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앞서 표징들이 나타날 것이다. (루가 21,12-19)

2012. 11. 27. 오후 7:48:16

글자


20121128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말씀의 초대
요한은 교회와 악의 세력 간의 끊임없는 투쟁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표징으로 제자들이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알려 주신다. 그러나 당신 때문에 박해와 미움을 받을지라도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라며 격려하신다(복음).
조윤호 요셉 성인은 조화서 베드로 성인의 아들입니다. 병인박해가 일어났을 때 그는 신혼이라 부인과 함께 부친의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포졸들이 아버지를 심문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즉시 달려갑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피할 것을 당부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외칩니다.
아버지, 어디로 가란 말씀이십니까? 저도 잡혀가는 것이 소원입니다. 제 믿음이 헛되지 않게 잡혀가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포졸들은 부자를 함께 데려갑니다. 전주 감영에서 두 사람은 혹독한 심문과 가혹한 형벌을 받지만 서로 격려하며 신앙을 지켜 냅니다.
마침내 아버지가 먼저 사형장으로 끌려갑니다. 그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마음을 변치 마라. 언제나 진리대로 답해라. 네 마음이 변할까 봐 두렵구나.아들은 맑은 눈으로 답합니다. 저에 대해선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늘에서 아버님을 뵙겠습니다.순교를 각오한 답변이었습니다. 조윤호 성인은 엄청난 매를 맞고 참수형을 받고 순교합니다. 그의 나이는19세였습니다.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박해는 옛날에만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믿음의 장애물을 느끼고 있다면 조윤호 성인의 짧은 생애를 묵상하며 용기를 되찾아야겠습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루가 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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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음을 본다.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는 끝나게 될 것이다. 시련을 이기고 승리한 의인들이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 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의 날, 곧 종말을 맞이하기에 앞서 박해를 받겠지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당신께서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게 하실 것이니, 인내로써 생명을 얻으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신다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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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고 늘 노심초사하며 살아갑니다. 걱정은 사람의 얼굴에 주름살을 만들고 마음에는 불안과 근심을 쌓아 놓습니다. 걱정이 많으면 미래에 대한 염려나 두려움 때문에 기쁨을 상실합니다. 그리고 걱정으로 말미암은 마음의 불안과 근심은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심지어 박해를 받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 갇혀 있었음에도 신자들에게 이렇게 살아가라고 권고합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리 4,4.6). 바오로 사도가 당부한 기쁨은 인위적인 기쁨이 아니라 고통 한가운데에 있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우리의 깊은 원의를 채워 주시는 주님께서 늘 함께 계신다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심지어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조차도 그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는 의도로 행하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느님의 선하신 손길은 그를 보호하시며 배려하신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에서 기쁨이 나올 수 있었고, 기쁨이 넘치니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었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것을 추구하면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고, 그 기쁨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신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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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처음부터 순교 정신으로 출발한 신앙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주님께서 몸소 그러한 삶의 모범을 보여 주셨고, 주님의 뒤를 이어 사도들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또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공동체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에 수많은 장애물들이 가로막을 것이라는 사실을 주지시켜 주십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박해하고, 회당과 감옥에 넘기며, 주님 이름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말라고 하시며,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는 거대한 세속화의 물결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칼바람이 일지는 않지만, 오히려 칼보다도 더 무서운 죽음의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재물과 권력과 명예가 사방에서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신앙을 위협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것들을 물리칠 용기와 힘을 주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인내로써 견디며, 생명이신 주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길을 기쁘고 떳떳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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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의 순교자 정찬문 안토니오는 특이한 분입니다. 진주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머리가 없고 하체만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무두묘’(無頭墓)라 하였습니다. 순교자 정 안토니오는 진주시 사봉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은 고려 말 대사헌을 지낸 정온(鄭溫)이 은거했던 곳입니다. 대사헌은 오늘날의 검찰총장에 해당됩니다. 그러한 지위에 있었지만 조선이 건국되자 절개를 지키려 낙향한 것입니다. 당연히 이곳 정씨들은 자부심이 대단하였습니다. 정 안토니오 순교자는 바로 정온의 후손입니다.
병인박해 때 정찬문은 신자인 것이 드러나 체포됩니다. 놀란 문중에서는 재심을 청구합니다. 신자가 아니니 다시 조사하라는 청원입니다. 그 사이 순교자를 회유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동원됩니다. 온갖 회유와 엄포가 뒤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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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순교자는 배교를 완강히 거부합니다. 다시 감옥으로 끌려간 뒤에도 혹독한 심문은 계속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매를 너무 많이 맞아 감옥에서 숨을 거둡니다. 가족들이 시신 인도를 청했을 때 포졸들은 하체만 내어 줍니다. 재심까지 신청했던 골치 아픈 죄수였기에 머리를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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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오늘 들은 이 복음 말씀은 지난날의 순교자들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비록 피를 흘리는 순교는 아니라 할지라도 신앙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며,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은총에 진심으로 감사드립시다.

