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당신 (루카 14,15-24)

2012. 11. 6. 오전 7:44:54

글자

2012년 11월 6일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 죽음에 이르시기까지 하느님께 순종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겸손이란 가장 완전한 순종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 주셨다(제1독서).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온갖 핑계와 구실을 대며 거절한다. 그러자 집주인은 종에게 길에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데려오라고 시킨다. 구원의 잔치에 참석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초대에 응했다는 비유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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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당신의 모습을 낮추셨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죽음까지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그것은 그분께서 보여 주신 순명의 정신이다. 아버지에 대한 철저한 순명 정신이다(제1독서). 혼인 잔치는 하늘 나라를 상징한다. 그러기에 주인은 많은 사람을 초대했다. 그런데 초대받은 이들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거절하고 있다. 하늘 나라에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다. 그래서 주인은 누구든지 데려오라고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선언이다(복음).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혼인 잔치의 집주인은 큰 망신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집주인은 초대한 세 사람 모두에게서 거절당했기 때문입니다. 배척당한 주인은 화가 나서 종에게 명령하여 길거리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데려오게 합니다. 그들은 온갖 불행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 말씀은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 곧 소외된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 나라는 부자들이나 권세를 가진 이들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가난하고 하찮아 보이는 이들이 친교를 나누는 잔칫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얼마나 깊고 큰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불행과 절망적인 상황은 하느님의 자비심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비참한 인간적 조건을 보시고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올바른 자선은 보답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인정받을 때 참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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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핑계를 대고 가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밭을 샀는데 확인해 봐야겠다는 겁니다.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부려 봐야겠다는 겁니다. ‘겨리’는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쟁기입니다. 다섯 쌍이면 열 마리입니다. 꽤 부자인 셈입니다. 틀림없이 그는 소를 사기 전에 시험해 봤을 것입니다. 그러니 핑계입니다.
복음 말씀은 바리사이들을 꾸짖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아집 때문에 거절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보고도 하느님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병든 이들은 예수님의 행동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눈멀고 다리 절고 가난한 이들이 기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하늘 나라의 체험입니다. 천상 잔치의 음식을 먹고 마신 것입니다.
우리는 바리사이들이 아닙니다. 성한 눈과 몸을 지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찾아내야 합니다. 기적은 늘 믿고 바라는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유와 핑계를 대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풍요로움으로 반드시 인도해 주십니다. 삶이 허전하고 영적 가난이 느껴지고 있다면, 천상 잔치에 초대해 주시길 청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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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핑계를 대며 참석하기를 거절합니다. 게다가 양해를 구하는 핑계가 어색합니다.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둘러보지도 않고서 밭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소를 열 마리나 사면서 꼼꼼히 살펴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세 사람 모두 다 너무 심한 핑계입니다. 모두 초대한 이를 우습게 여기고 있습니다
.
유다인들은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의 초대에는 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오늘 비유 말씀은 이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와 무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그럴싸한 핑계를 만들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일을 부탁받으면 대부분 피하려 듭니다. 단체 가입을 권유받으면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하기에 급급합니다. 정말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지요
.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사람입니다. 그런 자격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라.”는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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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순서가 뒤바뀌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형제들이 좋은 자리의 값비싼 땅을 다 차지한 나머지, 자신은 형편없는 돌산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그런데 건축 자재로 돌이 귀해지면서 그 돌산이 다른 어느 땅보다 비싸졌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선하고 자비로운 사람을 높이 들어 올리십니다. 요즈음 유행어가 되어 버린 ‘인생 역전’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초대를 받은 우리는 그분의 부르심에 제때에 응답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 세상의 유산이 아니라 영원한 유산에 관한 문제입니다

 

 

 

신혼여행 갈래요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살아가면서 닥치는 일에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누구의 초대를 받았는데 사정이 생기면 양해를 구하고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맞습니다.
밭을 샀으면 밭에 나가보는 것이 당연하고 겨릿소를 샀다면 그 소를 잘 샀는지 부려보는 것도 자연스런 일입니다. 더군다나 방금 결혼을 했다면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은 인정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가야 할 잔치집이 생겼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이 준비 되었습니다. 그 잔치에 초대 받은 것이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그 앞에서 무슨 핑계가 필요합니까?
더 좋은 것, 지금까지 갈망하던 하느님나라가 눈앞에 주어졌는데 왜 망설여야 합니까? 결국 지금까지 기다리고 희망하던 것은 헛된 환상이었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세상 것이 더 좋은데 그것을 어떻게 놓고 가라 하십니까?

그러나 “나 없이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도 나 없이 나를 구원하실 수 없으십니다.” 구원의 문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지만 결코 모든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갖는 한, 구원의 잔치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우선인지를 잘 분별해야겠습니다.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면 나머지는 다 채워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사로운 정 때문에 인간적인 것을 택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루카14,24).
결국 처음 초대 받았던 사람들은 재산과 사업상의 관계, 결혼이라는 핑계거리로 말미암아 구원의 문에서 멀어졌습니다.

가진 것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초대를 외면하였습니다. 오히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좋아했습니다.
그야말로 배가 부르면 산해진미가 귀찮고 배고프면 보리죽이 꿀맛입니다. 그런데 헛배가 불러서 스스로 배부르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입니다. 스스로 배부른 착각에 빠져 죽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뿌려진 씨앗의 비유(마태13,1-9)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씨앗이 어떤 것은 길바닥에, 어떤 것은 돌 밭에, 그리고 가시덤불에,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은 것은 당연히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밭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길바닥 같은 딱딱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무관심한 사람이지요, 그리고 돌 밭은 흙이 얼마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 시련 어려움이 오면 금방 신앙이 죽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가시덤불은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하나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핑계를 대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저런 핑계대지 말고 매순간 하느님 앞에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안녕을 열망하며 그것을 너무 많이 고려하다가 그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맙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돌다리를 두드려보다가 오히려 돌을 깨뜨리고 만다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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