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는 죄인 하나(루가 15,1-10)

2012. 11. 8. 오전 7: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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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 8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너희 가운데 누가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한 마리를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루가 15,1-10) 

“What man among you having a hundred sheep

and losing one of them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에게 가장 귀한 보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곧 주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그는 이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겼다(제1독서). 착한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이다.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서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기뻐하시는 것이 하느님 마음이다(복음).
☆☆☆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자신의 태생과 환경을 진술한다. 그리고 종전까지 자신에게 이롭던 것들을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되찾은 양’과 ‘되찾은 은전’의 비유로 당신의 지상 과제를 설명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복음).

☆☆☆☆

 

오늘의 묵상
라틴 말로 ‘자비’(misericordia)라는 말은 두 개의 낱말이 합쳐진 것입니다. 하나는 ‘슬픔’ 또는 ‘괴로움’을 뜻하며, 다른 하나는 ‘마음’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자비란 이 두 낱말이 합쳐져, 마음이 슬픈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비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슬퍼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없애 주려고 노력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수학 시험을 보셨다면 어떻게 되셨을까요? 아마 낙제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인 ‘되찾은 양의 비유’를 통해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는 한 마리 양이 아흔아홉 마리 양들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닙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계산 방식을 따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수학은 하늘 나라의 시민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시고자 그 어떤 수고나 위험도 감수하십니다. 그리고 그 양을 찾으신 뒤에는 너무도 기쁘신 나머지 보잘것없는 그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오십니다. 이것이 바로 가난한 이들과 죄인들의 슬픔과 괴로움을 어루만져 주시고 덜어 주시는 예수님의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운 마음에 동참하도록 오늘도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

어떤 신부님이 교도소의 교정 사목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 교정 사목을 ‘수인’(囚人) 사목이라 불렀습니다. 어느 날 신부님은 여러 신부님들 앞에서 요즘 교정 사목의 어려움을 하소연합니다. 수인들 수는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그들에 대한 관심도 예전 같지 않고, 교정 사목에 기탁하던 후원금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부님의 하소연을 듣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죄책감 같은 것이 밀려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감옥에 갇혀 지내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가끔씩 기도는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는 그런 죄책감 말입니다.
오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주님께 트집을 잡고 시비를 겁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그러자 주님께서는 ‘되찾은 양’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짐짓 의인인 체, 경건한 체하는 자들에 대한 강한 질책의 말씀입니다.
참목자이신 주님께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어깨에 메고 기쁘게 집으로 들어오시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은 주님의 품 안에서 안식을 누립니다. 잘못된 길로 빠져서 엉뚱한 길로 가는 양을 찾아 나서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랑과 자비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회개는 주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이시고 자비로우신 주님께 온몸을 돌려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새롭게 변화된 모습을 고백하고 보여 주는 삶입니다.

☆☆☆

 되찾은 양’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때문에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입니다. 목자는 남아 있는 양들에게 변고가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개의치 않습니다. 찾은 뒤에는 꾸중도 하지 않고, 잘못을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만큼 목자는 자기 양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주님의 모습입니다.
이렇듯 복음의 가르침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조건 없이’ 용서하시는 그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받아들이며 사랑해야’ 주님을 닮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용서하셨는데, 자신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았건만, 또 고해성사를 봅니다. 때로는 총고백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받은 죄를 다시 들추어냅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는지요? 주님께서는 용서하셨는데, 자신은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칫 영적 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죄와 연관시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사랑과 연관된 주님’을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밝은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로 끝이 아닙니다. 회개의 활동이 뒤따라야 완결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삶입니다. 그러면 은총이 끌어 줍니다. 뉘우침만 있고 ‘사랑의 활동’이 없었기에,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

 회개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행위입니다.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회개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은총입니다. 첫 마음만큼 선하고 바른 마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회개란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죄를 짓기 이전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자만이 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조건입니다. 일상의 삶을 사는 이에겐 ‘처음으로 돌아감’이 가끔은 요구됩니다. 결혼한 부부는 신혼의 느낌을 되살리는 것이고, 직장인은 처음 발령 때의 열정을 되찾는 연습입니다. 오래된 교우라면 세례 때의 그 순수함을 되찾는 노력입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계기가 주어집니다. 나무는 봄이 되면 다시 시작합니다. 가을에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서운한 일’을 만날 때면 다시 출발하는 계기로 삼아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이야기하십니다. 엉뚱한 길로 가는 양은 어떻게 하든 데려오실 것이란 암시입니다. 목자이신 예수님께 기도해야겠습니다, 처음 다짐했던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은총을 주십사고. 오늘은 이 기도만을 바쳐야겠습니다.

☆☆☆

어떤 사냥꾼이 사슴을 키웠는데, 사람이 먹는 밥을 먹이고 방에서 재우기도 했습니다. 집 안 그 어디를 뛰어다녀도 사냥꾼은 눈감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슴은 점점 더 우쭐거렸습니다. 나중에는 사냥개에게 발길질도 했습니다. 그래도 개들은 주인 눈치를 슬슬 보며 맞는 시늉을 했습니다. 어느 날 사냥꾼이 사고로 죽고, 방 안에서 뒹굴던 사슴은 쫓겨납니다. 사슴은 마침 지나가는 사냥개에게 발길질을 하다 단번에 물려 죽습니다. 사슴은 죽으면서도 왜 자기가 물려 죽는지를 모릅니다. 중국 고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모의 그늘이 짙은 아이들은 앞에서 이야기한 사슴과 비슷합니다. 부모의 지위가 높거나 재물이 많을 경우에 더욱 그러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행에 돈이 있으니까, 전문 기술을 지녔으니까, 미리 마련해 둔 부동산이 많으니까 인생을 쉽게 생각합니다. 삶을 별것 아닌 것으로 여깁니다. 참고 희생하며 나누는 것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 넓은 줄 모르는 것이지요
.
그러나 인생은 계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다 보면 역경도 만나고. 생각지도 않은 파국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한둘이 아님을 느낍니다. 삶의 진정한 모습에 눈뜨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회개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늘어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주님을 기쁘게 해 드려라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고해성사를 볼 때마다 의지가 참으로 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같은 고백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뉘우치고 결심했다면 같은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할 터인데 성찰해 보면 여전히 약점을 드러내고 맙니다.
그래서 늘 고해 신부님 앞에 얼굴을 붉힙니다. 때로는 모르는 신부님께 고해를 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넘어짐을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이 없이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돌아보게도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가15,10) 하시며 죄인의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의인 아흔 아홉도 소중하지만 죄인 하나도 결코 그 소중함이 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인이 회개하면 기쁨이 더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비를 입는 죄인 하나가 바로 나라면 그 은총이 얼마나 큰 것인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옆의 두 강도 중 하나는 구원되었습니다. 그는 서둘러 회개하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순간이었지만 옆에 계신 예수님께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가23,42)하고 간절히 청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가23,43)라는 대답을 얻어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의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하고“회심의 노력이나 기간은 죽는 순간까지 항구해야 합니다”(시리아의 성 이사악).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모습을 주님께서는 언제나 반기십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주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이사55,7)고 말합니다.
요엘 예언자도 “주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이다.”(요엘2,12-13)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더욱이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가5,32)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부끄럼 없이 살면 좋지만 혹 부끄러운 모습이 있더라도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허물을 안고 있음에도 우리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으시는 주님을 믿고 그분의 자비를 청하십시오. “회개한 죄인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습니다”(성녀 소화데레사).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확인하는 날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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