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믿은 대로 되어라.” (마태오 9,27-31)

2012. 12. 7. 오전 8:51:49

글자

2012년 12월 7일 대림 제1주간 금요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암브로시오는 340년 무렵 독일 트리어의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법학을 공부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였고, 로마에서 공직 생활도 하였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가 된 암브로시오는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정통 그리스도교를 평생 옹호하였다. 그는 특히 전례와 성직의 개혁을 꾸준히 실행하는 한편, 황제의 간섭을 물리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암브로시오 주교의 훌륭한 성품과 탁월한 강론은 마니교의 이단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교회로 이끌기도 하였다. 397년에 세상을 떠난 그는, 예로니모 성인, 아우구스티노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회 학자’로 칭송받고 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은 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마태오 9,27-31)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이 듣고 눈먼 이가 보게 된다고 예언한다. 그 새로운 날에는 가난한 이들과 겸손한 이들이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눈먼 이들이 자비를 청하며 당신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자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신다. 눈먼 이들이 먼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알아본 것이다(복음).

☆☆☆

예로부터 레바논 산은 울창한 숲으로 유명하였다. 그 모든 숲이 열매를 맺는 과실수로 가득해진다는 것은 풍요와 축복을 말한다. 이사야는 이렇게 가난한 이들 겸손한 이들이 주님 안에서 축복을 받고 기쁨을 누리는 새로운 날이 오리라고 예고한다(제1독서). 유다인들은 다윗의 가문에서 메시아가 올 것으로 믿고 기다려 왔다. 눈먼 이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미 그분께서 메시아이시라는 고백이 담겨 있다. 눈먼 이가 먼저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본다(복음).
예수님을 믿는 눈먼 사람 둘의 눈이 열렸다. (마태 9,27-31)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8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하고 단단히 이르셨다. 31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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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눈먼 사람 둘이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그분께 다가왔다고 전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고쳐 주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 주님께 다가가는 것,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 치유의 전제 조건입니다. 이처럼 믿음과 치유는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 다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회개한 다음 그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을 새롭게 봅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바오로도 회개한 뒤 모든 것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보며 새로운 삶을 사는 이는 영적으로 눈을 뜬 사람입니다. 반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서도 하느님의 일을 보지 못하는 자는 영적인 눈이 먼 사람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완고함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눈이 먼 자들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여우가 말했다. ‘안녕, 여기 내 비밀이 있어. 그건 간단해. 마음으로 보면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눈은 사물의 표면을 볼 수 있지만, 본질적인 것은 볼 수 없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소중한 것이 보입니다. 믿음은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힘입니다.

☆☆☆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미군이 적진에서 포위된 채 숨어 있었습니다. 양식이 떨어진 지 오래였지만 그들이 적군에게 발각되는 날이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기에 꼼짝없이 숨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곧 구출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달랐습니다. 한편은 하느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고, 다른 한편은 힘 있는 자신들의 조국인 미국이 구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미국의 힘을 믿고 있던 한편은 미군이 적군들을 물리치고 곧 자신들을 구해 주리라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오늘일까 하고 기다렸지만 그때마다 실망해야 했고 결국 절망하여 죽어 갔습니다. 그런데 주님께 믿음을 두고 있던 군인들은 늘 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며 주님께서 구원해 주시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만이 마지막까지 살아 목숨을 구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두 ‘눈먼 이’를 고쳐 주시면서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세상의 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을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세상 것에 먼저 믿음을 두고 삽니다. 자신이 가진 재산이나 능력을 하느님보다 더 깊이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보다 세상의 논리와 가치를 먼저 선택합니다. 그러나 세상 것은 우리에게 희망보다는 절망을 안겨 주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늘 불안해하고 삶에 지쳐 가는 이유입니다.
한편 주님에 대한 믿음은 힘을 솟게 하고 평화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얻을 수 있습니다

☆☆☆

 

 

눈먼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들은 기적을 청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목소리에는 애원이 가득합니다.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 주님!” 너무나 짧은 대답입니다. 주님 앞에서 무슨 긴 말이 필요할는지요? 그들은 즉시 눈을 뜹니다.
필립보 네리성인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큰아버지는 그를 양자로 삼고 사업을 물려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수도자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하여 젊은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36세의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됩니다. 성인은 고해 신부로 유명해졌습니다. 사람들의 위선과 착각을 꿰뚫어 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늘 겸손했고, 유머와 해학으로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선물했습니다. 영적 생활은 엄숙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당시의 통념을 뛰어넘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딱딱함과 옹졸함에 분명 변화를 일으켰던 분입니다. 그러기에 시대를 앞서 살았고, 성인이 되었습니다.
모르면 볼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만 고집하게 됩니다. 보이는 것 뒤에 있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눈 뜬 소경입니다. 삶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언제나 많은 법입니다. 우선은 홀로 있는 시간을 소중히 할 때, ‘눈 뜬 소경을 면할 수 있습니다.

