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인 대축일 (마태오 5,1-12ㄴ)

2012. 11. 1. 오전 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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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 1일 목요일 모든 성인 대축일 




오늘은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로,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특히 전례력에 축일이 별도로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기리는 날이다. 동방 교회에서 먼저 시작된 이 축일은 609년 보니파시오 4세 교황 때부터 서방 교회에서도 지내게 되었다. 5월 13일에 지내던 이 축일을 9세기 중엽 오늘날의 11월 1일로 변경하였다. 교회는 이날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 뒤의 새로운 삶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지상의 우리와 천국의 모든 성인이 연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깨우쳐 준다.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7,2-4.9-14
나 요한은 2 다른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3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4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9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11 그러자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12 말하였습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13 그때에 원로 가운데 하나가,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오늘의 묵상
맹자의 제자인 공손추(公孫丑)가 스승에게 “선생님께서는 이미 성인(聖人)이십니다.” 하고 말하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성인이라는 말은 공자께서도 자신에게 당치 않다고 하셨다.” 이처럼 성인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성인 가운데 교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겸손과 반대되는 교만은 자신의 능력이나 재주를 자랑하며 남을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인생의 큰 병폐 가운데 하나가 교만입니다. 그렇다면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아(無我)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잊고,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비우는 자세입니다. 자신을 비우는 사람은 가진 것이 없으니 내세울 것도 없고, 내세울 것이 없으니 겸손하게 됩니다.
‘아빌라의 성녀’로 널리 알려진 예수의 성녀 데레사 수녀는 하느님만으로 아쉬울 것 없고 하느님만을 행복으로 여기며 살았던 분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엇에도 네 마음 설레지 말라. 그 무엇도 무서워하지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가고 하느님만이 가시지 않으니 인내함으로써 모두를 얻으리라. 하느님을 모시는 이는 아쉬울 것 없으니 하느님 한 분이시면 흐뭇할 따름이니라.”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하느님만을 믿고 그분께 위로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곧 성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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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고, 그 행복이 참된 것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희망하는 행복의 내용은 열이면 열 모두가 다릅니다.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꿈이 참된 행복이고, 어떤 사람이 제대로 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오늘 모인 사람들에게 ‘참행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신 아홉 가지의 선언은 참행복과 하느님 나라를 얻을 수 있는 대헌장입니다. 이 대헌장은 사람의 삶의 태도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참행복은 공짜로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삶을 살 때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행복은 구체적으로 주님을 닮는 삶을 살아야 가능합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 자비를 베풀며, 의롭고,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 때문에 박해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쁘고 떳떳하게 주님의 종으로 살 때 비로소 주님께서 마련하신 참행복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밖의 행복에 대한 꿈은 모두 허상이고, 환상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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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가난과 슬픔 자체가 행복은 아닙니다.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일 뿐입니다. 그런 상황에 놓인 이들은 쉽게 마음을 엽니다. 조금만 잡아끌어도 하느님을 찾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이끄심을 만납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누구나 행복한 것이지요. 행복의 조건은 주님께서 ‘함께하시는지’, ‘함께하지 않으시는지’에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기에 주님께서 찾아 주십니다. 슬픔에 잠겨 있기에 위로해 주십니다. 주님의 방문과 위안을 깨닫는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겪는 ‘사건과 만남’ 속에는 그렇게 주님의 개입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음이 가난하고 슬픈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셔야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소유가 많아지면 주님을 외면하려 듭니다. 본인도 모르는 새 ‘자만의 유혹’에 빠져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늘 부족한 마음을 안고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많은 교우들은 고통을 만나면 ‘화살 기도’를 바칩니다. 화살처럼 빨리 가기를 원하는 기도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렇게 오시기를 청하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누구나 행복해집니다. 어떤 처지, 어떤 상황에 있든 기쁨이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슬프더라도, 짜증과 원한에 잠겨 있다면 주님의 힘은 오시지 않습니다. 행복할 리 없습니다. 행복은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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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소녀가 병으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병은 소녀의 여덟 살 난 오빠가 얼마 전에 걸렸다 나은 병이었습니다. 소녀가 살 수 있는 길은 항체가 생긴 오빠의 피를 수혈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의사는 오빠를 불러다 말했습니다. “네 피를 수혈해야만 동생을 살릴 수 있단다. 네 피를 동생한테 줄 수 있겠니?” 그러자 소년의 눈에 겁이 서렸습니다. 잠시 망설이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 선생님. 그렇게 하겠어요.”
수혈이 끝나고 한 시간 뒤, 소년은 머뭇거리며 물었습니다. “, 선생님. 저는 언제 죽게 되나요?” 그제야 의사는 소년을 사로잡았던 순간적 두려움을 이해하였습니다. 소년은 자기 피를 줌으로써 동생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행복은 본시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이 내려 주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격을 갖추었을 때 주어집니다. 아니, 여건을 갖춘 사람이라면 어느 틈에 곁에 와 있는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복음 말씀은 행복으로 가는 조건들입니다. 하느님 때문에 베풀고 희생하고 포기하라는 말씀입니다. 우선은 슬픔과 박해이더라도 결국은 행복으로 인도된다는 말씀입니다. 참행복은 가족 안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가정이 되어야겠습니다.



