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목요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요한 20,2-8)

2012. 12. 27. 오전 8: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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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요한 사도는 열두 사도의 한 분이다. 어부 출신의 그는 제베대오의 아들로, 야고보 사도의 동생이다. 두 형제는 호숫가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요한 사도는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표현되며, 예수님의 주요 사건에 많이 동참한 제자이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성모님을 맡기셨다. 전승에 따르면, 요한 사도는 스승을 증언한 탓으로 유배 생활을 한 뒤 에페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요한 20,2-8)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자신이 듣고 깨달은 생명의 말씀을 들려준다. 생명의 말씀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제1독서). 시몬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간다. 그들은 빈 무덤을 보기는 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을 아직 깨닫지는 못한다(복음).

☆☆☆

요한 사도는 자신이 듣고 깨달은 생명의 말씀을 들려준다. 생명의 말씀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는 이 땅에 생명으로 오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증언한다(제1독서).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와 베드로가 달려가 보았지만 무덤은 텅 비어 있다. 텅 빈 무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드러낸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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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는 외젠 뷔르낭이 그린 ‘부활 아침 무덤으로 달려가는 제자들’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오늘 복음의 내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입니다. 동트는 새벽녘, 두 제자는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갑니다. 뒤로 흩날리는 옷과 머리카락은 속도감을 실감케 하는데, 두 제자가 주님의 빈 무덤을 향하여 얼마나 빨리 달려가는지를 말해 줍니다. 주님의 빈 무덤이 그만큼 궁금했던 것입니다.
두 제자는 돌아가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주름진 얼굴에는 아직도 불안하고 애타는 심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화면 중심에는 갈색 옷을 입은 베드로가 있는데 눈물을 머금은 그의 눈은 평소 성격처럼 조급함과 근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베드로를 앞질러 달려가는 제자가 요한입니다. 그의 옷은 아침의 노란 여명을 모두 흡수하여 흰색이 되었습니다. 꼭 모아 쥔 두 손과 그의 눈에는 주님을 뵙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가득 받아 본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림을 보면 오늘 복음의 내용보다 그 장면이 더 생생하게 전해 옵니다.
요한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말년의 요한이 제자들의 부축을 받아 노쇠한 몸으로 신자들의 모임에 나가면 늘 이 한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나의 충실한 자녀들이여, 여러분은 서로 사랑하시오!” 신자들이 어찌 그리 똑같은 말씀만 하시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며,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50가지 성탄 축제 이야기』에서) 요한 사도는 그 누구보다도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주님의 사랑을 흠뻑 받은 요한은 그 받은 사랑을 사람들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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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지식도 자신이 소유하는 또 하나의 무형의 재산이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지적 재산’이라고 말하지요. 우리가 가진 지적 재산은 필요에 따라 돈이나 명예 또는 신분으로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보와 지식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반대입니다. 하느님에 대하여 하나를 알면 나 자신 하나를 내려놓아야 하고, 둘을 알면 나 자신 둘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세상의 지식과는 달리 아는 것만큼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치 재산처럼 소유하면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처럼 되고 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 때문에 곁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 둘,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이 한낱 쓰레기임을 깨닫는 것입니다(필리 3,8 참조). 하느님을 온전히 알면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붙잡고 있지 않는 빈 마음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 곧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무덤을 봅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보며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알던 두 제자가 텅 빈 무덤을 만난 것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제로(0)가 되는 순간입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기 시작합니다. 요한 사도의 예수님에 대한 결론은 한마디로 모든 것을 내어 준 텅 빈 존재, 오로지 ‘사랑’(1요한 4,16 참조)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가 성경 공부는 물론 좋은 영성 강의나 신학 강의를 들으려 합니다. 예수님을 더 잘 알고 느끼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분을 아는 지식만큼 우리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텅 빈 무덤처럼 비어 있어 내적으로 자유로워야 합니다. 오로지 사랑만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신 주님의 무덤 앞에 주님의 제자들이 서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무덤 안을 들여다보고 놀랍니다. 그렇지만 빈 무덤이 주님 부활의 구체적인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무덤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그분께서 몸소 제자들에게 발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의 생전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고, 말씀을 건네시고, 음식을 잡수시며, 함께하신 일련의 생활이 주님 부활의 가장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빈 무덤 때문에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고백하는 굳건한 믿음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약간의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완전한 믿음일 뿐입니다. 이제 곧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만지고, 말씀을 듣고 나누게 될 것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는 요한 사도는 그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신 지상 생활의 가장 구체적인 증인으로서, 요한 사도는 자신이 기억하고 추억하는 주님의 모든 것을 주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합니다. 그 증언은 완전한 믿음에서 오는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에 힘입어 완전한 믿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선포해야 합니다.

