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려면 (루카 9,57-62)

2012. 10. 3. 오전 7:48:08

글자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 9,57-62


당신 밖에 없습니다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결혼을 하는 사람은 배우자에게 “나는 당신밖에 없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도자나 성직자가 서원을 하고 수품을 받는 것은 하느님께 “저에게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하고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항구하게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배우자에게서 얻지 못하는 것을 다른 무엇에서 얻으려 애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불행을 맛보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세상의 것과 천상의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시는데 차마 한 가지를 잃고 싶지 않아서 매달리다 둘 다를 잃어버릴까 두렵습니다. 한눈팔지 않는 은총을 간구합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9,62)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각자는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아, 그때가 좋았는데….할 것도 없고, 그저 지금 여기서 주님과 함께 걸으면 됩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를 자꾸 돌아보아서도 안 되고 더더욱 되씹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일에 묶이면 미래의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따라서 “지금 여기서”가 중요합니다. 오늘 순간을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최선으로 다하면 그것으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주님께서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음에도 여전히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수품 때의 마음으로 기쁨이 넘쳐 나야 하지만 그 마음은 꼭 숨어버렸습니다. 저는 가시밭길을 걷기 원하지 않았고 세상의 것을 더 많이 즐기고 세상 것을 더 달콤해 했습니다. 또 거기에 끌려 다녔습니다. 그러면서도 천상의 것을 더 찾는 양 말하고 행동합니다. 뻔뻔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있는 저에게 그래도 크신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두 마음품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저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하는 제 마음을 당신이 아오니 부족함을 꾸짖어 주시고 당신께 대한 한결 같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강복해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10월 3일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 루카 9,57-62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예수님의 돌출발언>

     다른 수도회나 교구도 그렇겠습니다만, 저희 수도회도 마찬가지인 ‘아주 보기 흐뭇한 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수도회 한 형제의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다들 ‘내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며 어떻게 해서든 슬픔에 동참하려고 노력합니다. 영안실에서는 시간대별로 형제들이 돌아가며 고인을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장례미사에는 100% 참석합니다. 
  다른 때는 별로 부러워하지 않는데 수십 명, 수백 명이나 되는 사제들에 둘러싸인 장례식을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저희 수련자 형제들은 형제들의 부모님 상만 났다 하면 ‘긴급출동’입니다. 사흘 내내 영안실에서 분주하게 지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슬픔을 당한 형제나 유가족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요즘 다들 형제가 하나 아니면 둘입니다. 많아야 셋입니다. 영안실도 썰렁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형제가 120명입니다. 영안실이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부친상’ 이것처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겪는 일들 가운데, ‘부친상’ 이것처럼 슬픈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소 의외의 돌출 발언을 하십니다. 요즘 같으면 네티즌들에게 크게 한번 봉변 당하셨을 일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었습니다. 이제 막 예수님의 제자단에 가입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부친상을 당했습니다. 그 제자는 예수님께서 당연히 허락해주시리라 생각하고 ‘삼일간의 휴가’를 신청합니다.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예수님 같았으면 당연히 OK였겠지요.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데,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 얼마나 마음이 아픈가? 나도 곧 뒤따라갈 테니 빨리 출발하게.” 이런 대답을 기대했었는데, 예수님의 반응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오해를 살만한 말씀이기에 깊이 묵상해봐야 할 예수님 말씀입니다.

     “혹시 예수님, 기본적인 가정교육 제대로 받지 못하신 것은 아닐까? 인간으로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도리도 하지 마라 하시니, 이거 너무 하신 것 아냐?”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수님, 친구 라자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셨던 분이었습니다. 갖은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의 고통이 너무나 안타까워 식음을 잊으면서까지 치유에 전념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곤경에 처한 여인의 처지가 너무나 불쌍해 당신 목숨까지 걸고 구해주신 분이었습니다.

     이런 분이 당신을 따르려는 제자 아버지의 장례식을 어떻게 소홀히 하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 그 배경을 눈여겨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무엇에 앞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의 긴박성’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추종에 대한 우선권’을 역설하시는 것입니다. 세상만사 안에 많은 중요한 일들이 많지만 영원한 생명의 획득 그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음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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