 
 

눈뜬 장님

 반영억라파엘신부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생각지도 않게 소망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정성과 사랑을 쏟았을 때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되고 보람을 차지하게 됩니다.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어떤 눈먼 사람 둘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눈을 뜨는 것입니다. 눈을 뜨려면 눈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들은 마침 길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태9,27)하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자비를 입어 눈이 열렸습니다.
그들에게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고 주님께서는 그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써 하느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믿음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매일의 묵상을 통하여 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의 성장을 이루고 마침내 주님의 능력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그림은 밀라노의 어떤 백작의 요청에 따라 3년 동안에 걸쳐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 그림은 예수님께서 중앙에 앉아 계시고 제자들이 양 옆에 앉아서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처음그림은 예수님께서 오른손에 잔을 들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림은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한 사연이 있습니다.
다빈치는 작품이 완성될 무렵에 친구에게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대뜸 “다빈치, 여기 예수님께서 든 잔은 꼭 진짜 같은데” 라고 말했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다빈치는 그림을 수정하였답니다.
진짜같이 보이는 잔을 지워 버리고 예수님의 팔이 가만히 탁자 위에 올라가 있는 지금의 모습대로 말입니다. 그것은 그의 믿음이 그렇게 했습니다. 결코 예수님보다 더 중요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나이가 43살 이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무엇을 했나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는 예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돈도 벌어야 하고요, 취미생활도 해야 하고요. 친구도 만나야 합니다. 때 맞춰 여행도 해야 하고 술도 마셔야 하며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기도는 물론 미사도 소홀히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보다도 세상 것을 즐기고 찾고 있으니 어찌 보면 우리는 눈뜬장님입니다.
육적인 눈 뿐 아니라 영적인 눈, 믿음의 눈을 떠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9,39)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영적인 시각을 회복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절실함>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언젠가 도우미도 없이 홀로 번잡한 거리를 지나가고 계시던 시각장애우를 만났습니다. 오직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위태위태하게 걸어가는 그 모습에 제 마음까지 조마조마해졌습니다. 시각장애로 인해 그분들이 겪는 고초가 얼마나 큰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바삐 지나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만 방심하면 여기 저기 부딪칩니다.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전철 한번 타는 것, 버스 한번 타는 것이 식은 죽 먹기지만 그분들에게는 보통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사에 조심해야 하고 세상만사 많은 것들이 넘어야 할 산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장애우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던 예수님 시대 당시 시각 장애우들에게 있어 삶은 온통 불편과 고통, 소외와 상처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각 장애로 인해 평생을 심연의 고통, 깊은 암흑 속에 살아왔던 두 사람이 은혜롭게도 구원의 빛이신 예수님과 마주치는 행운을 얻습니다. 두 사람은 단 한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두 사람의 말투를 보십시오. 그들은 시력을 회복시켜달라고 수다스럽게 떼를 쓰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간절히 청하는 바는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의식 속에는 치유보다 예수님의 자비가 먼저라는 생각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마음을 기특히 여기신 예수님께서는 재차 그들의 믿음을 확인해봅니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예수님의 물음에 두 사람은 무조건적 동의를 표함을 통해 치유의 은총을 얻습니다.

 두 시각장애우의 강렬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간절한 외침이 예수님의 마음을 건드렸고, 결국은 즉각적인 치유와 구원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가끔씩 와 닿는 고통이 커지면 커질수록, 상처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가 노력해야 할 바가 있습니다. 
 치유의 은총을 입은 두 시각장애우처럼 더욱 간절한 외침, 혼신의 힘을 다한 청원, 확고한 믿음, 절실함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참으로 공평하신 분 같습니다. 때로 모든 것이 너무나 잘 갖춰져 있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 특별한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만사형통, 승승장구 중인 사람에게 생생한 주님 현존 체험은 요원합니다.
그러나 심각한 결핍 상태에 살아가는 사람들, 지속적인 환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갖은 우여곡절을 다 겪으면서 이산 저산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다가가십니다. 생생한 하느님 현존 체험을 허락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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