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루가 1,67-79)

2012. 12. 24. 오전 8:04:23

글자


2012년 12월 24일 대림 제4주간 월요일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루가 1,67-79)


 

말씀의 초대

다윗 임금이 나탄 예언자에게 주님의 집을 지을 계획을 말한다. 이에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다윗을 임금으로 뽑아 세웠음을 상기시키시며, 이스라엘이 앞으로 굳건해질 것임을 약속하신다(제1독서).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다고 예언한다. 그분께서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분이시다(복음).

☆☆☆

다윗 임금이 국가를 평정하고 하느님의 성전을 마련하여 봉헌하고자 한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임금으로 세우신 다윗을 향해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선택의 말씀으로 다윗의 가문에서 메시아가 탄생된다(제1독서). 이스라엘 백성은 엘리야 예언자가 구원의 길을 준비할 선구자로 다시 올 것을 믿었다. 즈카르야는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하고 노래하며 아들 요한이 바로 주님의 길을 준비할 선구자임을 고백하며 노래한다(복음).

☆☆☆

오늘의 묵상

사제와 수도자는 날마다 시간에 맞추어 ‘성무일도’를 바칩니다. 동트는 새벽을 주님과 함께 맞으며 시작한 하루를 지내는 동안 내내 주님과 함께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즈카르야의 노래’는 아침 기도 때에, ‘마리아의 노래’는 저녁 기도 때에 바칩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일어서서 바치는데, 이는 미사 중 복음을 낭독하기 전에 일어서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경건하게 맞이하려는 자세이지요.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한 원로 사목자의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그분과 함께 피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제들과 함께 성무일도를 바치는데, ‘즈카르야의 노래’ 순서 때 그분도 지팡이에 의지한 채 힘겹게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옆에서 보기에 너무 안쓰러워 그냥 앉아서 기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가 끝난 뒤 “다리도 많이 불편하신데 기도하실 때 그대로 앉아서 하시지요.” 하며 인사드렸더니,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사제로 살면서도 젊어서는 기도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어. 그러다가 사제 생활 50년이 넘은 이제야 기도하는 것이 좀 익숙해졌고 기도의 의미도 알 것 같네. 지난 사제 생활을 가만히 되돌아보니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서 살기도 많이 했지. 이러한 나에게 주님께서 다가오셔서 빛을 비추시어 나의 어둠을 몰아내 주셨어. 넘어진 나를 일으켜 주시기도 했지. 마음의 평화를 비로소 주님 안에서 찾은 거야. 그렇게 고마운 분께서 내 손을 잡아 일으켜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오시는데 어찌 그냥 앉아 있겠나?”
훗날 제가 할 고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성모의 노래(마니피캇: Magnificat)가 『성무일도』의 저녁 기도에 포함되어 있다면 즈카르야의 노래인 오늘 복음은 『성무일도』 아침 기도 때 바칩니다. 마니피캇은 하루를 돌아보며, 은총을 베푸신 주님을 찬미하는, 고요하고 감미로운 저녁 노을 같은 기도라면, 오늘 복음에서 즈카르야의 노래는 동이 트는 새벽처럼 기쁨과 희망을 노래하는 여명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말문이 막혀 어둠 속에 있던 즈카르야가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자 어둠과 죽음의 그늘 밑에 있던 백성이 구원의 빛을 받게 되리라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은 곧 구약의 백성이 신약의 시대를 맞이하는 새로운 구원의 아침을 여는 기도입니다.
요즘은 사람들의 하루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점점 저녁 쪽으로 옮겨 가더니 언제부턴가 낮과 저녁, 밤과 새벽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도시의 하루는 해가 져도 해가 지는 줄 모르고, 해가 떠도 해가 뜨는 줄 모르게 인공 불빛이 밤새워 어둠을 밝힙니다. 자연과 교감이 없는 삶, 시작과 마침이 없는 일상에서 우리는 무질서하게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더욱 지치게 됩니다.
아침 저녁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친다면 우리 삶은 질서가 잡힐 것입니다. 비록 아침이 없는 아침, 저녁이 없는 저녁을 살아도, 아침에 눈을 뜨면 새벽 동이 트는 여명을 눈에 그리며 즈카르야의 노래를 부르고, 하루를 마친 저녁에는 아름다운 노을을 마음에 그리며 마니피캇을 부르며 살면 어떨지요? 즈카르야의 힘찬 희망이, 마리아의 복된 기쁨이 말씀을 타고 우리 삶 속에 스미게 될 것입니다.

 

☆☆☆

가난한 이들은 곧 오실 주님 안에서, 원수들과 그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해 주시는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그분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하느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 사람들 앞에서는 정의로운 백성의 공동체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즈카르야는 이 찬미가를 통하여 장차 오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될 백성에게 희망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그분을 믿고 따르는 백성이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주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하실 것이라 예언합니다. 즈카르야는 자신의 아들 세례자 요한이 장차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며,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는 선구자가 되리라고 예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원수들과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유일한 분이십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주님께서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우리도 세례자 요한을 닮아 그분께서 오실 길을 미리 닦고, 즈카르야처럼 그분께 찬미가를 불러 드려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 은총으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여야겠습니다. 이는 그분의 은총으로 사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신뢰

-손영순 수녀-

  