성인 신자 되세요

- 황영준 신부-

“성인 사제 되세요.” 사제품을 받고 신자분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그러나 사제 생활을 하면서 지금 제 모습을 바라보니 성인은커녕 때로는 신자분들보다 못한 삶을 살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생각대로 사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할 때도 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쁘게 짊어지지 못한 채 십자가를 거부하고, 부끄러워하고 못 본 체 한 때도 많습니다. 주님 앞에 행복하고 기뻐하는 모습보다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더 많았던 삶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보일수록 더욱 힘들고, 기쁨을 잃을 뿐이었습니다
.
성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성인들의 삶은 불안과 걱정의 삶, 곧 슬픔의 삶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행복과 기쁨을 찾아내는 삶이었습니다. 가난하다고, 슬프다고, 힘겹다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박해받는다고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주님 때문에 믿음과 희망으로 행복을 일구어 내는, 십자가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바로 성인들이었습니다
.
오늘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참 행복에 대한 말씀은 꼭 천국에서 받을 상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자리에서도 천상 기쁨으로 가득 찬 성인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에 희망을 두고 우리 모두 이 세상에서부터 성인이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 노력해야겠습니다.
 

행복론 최고인기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공부 벌레들이 모인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행복론이 최고 인기랍니다. 35살의 심리학 강사 벤 샤하르긍정 심리학을 하버드대학 학부생의 13%가 수강한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행복 6계명을 보면,

1. 인간다워져라 ;공포, 슬픔, 불안 같은 감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극복할 수 있다.

2.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의 교차로에 있다 ;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개인적으로 의미도 있고 즐길 수도 있는 활동을 하라.

3. 행복은 통장 잔고가 아니라 마음 상태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 가령 실패를 재앙으로 보지 말고 배움의 기회로 여기라.

4. 단순해져라 ; 우리는 시간을 적게 들여 더 많은 활동을 하느라 바쁘지만 그러면서 행복을 희생 시킨다.

5. 마음과 몸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 규칙적인 운동, 적절한 수면, 좋은 식사 습관을 가지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 진다.

6.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라 ; 사람에서 음식까지. 자연에서 미소까지, 살면서 겪는 멋진 일들을 누리고 감사하라.

이것이 세상 사람이 말하는 행복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과 견주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음의 가난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희망을 두기에 그에게 온전히 의탁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것이기에 행복합니다.

2.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고 자기의 죄에 애통해 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행복합니다.

3.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 온유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상황, 처지, 여건에 흔들림 없이 평상심을 유지할 줄 아는 사람, 자제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4.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진선미를 갈망하며 천상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5. 행복하여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자비는 사랑입니다. 애간장을 녹이는 안타까움을 간직하며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 이웃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사람입니다.

6.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주님께서는 내가 완전한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함을 지닌 사람, 죄에 물들지 않은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은 행복합니다.

7.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외형적인 평온에 앞서 내 마음 속에 있는 욕심과 무질서, 불의와 미움을 거두고 화해를 전해주며 갈라진 사람을 맺어주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8.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선한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시기와 질투, 모욕과 중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도들은 주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하였습니다(사도5,41).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9. 지금 당장은 시련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이렇게 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들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알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며, 이 모든 것을 모르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하느님 때문에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길 희망하며 참으로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인 축일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따르고자 다짐하며 성인들이 행복으로 여긴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를 생각합니다. 오늘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도 성인입니다. 주님의 영을 간직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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