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0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자, 들어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을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 먹고....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잘 자라 열매를 맺었는데,
열매가 삼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백 배가 된 것도 있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마르코. 4,1-20)
말씀의 초대
구약의 사제가 드리는 제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제사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구약의 제사로는 죄의 온전한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31,33-34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법이 우리에게 주어짐으로써 더 이상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제1독서). 뿌려진 모든 씨가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길이나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는다.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들만이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하느님의 말씀도 듣는 이의 태도에 따라 열매를 맺기도 하고 맺지 못하기도 한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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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사제들은 수없이 많은 제사를 바쳤다. 그렇지만 모든 죄를 다 없앨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의 제사로 인류의 죄를 모두 없애시고 거룩하게 해 주셨다. 예수님의 위대함이다(제1독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관한 비유다. 여러 형태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충실하게 받아들이는 이가 드물다는 이유다. 하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많은 결실을 맺는다.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만큼 은혜가 충만하다는 가르침이다(복음).
오늘의 묵상
자연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기에 아름답습니다. 싹을 틔울 때가 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틔웁니다. 잎을 떨어뜨릴 때가 되면 반드시 그렇게 합니다. 그러기에 화려한 꽃을 피우고 알찬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여간해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화려한 꽃은커녕 평범한 꽃도 피우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할 것’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노력 없이 주어지는 은총은 없습니다. 어떤 이가 무심코 축복을 받는 것 같아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누군가 그를 위해 기도했거나 본인이 남모르는 선행을 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좋은 땅이 되어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마다 좋은 땅이 되는 길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참는 것이고, 어떤 이는 베푸는 것일 수 있습니다. 믿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주님께서 알려 주십니다.
야생의 풀은 바람이 불면 바람보다 먼저 눕습니다. 길을 비켜 줄 줄 아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자연이 주는 건강함이 있습니다. 신앙인도 하늘만 믿고 살아야 진정 건강한 신앙인이 됩니다. 자연스러운 인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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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대한 성자가 외투 하나만 걸친 채 곳곳을 동냥하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금으로 된 동냥 그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때 자신의 제자였던 임금이 선물한 것이랍니다. 어느 날 폐허가 된 절에서 잠을 청하던 성자는 기둥 뒤에서 자신을 염탐하고 있는 도둑을 발견합니다. 그러자 낮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자 여기 동냥 그릇이 있소. 탐나면 가져가시구려. 그래야만 단잠을 방해받지 않을 것 같소.” 그러고는 손을 뻗어 황금 그릇을 내밀었습니다.
그릇을 받아 쥔 도둑은 황급히 사라집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도둑은 되돌아와 성자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지난밤 당신은 이 그릇을 흔쾌히 주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것들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인도의 민담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대답 역시 비슷합니다.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쉽게 욕심을 버릴 수 있겠는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핵심은 역시 ‘욕심 버리기’입니다.
자연의 씨앗은 여건이 갖추어지면 어디서든 싹을 틔웁니다. 복음의 씨앗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을 줄이면 그만큼 좋은 땅이 됩니다. 그러면 씨앗은 저절로 자라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성자가 될 사람들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뿌리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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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자 네 가지의 경우가 발생하였습니다. 처음 것은 씨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두 번째는 싹만 나오다가 말라 버렸습니다. 세 번째에는 자라기는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였고, 마지막 경우만이 잘 자라나 열매를 맺습니다. 이 가운데 세 경우에서 씨가 허비되어, 전체적으로 실패한 듯이 보입니다. 성공률이 4분의 1, 곧 25퍼센트이며, 실패율이 75퍼센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을 더 면밀히 살펴보면, 씨뿌리기는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네 번째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져 거둔 열매는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입니다. 그러니 예컨대, 씨앗 마흔 개를 뿌렸다면 서른 개는 허비된 것이지만, 나머지 열 개가 삼백 개, 육백 개, 천 개의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3년 동안 공생활을 하시면서도 그러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시고, 사람들에게 그 사랑의 씨앗을 심어 주시는 농부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믿지 못하고 반대하거나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실패였습니까? 아닙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그분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말씀의 씨를 뿌리는 사람입니다. 씨를 뿌리면서 좌절을 여러 번 맛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손길을 통하여 몇 십 배, 몇 백 배의 열매를 거두시는 놀라운 분이십니다. 그분의 지혜로운 섭리에 우리 자신을 맡기며 씨를 계속 뿌리도록 합시다.
