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마태오 9,9-13)

2012. 7. 6. 오전 7:01:32

글자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 마태오 9,9-13


 
못난 사람도 희망이다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우리는 기왕이면 깔끔하고 멋있어 보이는 사람과 만나고 싶어합니다. 얼굴도 잘 생기고 돈도 있어 보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호감이 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은총이요 복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매력이 흘러넘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갈수록 밥맛인 사람도 있습니다. 겉보기와는 너무도 달라서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보지 않으려 해도 자꾸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가다가 세금 징수원으로 천대를 받는 사회계급에 속해 있는 마태오라는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길을 가시다가 부르셨다는 것은 하루하루 삶이 펼쳐지는 현장에서 부르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삶의 현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길이란 목적지가 아니라 목적지에 이르는 통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현장인 이세상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곳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세상은 간이역입니다. 종착역은 하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필이면 악명 높은 사기꾼이나 탐욕이 가득한 사람으로 간주되어 공개적으로 죄인 취급을 받던 세리 마태오를 부르시고 그 집의 식탁에 앉아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자리를 함께하셨습니다. 세리는 부정한 수단과 방법으로 돈을 버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주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혐오의 대상이 되었으며 자기가 번 돈을 가치 있게 쓸 줄을 몰랐던 인색한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당시 사회에서 가장 천대 받고 따돌림 당하던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과 자리를 함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렇게도 안목이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안목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큼 예수님의 품이 넓다는 것입니다. 그 품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문을 크게 열어도 스스로 들어가지 않는 자는 받아들일 수 없는 법입니다. 바리사이들이 꼭 그러했습니다. 마태오가 세관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바로 영적성장이 멈춘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안주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따돌림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고 그곳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고, 그곳을 떠나면 죽는 줄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을 생각하면 떠날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은총의 날, 진정한 행복의 날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여전히 옛 생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는 안주를 탈피하여 순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에 안주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큰 품을 우리의 마음으로 간직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게 될 때 거기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두 가지 부류의 죄인>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처지나 수준, 성향이 비슷한 ‘같은 과’끼리 어울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워낙 파격적인 분이시다 보니 자주 그런 보편적이고 통상적인 사고방식이나 논리구조를 과감하게 깨트리셨습니다.
     비록 특별한 스펙이나 학벌은 없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 마다 촌철살인의 명설교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당대 내놓으라는 대학자들과의 논쟁에서 결코 논리가 딸리는 법 없이 월등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미 수많은 제자들과 추종자들에 둘러싸인 큰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고 계셨습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 노셔야 될 ‘물’은 한참 위쪽이었습니다. 함부로 처신해서는 안될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께서 세리들, 죄인들과 어울리신 것입니다. 당시 세리들은 직업상 모세 율법을 제대로 준수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백성들에게 과다한 세금을 부과하였고, 세금을 제때 내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쥐어짰습니다. 당장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고리로 돈을 빌려주기도 했겠지요. 순식간에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마침내 벼랑 끝까지 밀려간 사람들 집을 찾아간 세리들은 살림살이들을 걷어차며 협박을 했을 것입니다.

     죄인들은 또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그들은 철저하게도 하느님을 등지고 살아가던 사람들,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살아가던 사람들, 하느님의 계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그들과 말하는 것, 어울리는 것뿐만 아니라 마주앉아 식사까지 하십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예수님 시대 당시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 이거 보통 중요한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아무하고나 밥 같이 안 먹었습니다. 같은 식탁에 앉는다는 것은 친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대명사격인 세리 마태오의 친구가 된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 앞에 당대 깨끗한 척 하기로 유명했던 바리사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합니다. 즉시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가 따집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그 순간 그들을 향해 던지시는 예수님의 말씀, 진짜 죄인들인 잘난 척 하는 사람들에게는 폐부를 찌르는 비수 같은 말씀, 자신의 가슴을 치는 죄인들, 그러나 희망이 있는 죄인들에게는 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생수 같은 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죄인들이라고 다 같은 죄인이 아닙니다. 죄인에는 크게 두 가지 부류의 죄인이 있습니다. 
   첫 번째 죄인은 아주 고약한 구제불능의 죄인입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입니다. 교만함, 자만심으로 가득 차 하느님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큰 죄인입니다.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하며 하느님을 향한 문을 굳게 닫아버린 대 죄인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죄인은 비록 죄 속에 살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두 번째 죄인이 세리 마태오입니다. 그는 자신의 비참한 실상, 지속적인 결핍, 인간적 한계, 오랜 기간 죄 속에서 살아왔던 세월을 가슴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자비의 손길만이 자신을 죄 속에서 건져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회개가 준비된 죄인이었습니다.     이런 마태오였기에 예수님의 단 한 마디면 충분했습니다. “나를 따라라.”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나약함과 비참함을 잘 파악하고 그분 자비의 손길을 받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연 사람에게만 당신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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