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 (루가 17,7-10)

2012. 11. 13. 오전 7: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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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3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루가 17,7-10)

에기노 바이너트(Egino Weinert, 1920- ), '종의 의무', 혼합재료, 작가소장, 독일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티토에게 여러 부류의 신자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지 지시한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를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준다고 말한다(제1독서). 종은 주인이 시킨 일을 충실히 하였다고 해서 주인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 온갖 덕을 다 실천하더라도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은 것이다.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는 겸손한 봉사이다(복음).

바오로 사도는 티토에게 여러 부류의 신자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지 지시한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를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준다고 말한다(제1독서). 종은 주인이 시킨 일을 충실히 하였다고 해서 주인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 온갖 덕을 다 실천하더라도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은 것이다.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는 겸손한 봉사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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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소나 개처럼 짐승이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면 ‘순하다’고 말하지 ‘겸손하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겸손’은 사람에게만 쓰이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겸손한 사람의 특징은 어떠할까요?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며 한계와 약점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또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재능이나 능력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주인은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며 하느님께 늘 의지하면서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1코린 4,7)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받은 것이기에 우리가 자랑하려면 그 모든 것을 주신 주님을 자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그의 말과 행동에서 겸손이 드러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고 나서도 “그저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며 자신을 낮춥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좀 가졌다고 으스대지 않고, 이웃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겸손은 자신은 물론이고, 이웃의 품위를 드러내는 덕입니다. 이 겸손이야말로 영적으로 가난한 이들만이 피울 수 있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오늘 복음의 이 말씀이 묘비명에 새겨져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묵주알』의 저자로 잘 알려진 나가이 다카시 박사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에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 폭탄으로 그는 사랑하는 아내는 물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 또한 백혈병과 피폭자로서 죽는 순간까지도 매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느님을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께 감사하며 자신과 그 지역이 받는 고통의 의미를 해석하며 죽음 직전까지 신앙을 증언하고 평화를 위한 수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나가이 박사는 왜 하필이면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어야 했는지, 그것도 독실한 신자들의 마을에 떨어져 8천 명의 가톨릭 신자들을 희생시킨 이유가 무엇인지를 대답합니다. “나가사키는 제2차 세계 대전과 연루된 모든 민족들의 죄악을 속죄하기 위해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쳐진, 하느님의 선택된 희생 제물, ‘흠 없는 어린양’입니다”(폴 그린, 『나가사키의 노래』 참조). 실제로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흠 없는 어린양이 수없이 희생된 후에야 전쟁은 끝이 나고 세상은 평화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끊임없는 침략 야욕으로 전쟁의 한복판에서 삶의 질곡을 견디며 신앙을 증언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모든 고통과 기구한 삶의 역정이 평화를 위한 희생 제물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묘비에 새겨진 성경 말씀대로 그는 자신이 살아온 모든 인생의 결론으로 “주님의 종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 바치는 크고 작은 희생 제물입니다. 나가이 박사의 고백처럼 주님께서 세상을 위해 우리 자신을 무슨 도구로 어떻게 쓰시든, 그저 “주님의 종으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늘 베푸는 사람은 치매에 걸리지 않습니다. 늘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쉽게 걸립니다. 동물 가운데에서도 ‘애완용 개’만이 치매에 걸린다고 합니다. 받는 생활에 ‘젖어 살면’ 몸은 어른이 되어도, 마음과 정신은 쉽게 어른이 되지 못합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자기 것을 내놓을 줄 아는 사람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누고 베풀며 사는 이가 건강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꼭 쥐고’ 내놓으려 하지 않는지요? 화려한 자리에 앉은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업적과 이름은 남기고 싶어 하면서, ‘자신의 것’을 나누는 데에는 인색합니다.
행복은 주님께서 주십니다. 미래 역시 주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주님의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야 합니다. 매일매일 말씀의 실천을 훈련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살다 보면 좋은 일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마다 감사하며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면 겸손해집니다. 움켜쥐고 있기에 ‘영적 치매’에 걸립니다. 엉뚱한 말을 하고, 엉뚱한 행동을 합니다. 더 좋은 것을 요구하고, 더 좋은 일만 바랍니다. 나누는 사람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보답이 돌아옵니다. 이 ‘사실’을 체험한 사람에게는 인생이 늘 신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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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겸손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행위라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만큼 낮추어야 하는지, 왜 낮추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겸손은 법칙도 공식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겸손을 드러내려면 분명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비굴함이나 천박함으로 비쳐질 수도 있기에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불필요한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몸은 낮추면서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면 초라함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자존심과 함께 존재 자체를 낮출 때 비로소 겸손한 사람으로 바뀌어 갑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 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낮추었기에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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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면서 어둡게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밝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기쁘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밝은 분위기를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그러한 가르침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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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와 만나기를 좋아하고 쉽게 모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큰일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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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는 주름 잡힌 몸을 지녔습니다. 그들은 몸을 접어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겸손은 애벌레 시절부터 몸에 익혀야 한다는 자연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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