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예복 (마태오 22,1-14)

2012. 8. 23. 오전 7: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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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마태오 22,1-14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하는 나라를 임금이 베푼'혼인 잔치'에 비유하십니다.
그런 곳에는 아무나 갈 수 없습니다.초대받은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별 이유 없이 거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사람을 보내 다시 오라고 했지
만 역시 거절합니다. 심지어는 심부름꾼을 학대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임금의 호의를 그런 식으로 무시할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모른 체했습니다.따지고 보면 어리석은 일입니다.'임금은 군대를 보내 그들을 없애고 고을을 불살라'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불림을 받았지만 충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믿음의길이 '하는 나라의 초대'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임금이 베푸는 잔치'라고 하셨습니다. 잔치는 기쁨입니다. 신랑 신부가 새 출발하는 즐거운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신안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임금의 초대에 은하는 것이 됩니다.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혼인식에 참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삶'이 잔치에 참석하는 이가 입어야 할 '예복'이었습니다.
모르기에 대충 살아갑니다.
현실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부르심에 대한 진정한 응답입니다.

 


<옷을 잘 입읍시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오늘 복음 말미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 예복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강한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앞으로 이런 자리 올 때는 신경 좀 쓰라’ ‘나가서 옷 좀 갈아입고 와라’는 정도의 훈계가 아니라 창피하게도 혼인잔치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옷에 대해서, 외모에 대해서 거의 신경 쓰지 않는 편입니다. 신경 쓸 겨를이 없을뿐더러, 써봐야 ‘그게 그거라서’ 그렇습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등산을 갔었는데, 등산로 초입에서 꼬치어묵을 사먹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주인아저씨가 너무 바쁜 것 같아서, 제가 직접 국자를 들고 우리 아이들 먹을 것을 퍼주고 있을 때였습니다.
   일단의 등산객들이 갑자가 우르르 몰려들더니 “야, 저거 맛있겠다!”하더니...저한테 그러는 겁니다. “주인아저씨, 이거 하나에 얼마 씩이예요? 여기 화장실은 어디 있나요?” 내일부터 옷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습니다.


 장소에 맞는 옷을 적절하게 입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요. 특히 장례식이나 결혼식과도 같은 중대사에 참석할 때 장소에 어울리는 복장을 갖추려는 노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주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예절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혼인잔치에 비유합니다. 혼인은 인생의 여러 단계 가운데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무엇보다도 기쁨의 잔치입니다. 축복의 잔치입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에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신경을 써야 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당연히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평소 잘 안 입던 예복도 꺼내 손질해야 합니다. 헤어스타일도 한번 점검해봐야지요.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반바지에 멜빵에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장례식에 참석한다면 분명히 ‘몰상식한’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을 것입니다.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한 사람이 동네 공원 산책 나온 사람처럼 트레이닝복을 입고 왔다면 분명 ‘약간 맛이 간’ 사람으로 눈총을 받을 것입니다.


제대로 씻지도 않아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고, 머리는 봉두난발인 채 혼인잔치에 참석한다면 잔치 주인공의 기분이 ‘팍’상할 것입니다.


이런 논리는 하느님 나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느님 나라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잔치에 어울리는 예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잔치를 위한 예복은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 입는 예복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느님 나라 잔치에 가장 어울리는 예복은 바로 ‘이웃사랑의 실천’이란 예복입니다. ‘희생’이란 예복입니다. ‘겸손’, ‘자선’, ‘기도’예복입니다. ‘고통의 적극적인 수용’, ‘십자가를 기꺼이 수락함’이란 예복입니다. 또한 예복은 다른 무엇에 앞서 ‘성령안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께서 말씀하시길, 예복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사람들이란 ‘거짓된 사랑을 지닌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임금으로부터 잔치에 초대받았지만, 잔치에 올 때 예복을 제대로 입지 않고 온 사람은 한량없는 사랑을 베푼 임금에게 거짓 사랑으로 응답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 모든 예복 중에서도 가장 값진 예복, 예복 중에 예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란 예복입니다. 하느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세상이란 낡은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란 새로운 예복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 잔치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예복, 가장 값진 예복을 입었던 사람이 한 분 계신데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그분은 온 몸을 온통 오직 예수 그리스도란 예복으로 치장한 분이었습니다. 예복 중에 가장 빛나는 예복, 구원의 빛나는 겉옷인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온 생애를 단장한 왕후가 바로 성모님이셨습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천상잔치에 무상으로 초대하십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티켓 비용도 받지 않으시고.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은혜로운 초대, 도에 넘치는 과분한 초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죄가 많다하더라도, 아무리 형편없다하더라도 관대한 마음으로 우리를 당신 생명의 잔치로 초대하십니다.


 이토록 사랑으로 충만한 하느님 앞에 우리가 할 일은 기쁜 마음으로 잔치에 참석하는 일입니다. 정성껏 준비한 예복으로 갈아입는 일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세속에 찌든 낡은 예복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예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랍니다.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핑계없는 무덤없다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장가보내기 위해서 혼인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오랫동안 관심과 사랑으로 배려했던 이들을 초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이된 일입니까? 믿었던 이들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오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오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이기에 풍성하게 준비를 했는데 즐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미쳐 그들의 속을 보지 못한 탓이기도 합니다. 급기야 거리에 나가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초청하여 잔칫방을 채우라고 하였습니다.

받은 은혜보다도 자기 잇속을 차리느라고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갔습니다. 나 하나쯤이야! 그들은 당장 내가 먹고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내가 아니어도 축하객이 많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의 잔치는 매우 성대하였고 귀한 선물도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초대 받은 사람은 핑계 아닌 핑계를 댐으로써 선물을 받을 기회를 놓치고 전혀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선물을 차지하였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초대 받은 사람은 많았지만 정작 선택된 사람은 적었고 이 모습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구원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지만 결코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응답하는 사람만이 들어갑니다. 묵시록 3장20절에는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하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드리는 역할은 나의 몫입니다. 그리고 응답을 한다는 것은 그만한 준비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잔칫집에 가려면 그에 걸 맞는 예복을 입어야 하듯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만한 삶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여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가운데 예복을 준비해야 합니다.

배부르면 산해진미가 귀찮고 배고프면 보리죽이 꿀맛이다. 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헛배가 부르면 정말 먹어야 할 것을 먹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헛배가 불러 다른 것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일상 안에서도 미사참례, 성지순례, 피정이나 세미나, 교육,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에 기꺼이 응하는 사람만이 보람과 기쁨을 간직하게 됩니다. 똑같이 주어진 일이지만 은총의 기회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영적인 풍요로움을 주는 일에 핑계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주님의 초대를 거절하고 심지어 죄를 범하는 경우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면서도 안락의자에 앉기만을 원한다면 그는 결국 뽑힌 사람은 되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주님의 뜻을 행하는 예복도 없이 천상을 갈망한다면 허황된 꿈에 불과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22,14)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너의 예지에는 의지하지마라. 어떠한 길을 걷든 그분을 알아 모셔라. 그분께서 네 앞길을 곧게 해 주시리라.”(잠언3,5-6). 혹 준비가 미흡하다면 지금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나 하나라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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