-오상선신부-
말씀 묵상이나 강론을 하게 될 때
어떤 날은 정말 내가 생각해도 참 뿌듯할 정도로 말씀이 깊이 있게 내 마음 속에 와 닿아 내 안에서 확실한 깨달음이 오게 되고,
또 어떤 날은 아무리 묵상해도 신통찮은 날이 있다.
같은 내용으로 준비된 강의를 이곳, 저곳에서 하는데도
그 대상에 따라, 그리고 그 분위기에 따라
어떤 날은 참으로 많은 결실을 맺었다는 느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참으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갑갑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오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늘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겠지만
사실은 길바닥에 떨어질 때도, 돌밭에 떨어질 때도,
가시덤불 속에 떨어질 때도, 또 좋은 땅에 떨어질 때도 있다는 말이다.
말씀이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말씀을 전하는 자는 물론 듣는 이의 태도가 아주 중요하다.
말씀이 아무리 선포되어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한다.
좋은 결실에는 말씀 선포자의 충실한 묵상과 준비
듣는 자의 말씀에 대한 열정과 귀기울이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이다.
죽은 말이나 글이 아니다.
따라서 말씀은 선포자와 청중 사이의 교감을 전제로 그 생명력이 살아움직이게 된다.
자, 오늘 내가 들은 말씀은 좋은 결실을 맺는 좋은 땅에 떨어졌는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가? 돌밭에 떨어졌는가? 길가에 떨어졌는가?
말씀 선포자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청중인 나의 문제임을 늘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 말씀은
씨뿌리는 사람이 씨를 잘뿌렸는가 잘못 뿌렸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의 밭이 어땠는가의 문제이다.
곧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의 문제인 것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그분께서 나에게 분명히 중요한 메시지를 오늘 전해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말씀을 대하자.
그냥 재미삼아 말씀을 대하게 되면 그 말씀은 그냥 길가에 떨어지는 것이 되고
지식을 쌓기 위해 하게 되면 돌밭에 떨어지는 것이 되고
남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만 말씀을 이용하면 말씀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것이 되고 만다.
말씀의 주인이신 우리 마음의 밭에 씨를 뿌리시는 주님은 늘 좋은 땅에 씨를 뿌려 많은 결실을 맺기를 원하시는데...
말씀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 들려주시는 것임을 꼭 잊지 말자...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끝까지 희망하기>
-양승국신부-
일천한 경험이지만 작게나마 농사를 지어보니 오늘 복음-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이 더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농사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풍성한 결실, 그거 그냥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마치 어린 자식 키우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매일 신경 써줘야 하고, 매일 들여다봐주고, 매일 뭔가 해줘야 합니다.
풍성한 결실을 위해서는 반드시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더군요. 품질 좋은 씨앗이나 튼튼한 모종, 정말 중요합니다. 적절한 수분도 빼놓을 수 없지요. 일조량 역시 성공적인 농사의 관건입니다.
더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바처럼 ‘좋은 땅’입니다.
좋은 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말이나 생각만으로 절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절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농부들이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이른 봄이 되면 농부들은 밭으로 나가 겨우내 굳은 땅을 완전히 한번 뒤집습니다. 돌이나 잡동사니들을 골라냅니다. 정성껏 마련한 퇴비를 골고루 뿌려줍니다. 다시 한 번 흙을 갈아주면서 부드럽게 만듭니다. 각이나 간격을 잘 맞춰 이랑을 만듭니다. 요즘은 왕성한 잡초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비닐을 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농부는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제대로 된 땅에서 자라난 농작물, 농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속에 자라난 농작물의 결과는 100이면 100 정확합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물기가 하나도 없어 쩍쩍 갈라진 논에서 탐스런 벼이삭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메마른 자갈밭에서 대견스런 고추나 오이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잡초가 허리까지 와 닿는 밭에서 풍성한 결실을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 얌체 같은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각자는 밭입니다. 매일 적당한 수분을 제공해야 합니다. 매일 달려드는 잡초를 뽑아줘야 합니다. 병충해는 없는지, 열매의 색깔이 제대로 나오고 있는지 매일 들여다봐줘야 합니다. 매일 가꿔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 각자인 것입니다.