☆☆☆

  

막달레나는 이른 새벽 예수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분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무덤 속에 계신다고 인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극진한 사랑이 그녀를 무덤으로 가게 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흔적을 보게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예수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막달레나의 말을 듣자 한순간에 달려갑니다. 그러고는 빈 무덤을 보고 놀랍니다. 환희와 기쁨의 놀람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애정제자들의 열의를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믿음의 자세입니다.
이후에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발현하셨습니다. 무력감에 젖어 있던 그들을 위로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도 오셨습니다. 용기와 힘을 주시려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며칠 남지 않은 금년입니다. 성탄의 은총을 믿고 밝게 걸어가야 합니다. 평화와 기쁨을 만들며 살아야 합니다.
무덤은 언제든 나타납니다. 신앙이 부담스럽다면
무덤의 시작입니다. 삶의 에너지인 믿음이 삶의 멍에로 바뀌기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막달레나의 정성과 요한의 열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믿음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힌두교에서는 고통을 운명으로 돌리며 체념으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고통을 피하고자 사욕에서 물러날 것을 이야기합니다. 소유와 관계를 끊고 마지막에는 자신마저 끊을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체념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둥켜안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러기에 당신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이후 고통은 은총을 체험하는 길이 됩니다. 고통을 통하여 인간은 자신의 본모습을 볼 수 있음도 알게 됩니다
.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고통을 정면으로 받아들인 스승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빈 무덤을 본 뒤에 외칩니다. ‘스승께서 정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구나!’ 주님께서 깨달음의 은총을 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후 그는 사랑의 삶을 삽니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지요
.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십자가는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내 것으로 여기며 진정으로 받아들일 때 십자가는 오히려 은총이 됩니다
.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반영억라파엘신부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또한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 사랑을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어디선가 그 속내를 드러내게 됩니다.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갔습니다. 주님의 빈 무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릅니다(요한20,2)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와 제자는 무덤을 향해 함께 달렸습니다. 듣자마자, 그것도 달려갔다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드러내 줍니다. 스승을 사랑하는 마음이 거기 있습니다. 역시 주님은 그런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아닌 다른 제자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습니다. 젊어서이든 주님을 더 사랑해서 빨리 달렸든 이유는 모르겠으나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무덤을 들여다 볼 뿐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베드로가 들어가서 본 후에야 들어가서 보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던 제자는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이지만 그를 받아들이고 베드로를 여전히 으뜸제자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지만 여전히 그는 주님의 제자이고, 죄를 범했지만 그는 여전히 제자들의 맏형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던 제자는 그것을 알기에 그에게 자리를 내어준 것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는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압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기를 사랑해 주신 것(요한13,23; 19,26; 20,2; 21,7.20)처럼 베드로를 사랑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상대방의 어떤 과거를 알게 되면 그것이 우리를 끌고 다닙니다. 그래서 그는 낙인이 찍히고 미래가 없는 것처럼 취급합니다. 그러나 “과거 없는 성인 없고 미래 없는 죄인은 없습니다.”주님의 사랑을 받는 만큼,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의 마음도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마음!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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