이나 행복해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참으로 감명 깊었습니다.

“인간은 홀로 고립된 섬이 아님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날은 애인을 만나러가는 여인처럼 아침부터 마음이 달뜹니다. 아이들의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제겐 가장 좋은 보약입니다.”


오늘 복음은 청소년들과 매일 삶을 나누는 부모나 교육자들에게 참으로 의미 있고 유익한 내용의 복음입니다.

오늘 복음은 인간교육이 강제로, 억지로,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순리에 따라, 자연스런 흐름에 따라, 적절한 분위기 안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 섭리의 손길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아이는 전혀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데, 부모나 교사만 욕심에 가득차서, 이것 저 것, 수많은 잡다한 것을 주입할 때, 아이의 머리는 당연히 혼란 상태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차근차근, 아이의 상황을 살펴가면서, 섭취된 것에 대한 소화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안색을 봐가면서,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가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오늘도 아이들 때문에 고생이 많으신 부모님들, 교육자들, 다른 무엇에 앞서 인내의 덕을 쌓아나가시길 바랍니다. 때로 하느님께서 활동하실 영역도 마련해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오늘 우리 아이들이 모자라고 형편없어보일지라도 인내하고 또 인내한다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면,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풍성한 결실 맺을 날이 반드시 올 것임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자라는데...

-오상선신부-
 

옛적 수련장을 처음 맡았을 때 수련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겠노라는 야심(?)에 많은 책을 들고 강의실에 들어선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형제들을 '잘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키우는 일을 맡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이 생각은 너무도 잘못되었음을 깨달아가게 되었다.
형제들은 저절로 크는 것이지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형제들은 서로 배우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하느님께서 그들을 키우는 것이지 수련장이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점차로 <교육무용론>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부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아무리 훌륭한 교육자라 하더라도  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 - 15%밖에 되지 않는다는 교육학적 진리(?)를  체험적으로 깨달은 결과였다.

그때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한 책임감에서 형제들을 양성시키기보다는 실질적인 양성가는 성령이심을 정말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식 키우기가 참으로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애들은 누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실 스스로 크는 것이다. 스스로 자라고 나이먹고 배워나간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무언가를 키운다고 생각하기에 그 결과에 연연해 하는 것은 아닐까?
수련자가 훌륭하면 마치 '내가 교육을 잘 시켰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하면 '내 탓이오' 라고 생각하고 그 결과에 따라 웃고, 울고 한다는 이야기다.
자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느님 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 세상을 위해,  하느님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하느님 나라는 저절로 자라난다.
아니, 하느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것이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님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키울 수 있고  내가 이룰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있고 하느님 나라가 무엇과 같은지도 확실히 깨달을 수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어주시는 선이나 결실이 있다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자.
혹 우리를 통해 좋은 결실이 없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아직 하느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아니, 어쩜 아직 싹이 트고있고  거름을 주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자.

이렇게 그 어떤 결실에 대해서도 집착과 판단을 버릴 때 우리는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진정으로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기뻐 용약하게 되리라.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 마르코 4,26-34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반영억라파엘신부

한 유치원 원장님이 아이들에게 꽃씨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제일 예쁜 꽃을 피워온 아이에게는 멋진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내가 제일 예쁜 꽃을 피워야지!’ 하며 신이 났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아이들은 꽃이 활짝 핀 화분을 들고 왔습니다. 그러나 원장님의 표정은 이상하게도 밝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빈 화분을 들고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저는 게을러서 꽃을 못 피웠어요!”원장님은 그제서 환하게 웃으시며 그 아이에게 멋진 선물을 주었습니다. 나누어준 씨앗은 싹이 나지 않는 가짜였던 것입니다.

정말 싹을 틔워야 할 것은 우리의 진실한 마음 입니다. 사실, 씨앗이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면 아무리 기다려도 싹은 트지 않습니다. 또한 씨앗 자체의 신비로운 힘을 믿지 않는다면 씨앗에서 싹이 트고 새싹이 돋아나도록 땅을 가꿀 이유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를 희망하면서도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씨앗이 땅에 묻혀 모든 것이 끝나고 정지된 것처럼 보일 때 땅 속에 있는 씨앗은 은밀하게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지금 당장 밝히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싹을 틔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좋든 나쁘든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수고와 땀, 희생 봉헌이 미약해 보일지라도 결코 작지 않음을 기뻐해야 합니다.

겨자씨가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씨의 크기는 0.95-1.6밀리미터=보니까 아주 먼지 같아요!)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되듯이(마르 4,32) 우리의 정성도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는‘하느님 나라의 시작은 비록 작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그 끝은 장대하리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실제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무리는 작고 초라하게 시작되었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포함하는 교회공동체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선을 행하고 진리 안에 자유로워야 하겠습니다. 겨자씨 한 알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들어있듯이 우리의 사랑과 희생도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참으로“사람은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요한3,27).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겠습니까?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로마11,35-36).

불신이 가득한 이 세상에 빈 화분을 들고 눈물을 지을 수 있는 진실됨으로 하늘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진실 됨이 있으면 바로 그 자리가 하느님의 나라요, 불신과 거짓으로 서로를 경계하면 그 곳이 지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쑥쑥 자라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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