기구한 운명

 반영역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예루살렘 성전은 기구한 운명을 겪었습니다. 세 번에 걸쳐서 세워지고, 세 번 무너졌습니다. 첫 번째 성전은 가장 화려한 왕권을 누린 솔로몬 왕 때 건축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게 되었으며 남 유다는 기원전 587년 바빌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성전은 무너졌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노예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 후 기원전 538년 바빌론을 제압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황제에 의해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환 이후 제일 먼저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러나 이 제2의 성전 또한 기원전 170년 경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점령되고 맙니다. 시리아왕은 유다인을 말살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유다교를 핍박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폐허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성전 한가운데 제우스 신의 제단을 세우고 유다인들이 가장 부정하게 생각하는 돼지고기로 제사를 지내게 하였습니다.

그 후 시리아가 멸망하고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함으로써 이스라엘은 다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로마의 헤로데 왕은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의 성을 다시 화려하게 증축합니다. 이 성전이 다시 폐허로 변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셨는데 오늘 복음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35년경 전후이고 기원 후 70년경 성전은 또다시 로마에 의해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예루살렘 성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유다인들 전체가 나라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1948년 지금의 이스라엘로 정착하기까지 유다인들은 참으로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아직 복원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는 이슬람 사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다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의 성지로써 의미깊은 땅이 되어 있습니다. 그토록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께서 함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충만하였지만 하느님을 외면하고 은총을 담을 그릇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은총을 받고도 감사하지 못하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언제 그런 재앙을 맞게 될지 모릅니다. 깨어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실 예루살렘이 스스로 돌아보고 회개의 길을 걸었더라면 멸망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종말에 앞서 겪게 될 환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헛된 예언자가 나타나고,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가 등장하며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과 기근, 전염병이 생길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의 종말은 결국 혼란을 겪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결코 헛된 예언에 속는 일이 없도록 하고 큰 표징들에 무서워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사실 마음이 추우면 몸도 춥고 남도 추워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내가 평정을 지키고 있으면 바깥바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을 믿고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진대 어떤 표징이 일어나면 어떻고, 종말이 오면 어떻습니까? 그저 오늘을 그분과 함께 사는 것이 소중합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작은 불은 바람 앞에서 쉽게 꺼지지만 큰 불은 바람 앞에서 활활 탑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이 큰 사람은 환난 앞에서 그 진가를 드러냅니다. 세상 종말에 앞선 외적인 혼란을 두려워 말고 오히려 마음 안에 평온이 없음을 염려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안에 새로운 성전 하나를>

    꽤나 화려하고 웅장한 대성전을 두고 사람들이 칭송이 대단했습니다. 성전의 규모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컸습니다. 하나하나 쌓아올린 석재들은 먼 나라로부터 수입해온 진귀한 것들이었습니다. 성전 여기 저기 장식되어 있는 보물들은 큰 부자들이 봉헌한 값진 것들이었습니다.

    위풍당당한 대 성전은 순례객들을 주눅 들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세세대대로 거기 버티고 서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칭송하는 사람들의 입을 순식간의 닫아버리시는 충격적인 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아주 낡고 노후된 건물에서 살아본 적이 있습니다. 규모는 컸지만 별 생각 없이 막 지은 집이어서 실내로 들어가면 자연 채광이 안되 분위기가 음산합니다. 대낮에도 불을 켜야 합니다. 배관은 노후될대로 노후되 수시로 여기 저기 터집니다. 당연히 열효율이 떨어질 수밖에요. 연료비는 많이 들어가지만 난방에 별 도움이 안 됩니다. 땜질식 수리도 이제는 지쳤습니다.

    최종적인 선택은 재건축이었습니다. 세련되면서도 효율적이고 튼튼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은 낡은 집을 허무는 일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새로운 창조를 위한 파괴를 예언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예견하시는 파괴는 멸망과 죽음으로 가는 파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낡은 도성 예루살렘의 파괴를 통한 새로운 왕국의 건설, 죄와 죽음의 도시의 파괴를 통한 새 하늘 새 땅의 창조를 전제로 한 허물어짐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력으로 마지막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해의 끝자락에 선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의 낡은 성전을 허물고 새로운 성전 하나를 건설할 것을 요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새로운 한해를 앞둔 우리는 죄와 악습, 분열과 상처로 가득한 내 영혼의 성을 과감하게 허물어야 하겠습니다. 불신과 편견, 교만과 아집으로 가득한 낡은 집은 과감하게 철저해버려야 하겠습니다.

    그 대신에 하느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집,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잔잔한 내면의 평화가 깃들인 사랑의 새집을 다시 지어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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