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와 바늘구멍[ 마태오 복음 19,23-30]

2012. 8. 21. 오전 8:41:51

글자



8월 21일 화요일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 마태 19,23-30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대변혁의 세월이었던 20세기 초반 (1903년 8월 4일) 교황에 선출되신 비오 10세 교황님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못지않게 신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한 몸에 받으셨던 특별한 교황님이셨습니다.     비오 10세 교황님의 정식 이름은 요셉 멜키올 사르토입니다. 그는 1835년 6월 2일,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령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오늘날 이탈리아 영토)이 트레비소 교구 내 리에세라는 작은 지방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슬하에 10남매를 두었는데, 사르토는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안 그래도 어려웠던 시절 10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부양하느라 부모의 등골이 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직업이 원래 구두수선공이었는데,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우체국 일까지 해서 ‘투잡’을 뛰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나니 사르토의 가정은 그야말로 찢어질 듯이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대신 어머니는 삯바느질이며 남의 집 농사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가난했던지 사르토는 매일 아침 6km나 되는 통학 길을 맨발로 걸어 다녔습니다.    극도의 가난을 딛고 교황좌까지 오른 비오 10세 교황님이었기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참으로 컸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의 영성을 끝까지 온몸으로 살아내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만토바 주교로 사목하던 시절 자신에게 당장 필요한 생필품마저 가난한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곤 했습니다. 교황에 선출되고 나서도 한때 자신이 가난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떳떳이 사람들에게 밝히셨습니다.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으며, 가난하게 살았고, 가난하게 죽을 것입니다.” 교황직에 선출되고 나셔서도 청빈을 사랑하던 그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거창하고 화려하던 교황착좌식 미사와 행사를 ‘완전’ 대폭 간소화시켰습니다.
     1858년 9월 8일 사제로 서품된 사르토는 9년간 톰볼로 본당의 보좌신부로, 그 후 8년간 살차노 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활동을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트레비소 대신학교의 영성지도 신부로 봉사했습니다. 가난하고 겸손했으며 누구보다도 극진히 교회를 사랑했고 사목적 열정으로 충만했던 사르토 신부는 1884년 11월 10일 만토바의 주교로, 1893년 6월 12일 베네치아 대교구 교구장 겸 추기경으로, 그리고 마침내 1903년 8월 4일 제257대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교황에 선출되면서 그가 내세운 모토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에페소 1장 10절)였습니다. 그는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십시오!”라고 외치며 교회 쇄신과 재건을 위한 찬란한 무대를 열었습니다.

     비오10세 교황은 그 어떤 선대 교황보다도 일을 사랑했던 교황이었습니다. 그는 새벽 4시에 기상해서 기도를 바쳤으며, 6시 미사, 그리고 8시에 하루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하루 일과는 톱클래스 연예인 저리 가라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접견, 계속되는 회의와 연구, 틈새 시간을 이용한 독서와 집필, 그리고 기도로 하루 일과를 채웠습니다. 밤 9시 저녁식사를 마친 비오 10세 교황님은 결코 곧바로 침실로 향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그는 또 다시 산적한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습관처럼 집무실로 발길을 돌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그 바쁜 와중에도 어린이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바티칸 내 성 다마소 정원에서는 삥 둘러앉은 어린이들 틈에서 문답식 교리를 지도하시는 비오 10세 교황님의 모습을 자주 뵐 수 있었습니다.

     비오 10세 교황님께서 남긴 업적을 낱낱이 열거하자면 2박 3일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신 분입니다.      그는 교회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일선 사목자인 사제들의 삶이 쇄신되어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제 양성의 못자리인 신학교의 쇄신이 필요하였기에 대대적인 신학교 통폐합 작업과 신학교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는 틈날 때 마다 잦은 고백성사와 잦은 영성체가 영성생활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신자들에게 강조했습니다. 그때 당시 얀세니즘의 영향으로 ‘그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죄인인 우리들이 어떻게 자주 모실 수 있는가?’ 더불어 ‘그 거룩한 성체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함부로 나눠줄 있겠느냐?’는 분위기가 농후했습니다.

      그러나 비오 10세 교황의 생각을 달랐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보다 자주 성체를 영하십시오. 그리고 이를 위해 보다 자주 고백성사를 보십시오. 성체는 천국으로 가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에게 이 최고의 음식을 어떻게 나누어주지 못한다 말입니까”라고 외치며 당시 12세가 되어야 첫영성체를 하던 관습을 바꾸어 7세로 연령을 낮추었습니다.