이미 우리 각자의 밭에 하느님의 씨앗들이 뿌려졌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내면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씨앗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의 태도입니다. 농사란 것 하루나 이틀 만에 결정되는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멀리 내다봐야 합니다. 그래서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오늘 힘들어도 언젠가 반드시 풍성한 결실을 맺으리라는 희망이 중요합니다.
이토록 큰 좌절과 실망의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로마 8장 24절 참조)
애초부터 좋은 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 아무리 좋은 옥토라도 지속적인 관리가 없으면 즉시 불모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나 자신에 대한 매일의 관리, 나 자신에 대한 매 순간의 쇄신작업, 끊임없는 보살핌, 기꺼이 땀 흘리기, 끝까지 희망하기, 이런 노력들이 ‘좋은 땅’으로 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입니다.
말씀의 열매
어떤 열매이든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정성껏 가꾸어야 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거둘 수가 없습니다. 혹 씨를 뿌리더라도 아무 정성을 들이지 않는다면 풍성한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더더욱 햇볕을 주시고 비를 주시는 하느님의 안배가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어도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 살지 않으면 열매는 맺어질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희망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수고와 땀을 흘려야 합니다. 씨앗이 아무리 좋은들 그 씨앗이 떨어진 토양이 좋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한 토양이 좋다고 해도 씨앗이 좋지 않으면 역시 기대하는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풍요롭고 능력이 있는 살아있는 좋은 씨앗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토양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대로 만들고 숨을 불어넣어주었으니 더없이 좋은 밭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풍성히 맺어지길 희망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말씀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씨앗이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부와 권력, 쾌락을 추구하는 세상의 방식에 매달리기 때문에 자비와 용서, 나눔을 추구하는 하느님의 방식이 전혀 스며들지 못함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해도 세상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에 사로잡혀 그 말씀을 무시하고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밥 먹여 주느냐?”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피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말씀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말씀 안에 꾸준히 머무르면서 그 말씀의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시련이 오면 말씀에 의지하기보다 세상 다른 것에 의지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수능이나 혼사 등 어려운 일이 닥치면 점을 보러 가는 사람들입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은 세상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밖의 여러 가지 욕심에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온갖 종류의 가시덤불, 진학, 결혼, 명예, 더 좋은 것, 미래에 대한 여러 걱정 등 욕심의 가시덤불은 말씀을 따르는 생각을 뒤덮어 버립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자기 욕심을 채우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때만 좋은 것으로 인정될 뿐입니다. 가시덤불은 걱정과 욕심, 상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지니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느님 말씀을 늘 최우선에 두고, 삶의 기반과 지침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믿음, 희망, 사랑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등경위의 등불처럼 세상을 환히 비추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말씀을 더욱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깨닫게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맺어 자신과 다른 이에게 유익을 줍니다.
말씀의 열매를 맺는 삶이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결코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합니다.
& 씨앗의 법칙 7가지
1. 먼저 뿌리고 나중에 거둔다. 거두려면 먼저 씨를 뿌려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2. 뿌리기 전에 밭을 갈아야 한다. 씨가 뿌리를 내리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과 제공시기 및 방법을 파악하라.
3. 시간이 지나야 거둘 수 있다. 곧바로 거둘 수 없다. 제공 했다고 해서 즉각 그 결과를 기대하지 마라.
4. 뿌린 씨 전부 열매가 될 수는 없다. 10개를 뿌렸다고 10개 모두를 수확할 수는 없다. 모든 일에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마라.
5. 뿌린 것보다 더 많이 거둔다. 모든 씨앗에서 수확을 못해도 결국 뿌린 것보다 많아 거둔다. 너무 이해타산에 급급하지 마라.
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면 손해를, 이익을 주면 이익을 얻는다. 심는 대로 거둔다.
7. 종자는 남겨 두어야 한다. 수확한 씨앗 중 일부는 다시 뿌릴 수 있게 종자로 남겨 두어야 한다. 받았으면 다시 되갚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