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 마태오 1,18-24)

2012. 12. 18. 오전 6: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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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18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 마태오 1,18-24)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실 것이다. 다윗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안전하게 살 것이다(제1독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요셉은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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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미래에 오실 정의로운 임금에 대한 희망을 선포한다. 그분께서는 다윗 가문을 통하여 오실 것이고,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실 것이며,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살게 하실 분이시다(제1독서). 의로운 사람 요셉은 혼인을 하기도 전에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한 사실을 알고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려 한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요셉이 생각을 바꾸도록 하신다. 이로써 세상에 구원이 오셨고,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로 오신 구세주의 보호자가 된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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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라는 책은 삶과 치유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담은 실화입니다. 이 책은 질병의 고통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내용 가운데 특히 ‘조각 그림 맞추기’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공감을 느꼈습니다. 그림 조각들에서 밝지 않은 색깔이나 예쁘지 않은 모양의 조각이라고 해서 그것을 빼어 버린다면 절대 그 그림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도 일종의 조각 그림 맞추기와 같습니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그림 조각을 완성하려면 어둡고 예쁘지 않은 그림 조각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생은 많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조각들은 받아들이고, 어떤 조각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버린다면, 인생의 전체 그림은 완성될 수 없습니다. 인생의 기쁘고 행복한 순간만을 인정하고, 실패와 좌절로 말미암아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은 거부한다면, 우리 인생의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가 없습니다. 잊고 싶고 감추고 싶은 마지막 한 조각까지도 우리 삶의 한 부분입니다. 그 마지막 한 조각으로 마침내 우리 인생의 그림이 완성됩니다. 고통과 슬픔이라는 삶의 조각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요셉은 이해하기 힘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혼인도 하기 전에 아이를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삼았을 때에 찾아오는 앞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까지도 자기 삶의 한 부분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해서 자신의 삶의 조각 그림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요셉의 삶으로 맞추어 놓은 조각 그림을 참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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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복음서 안에서 조용히 등장했다가 어느 사이엔가 조용히 사라진 인물입니다. 요셉은 아기와 아기의 어머니를 데리고 성전에 올라갈 때나 피난을 다닐 때에도 말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기와 아기의 어머니를 철저하게 보호하고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도 우리는 요셉의 인품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한 사실을 조용히 남모르게 해결하려 합니다. 이러한 요셉의 태도에, 주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 특별한 설명을 해 주십니다.
이로써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에,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구세주와 그 어머니의 든든한 보호자, 울타리가 된 것입니다. 요셉의 자기 비움이 메시아를 세상에 오시게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미 요셉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실 주님을 따라나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듯이 십자가를 통하여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요셉이 지고 간 십자가의 길은 모든 이를 위한 은총의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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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는 고뇌에 빠집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스스로 물러날 것을 결심합니다. 마음을 비운 것이지요. 그때 천사가 나타나, 주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려 줍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성가정의 보호자가 됩니다. 고뇌의 시간은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뀌기 위한 단련의 시간이었습니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는 선밸리’(Sun Valley)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백만장자들이 은퇴한 뒤 모여 사는 곳입니다. 웬만한 부자는 입촌 자체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치매에 잘 걸린다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일반 도시인보다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였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지상 낙원으로 만든 도시에서 치매 발병률이 더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원인은 간단했습니다. 아무런 스트레스도 없고, ‘변화도 없으며, 전혀 걱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편안한 삶이 그곳 사람들을 치매로 몰았던 것입니다. 아픔 없이는 성장도 없습니다. 육적이든, 영적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 없는 곳에 어떻게 축복이 있을는지요? 요셉의 고뇌는 은총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다.
방영억라파엘신부
지난 금요일은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환자 봉성체를 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일 개월에 한 번 성체를 모실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주일이지만 시간을 냈습니다. 성체를 기다리는 40여명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겠지만 크리스티나 자매를 통해 제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희귀병으로 38년을 바깥구경도 못하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늘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그에게 제가 “하고 싶은 것 있으면 할 수 있도록 해 줄 테니 말해보세요. 그리고 필요한 것 있으면 청해 보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크리스티나가 말했습니다. “필요한 것 아무것도 없어요. 주님 사랑만 있으면 됩니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는 이미 필요한 것 다 가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티나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힘겹습니다. 작은 성체도 한 번에 삼킬 수 없어 4등분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 그리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계신지.......주님을 차지했으니 모두를 가졌고 그래서 그는 참으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성체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회입니다. 어렵고 힘든 가운데에서 하느님을 향한 더 큰 갈망과 믿음의 성장을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오늘은 예수라는 이름의 뜻과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 라는 이름은 하느님은 구원이시다, 하느님은 구세주시다 라는 뜻을 갖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1,21).라는 말로 그 뜻을 암시하였습니다.
죄에서 구원 된다는 것은 우상 숭배나 이단뿐 아니라 노예살이로부터의 해방이며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포괄 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로마3,23). 바로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렇게 보면
라는 말은 인간이 구원 받아야 할 모든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삽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쁨이요, 희망입니다. 언제나 우리를 구원에로 초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이사야서 7장14절에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고 예언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항상 함께 계신다는 지식은 이스라엘의 신앙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것이었고 그것은 이스라엘의 특징이자 영광이었습니다. 과거에 그러하였듯이 예언자들이 선포하는 미래에도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사실, 성조들이 전쟁 중에 있을 때, 판관들의 시대에 제사당에 모인 군중 속에,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기름을 부을 때, 예언자들이 사명을 수행할 때, 그리고 당신 약속을 지키시어 구원을 베푸실 때 하느님은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생활을 할 때에도 여전히 함께 하셨고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를 통한 구세주의 잉태를 알려 주었을 때도 함께 하셨으며 그 예언의 성취를 이룬 오늘 예수님을 통해 우리 삶의 여정에도 함께하십니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 한가운데를 지난다 해도 나 너와 함께 있고 강을 지난다 해도 너를 덮치지 않게 하리라. 네가 불 한가운데를 걷는다 해도 너를 타지 않고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하리라.
(이사431-2)
하신 하느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또한 내일을 열어주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과 더불어 모든 시련과 고통, 어려움을 이겨내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풍요로워지는 우리 삶>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마태오 복음의 서두에 장황하게 소개된 예수님의 족보 마지막 부분의 표현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전까지는 족보의 이름이 남자에게서 남자에게로 전해지다가 갑자기 남자는 살짝 꼬리를 내리게 됩니다. ‘요셉이 예수를 낳았다.’라고 하지 않고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고 합니다.