     교회 전반에 걸친 쇄신이 그의 주관심사였습니다. 주교 임명 절차를 개선했습니다. 교회법 개정 작업을 통해 새로운 교회법전을 편찬했습니다. 성경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존의 성경을 개정했습니다. 성경 교육 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성무일도를 시대에 맞게 개정 보완했습니다. 어린이 교리 교육서를 마련했습니다.

     11년간 교황직에 머무시는 동안 교회의 쇄신과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던 비오 10세 교황은 1914년 8월 21일 얼마 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을 슬픈 얼굴로 바라보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마태오 복음 19,23-30

버려도 버릴 것이 생깁니다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19,23)는 말씀을 들은 한 부자가 하느님, 낙타를 아주아주 작게 만들어 주시든지, 바늘 귀를 아주아주 크게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하면 저의 재산을 당신께 아낌없이 바치겠습니다. 하고 간절히 기도하였답니다.
그렇다면 그가 재산을 바친다고 해서 하느님나라를 차지할 수가 있을까요? 재물이 아니라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각자는 자기가 소유한 것을 포기하되 무엇을 버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버렸느냐가 중요합니다. 자기의 인간적인 유익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버렸을 때 가치가 있습니다.
상을 백배로 받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라는 것 때문에 버린다면 결코 진정한 열매는 맺을 수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상은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그분의 이름 때문에(루카18,29. 마태19,29) 바쳤을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입니다. 올림픽대회 때 상을 위해 고의적인 져주기 게임을 한 베드맨턴 경기는 실격을 당하였습니다.

한가지 때문에 전체를 얻을 수도 있지만 한가지 때문에 모두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를 얻을 수 있는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사실 부자가 가진 재물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재물에 눈이 가려 보아야 할 참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재물은 인간을 노예화 하는 유혹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상만을 생각하면 부정을 해서라도 일등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내용을 생각하면 그 생각을 한 순간 이미 경기에서 진 것입니다. 

사실 재물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잘 써야 합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보다 많은 재물을 소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그 축복을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 높이는 일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재물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무쪼록 많이 벌되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 높이는 일들을 하나하나 늘려가시기 바랍니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십시오. 버려도 버려도 또 버릴 것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 은 누구이겠습니까? 돈이 많다고 우쭐대다가는 쓰러지지만 착하게 살면 나뭇잎처럼 피어난다(잠언11,28)고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지 않으면 결국은 하느님 나라를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얻게 되고, 모든 것을 누리려 한 사람은 그것을 잃게 됩니다. 부디 모든 것을 얻는 기쁨을 차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잠언30,8-9)
사랑합니다.


 

낙타 바늘귀 통과하기


<낙타와 바늘귀>

 송영진 모세 신부님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을 꿇고,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십계명을 잘 지키라고 하십니다. 만일에 그 사람이 '알았습니다.' 하고 떠났다면 이야기가 간단하게 끝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는 십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는 것은  그가 십계명을 지키려고 한 의도와 지향과 노력을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라고 하신 말씀은, '십계명 실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너의 생각이 맞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십계명이 불완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것처럼 십계명을 완전하게 실천할 수 있다면 십계명 실천만으로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부족하다는 말은 십계명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실천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그가 십계명을 지키려고 한 의도와 지향과 노력은 훌륭하지만 십계명을 완전하게 실천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기 위한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나를 따라라.'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복음서 저자는 그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떠난 것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재산이 많았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고, 재물에 대한 '애착'을 끊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부족한 점입니다.

 그 사람이 떠난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시고, 제자들이 그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자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부자' 라는 말은 하느님보다 자기 재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모두 가리킵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가난하더라도 재물을 하느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바늘귀를 빠져나갈 수 없는 낙타입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라는 말씀은, 사람이 자기의 힘만으로는 (자기 자신의 공덕을 내세우는 것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지만,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면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고, 하느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다 구원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는 '소유와 무소유'에 관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무소유' 라는 말이 멋있긴 한데, '무소유'에만 매달리면 그것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집착이 될 수 있고, 또 만일에 하느님은 잊어버리고 '무소유'만 내세운다면...?  그건 우상숭배가 되어버립니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나를 따라라.' 라는 말씀은 '그 사람에게만' 하신 말씀입니다.

 실제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는 열두 사도뿐이고 다른 제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그 사람'을 사도들과 같은 급의 제자로 삼고 싶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라는 가르침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하느님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모든 신앙인에게 해당되는 일이지만, 모든 신앙인이 사도들(또는 수도자들)처럼 사유재산을 전부 다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 구절은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입니다.

세상 어떤 것보다도 하느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고,하느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십계명을 정말 잘 지켰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기들의 선행과 공로만을 내세우면서 자기들은 당연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당연히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낙타 같은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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