옛날에는 모든 천재지변도 임금의 덕과 상관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특히 비가 오지 않는 가뭄의 시기에는 임금이 직접 기우제를 지내면 하늘이 감동하여 비를 뿌려주었다고 합니다.
인디언들도 그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하늘이 다 들어준다. 왜냐햐면 들어줄 때까지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기우제를 지내서 비가 오는 것이 아니고 비가 올 때까지 꾸준히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대한 놀라운 신뢰이고 신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가끔 기도를 하면서 왜 하느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느냐고 성화를 부릴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더 잘 아시고 우리가 행복하기를 우리보다 더 바라는 분이시기에 그분은 우리의 앞날을 더 걱정하고 밝혀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으신 계약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그대로 이루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당신 자녀의 소원은 얼마나 잘 들어주시겠습니까?
우리가 할 일은 신뢰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응답의 시기와 방법은 전적으로 그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끔 우리는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해서 판단하고, 오해하고, 해석하면서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녀의 행복을 외면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침마다 즈카르야의 노래를

 

-양승국신부-

 

대 침묵 피정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요즘 여러 수도회나 교구에서 종신서원이나 사제품을 앞둔 후보자들에게 의무적으로 대 침묵 피정을 시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은 그럭저럭 참을만한데, 일주일, 열흘, 사십일 대 침묵 피정,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큰 괴로움입니다.  

특히 차 한 잔 앞에 두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담소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술 한 잔씩 들이키며 ‘술술’ 풀어놓아야 쌓인 것이 풀리는 사람들에게 있어 ‘대 침묵’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10개월간의 대 침묵 피정에 참석했습니다. 10개월 동안 얼마나 할 말이 많았을까요? 억울한 심정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타의에 의해서 10개월 동안 말을 못하게 되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런 즈카르야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더불어 10개월 만에 혀가 풀리고 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10개월 만에 말을 하게 된 즈카르야가 내뱉은 첫마디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 대한 투덜거림이었을까요? 강한 분노의 표출이었을까요? 자신이 뭐 그리 큰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강한 벌칙을 주셨냐며, 하느님께 따졌을까요?

 

모두 아니었습니다. 즈카르야의 입에서 터져 나온 첫 마디는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하느님의 능력과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찬가 ‘즈카르야의 노래’였습니다.

 

저희 수도자들은 매일 아침기도 때 마다 즈카르야의 노래를 바칩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구약을 완성하기 마지막 대예언자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하느님께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동시에 메시아의 탄생을 고대하는 희망의 노래입니다. 이런 희망과 환희와 감사로 가득 찬 ‘즈카르야의 노래’와 더불어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라는 의미에서 아침마다 이 노래를 바치는 것입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세례자 요한 탄생 사화의 결론입니다. 즈카르야 노래의 작곡자는 하느님이십니다. 작사자는 성령이십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찬 즈카르야의 신앙고백입니다.

 

즈카르야의 ‘깨어남’은 하느님의 영광과 능력을 찬미하는 ‘즈카르야의 노래’로 연결됩니다. 즈카르야가 찬미가를 부르는 순간은 그간 지니고 있었던 모든 불신과 의혹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입니다. 즈카르야가 환희의 노래를 부르는 순간은 자기중심적 삶을 넘어 참된 하느님의 사제로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눈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은 또 다른 ‘즈카르야의 노래’를 부를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다시금 자비하신 하느님 앞에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새 출발의 순간입니다

 

  

주객전도

 반영억라파엘신부

주객전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인과 손님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뜻으로, 사물의 선후, 경중, 본말이 서로 뒤바뀌었음을 말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는 지도자의 위치가 있고 권위와 모두를 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백성은 백성의 자리가 있고 지도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도자라고 하는 이들의 권위가 사라진지 오래고 그러니 존경과 사랑도 없습니다. 백성이 더 크게 나라를 걱정하고 지도자는 자기의 잇속에 매여 있습니다. 각자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국 교수 62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28,1%(176명)가 2012년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 들 거, 세상 세, 다 개, 흐릴 탁)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뜻입니다.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있기 힘들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명박 정부 끝자락에 윤리와 도덕이 붕괴하고 편법과 탈법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고, 검찰과 법원은 법을 오. 남용해 정의를 우롱했고, 대통령은 내곡동 부지 문제 등 탐욕의 화신임을 보여줬다.”고 말합니다.
“개인 및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해 좌우가 갈리고 세대 간 갈등, 계층 간 불신과 불만으로 사회가 붕괴, 방치되고 있다.” 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의 어둠이 짙어질수록 우리의 소명은 더 간절해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둠을 탓하기보다 어둠을 밝히는 하나의 등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즈카르야의 노래는 이스라엘을 해방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부분과 하느님의 예언자로 태어난 아기의 장래를 축복하는 부분으로 구별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베푸시는 해방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를 그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원수들의 손에서 벗어나 떳떳하게 주님을 섬기며 주님 앞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한평생 거룩하고 의롭게 주님을 섬기도록 해 주셨습니다(루카1,75). 이것이 해방의 시작이요, 마침입니다. 


하느님의 예언자로 태어난 요한이 제 몫을 감당하여 주님의 길을 닦고 알려주는 것도 “하느님의 크신 자비”(루카1,78)덕분입니다. 시작도 마침도 모두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요한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서 주님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말라기3,1). “사막에 길을 내어라”(이사40,3).고 외치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마침내 요한은 오시는 주인의 길을 닦고 자신은 그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만한 자격도 없다는 겸손을 잃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주인의 행세를 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나서 큰일입니다. 주객이 전도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자기 몫을 알고 그것에 충실했습니다. 이번에 선출된 대통령당선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은 백성에게 있다.”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은 시작도 마침도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무엇을 하든지 주님께 의탁하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에 헌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안에서 아기 예수님을 기쁘게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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