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여라 (루가 17,1-6)

2012. 11. 12. 오전 6:35:38

글자

2012 11 12일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요사팟 주교는 1580년 무렵 우크라이나의 동방 교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뛰어난 상인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장사보다는 영혼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수도원장까지 맡아 수도회 개혁을 주도하였다. 주교가 된 그는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가 1623년 이교도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1867년 비오 9세 교황이 요사팟 주교를 시성하였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루가 17,1-6)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믿음의 아들인 티토에게 편지로 인사하면서 교회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언급한다. 교회의 지도자는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을 죄짓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누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그가 회개하면 용서해 주라고 하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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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하느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한다. 그가 부르심 받은 것은,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의 믿음을 돕고 신앙에 따른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함인데,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근거한다고 하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남을 죄짓게 하지는 말고, 혹 어떤 형제가 죄를 짓더라도 회개하거든 용서해 주라고 하신다. 용서하는 힘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총 덕분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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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물질주의가 만연된 이 시대에 영적인 벗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 영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도 힘들지만 다른 이에게 영적인 벗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친구를 얻으려면 먼저 내 자신이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이 자기의 벗이 될 만한지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좋은 친구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보라는 충고입니다.
그는 우정을 이야기하면서 우정의 조건은 ‘유사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대개 비슷한 부류끼리 어울립니다. 자기 자신이 덕이 있고 선량하면 주변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입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빠른 것이 느린 것이고, 느린 것이 빠른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익이나 쾌락에 끌려 빨리 친해진 관계는 오래가지 않지만 선(善)과 덕(德)으로 맺어진 사이는 세월이 흘러도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을 죄짓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남에게 영적인 벗이 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친구는 나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친구와 영적인 우정을 맺고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의 노력과 선한 행동으로 친구의 얼굴에서 웃음을 발견하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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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남을 죄짓게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남이 죄를 짓도록 그런 일을 저지르지는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특히 어린이처럼 약하고 힘없고 어렵게 살아가는 작은 이들에게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고 하십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죄는 우선 하느님을 등지고 외면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하느님을 유일하신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등지고 외면하기 때문에 쉽게 우상을 섬기거나 교만에 빠지고 맙니다. 그래서 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훼방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이간질시키며, 인간과 자연 사이를 갈라놓는 온갖 행위가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의 형제자매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가 지은 죄보다 뉘우치며 돌아오는 형제자매를 받아들이시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충만히 받은 모든 믿는 이는, 죄를 지은 사람이 돌아오면 받아 주고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죄를 물으시기는 더디 하시고, 당신에 대한 믿음을 보시어 우리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기는 빨리 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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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습니다. 알 수 없는 마음이지만 눈빛 속에는 마음의 한 모습이 담겨 있다는 말입니다. 어린이는 쉽게 용서합니다. 금방 잊어버리고 빨리 적응합니다. 그러기에 어린이의 눈빛은 맑습니다. 미움과 의심이 사라진 눈빛입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 이런 눈빛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욕망이 눈빛을 흐리게 합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타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휴식도 양보도 없습니다. 전진과 소유만이 있습니다.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장애물로 여기게 합니다. 범죄는 이렇게 해서 생겨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남을 죄짓게 하지 말고,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욕망의 조절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간청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일을 했으며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따지지 않으십니다. 얼마만큼의 믿음으로 어떻게 살았느냐에 더 큰 가치를 두십니다. 그러니 죄짓게 하지 말아야 할 상대는늘 만나는 이웃입니다. 주님께서맡겨 주신 사람들입니다. 언제라도 깨끗한 눈빛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욕망을 조절하는 길입니다.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의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왜 일곱 번이겠습니까? 그것은 끝없는 용서를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끝이 없습니다. 잘못을 저지르는 일도 끝이 없습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도 끝이 없습니다. 우리 삶 속에는 끝없이 일어나는 일이 많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도 끝이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한 번 용서하시고 한 번 칭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한 번 믿으시면 끝까지 믿으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다면 끝까지 믿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멀리하고 있다고 주님께서 모른 체하실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큰 죄를 지었다고 해서 금방 토라지는 주님으로 오해해서도 안 됩니다
.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처음과 끝이 같은 이를 좋아합니다. 한결같은 사람이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의리 있다.’거나 ‘믿을 수 있다.’는 표현을 합니다. 주님께서도 의리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편협한 마음을 바꾸어 주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뜻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끝까지 지켜 주시면서 힘이 되어 주십니다
.
이 세상은 많이 소유하고 겉모습이 화려한 이들에게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히려 베풀고 용서하는 이들에게 더 큰 관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런 뜻에서 용서는 주님을 만나게 합니다. 가장 강렬하게 주님을 느끼고 체험하게 합니다.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루카 17,1-6


복수할 생각은 없습니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유혹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죄의 유혹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단식을 마치신 후 마귀로부터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사람은 결코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유혹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간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유혹은 사람들이 자신을 그 도구로 사용되도록 허용함으로써 죄에 떨어지게 됩니다.
내가 동의함으로써 악의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이 없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오히려 극복할 힘과 능력, 지혜를 키워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용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용서가 말같이 쉽지 않지만 주님께서 모범을 보여 주셨기에 우리도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성 에드몬드는 “나는 비록 두 팔이 잘리고 두 눈을 빼앗기더라도 복수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자기를 못 박은 원수를 위해 기도하시고 용서하시기를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내가 하느님 안에 강해지고 뿌리를 내리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낫다”(루카17,2)고 말씀하셨습니다.
단호한 결단으로 유혹을 극복하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에 따르는 단호한 결단은 유혹을 이깁니다.

 가끔은 사람들로부터 ‘나는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삶의 여정 안에서 크든 작든 알게 모르게 많은 잘못과 허물을 안고 살아왔고, 또 앞으로의 여정 안에서도 끊임없는 자비와 용서를 입어야 할 연약함을 지녔습니다.
결국 우리자신이 용서가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남을 용서 하기위해서는 내가 이미 용서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잘 살려고 애를 쓰고 남에게 피해를 안 주었다고 장담한다 해도 그것이 오히려 남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잘한다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부끄러움 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피조물인한 연약함 속에 끊임없는 자비가 필요합니다. 어떠한 상황이나 처지에서든지 앙갚음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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