    때가 무르익었기에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직접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직접 개입하신 이 기적적인 육화강생 사건은 인간적인 사고방식, 통상적인 개념을 완전히 초월하는 사건이기에 기존에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인간적인 시선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사건입니다.

    요셉이 훌륭한 것은 정말이지 기이한 사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육화 강생 사건 앞에서 보여준 의연한 태도입니다. 자신 앞에 실제로 벌어진 놀라운 사건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흥분하거나 나대지도 않았습니다. 곤란해 하거나 호기심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억지로 또는 강제로 그 신비를 통찰하려고 기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육화강생의 신비 앞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손길에 맡겼습니다. 자신 앞에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봤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셉은 강생의 신비 앞에서 묵상에 묵상을, 관상에 관상을 거듭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대로 모든 것을 행했습니다.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두말 않고 맞아들였습니다. 여기는 위험하니 잠시 이집트로 피신하라니 즉시 짐을 챙겨서 길을 떠났습니다. 이제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가라니 ‘예!’하고 또 다시 이삿짐을 쌌습니다.

    침묵할 줄 알았던 요셉이었기에, ‘과연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을까?’ 식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던 요셉이었기에, 언제나 ‘예!’라고 기쁘게 순명하던 요셉이었기에,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은 우리 삶에 ‘빛’을 가져다줍니다. 그렇다고 신앙이 언제나 우리에게 고통이나 십자가 없는 삶을 지속적으로 약속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 때문에 고민과 부담이 더 증폭되기도 합니다. 오히려 신앙 때문에 상처와 좌절이 커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참 신앙은 우리에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갖은 불행들을 없애주기보다는 그 엄청난 불행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이해하도록 우리를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신앙은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신앙은 전혀 호의적이지 않는 주변 상황들을 새로운 빛으로 비춥니다. 그래서 세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만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만들어줍니다. 결국 믿음이 깊어질수록 더욱 우리 삶도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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