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 11,28-30
억지로 하면
예전에는 험한 밭이나 논을 깊이 갈아엎을 때 겨릿소를 부렸습니다. 겨릿소는 같은 멍에를 메고 쟁기를 끄는 소 두 마리를 말합니다.
겨릿소를 부릴 때에는 일을 잘하고 경험이 많은 소를 농부 쪽에서 볼 때 왼쪽에, 일을 잘 못하고 경험이 적은 소는 오른쪽에 세웁니다. 왼쪽에 서는 소를 ‘안소’라고 하고, 오른쪽에 서는 소를 ‘마라소’라고 부릅니다. 마라소는 안소를 따라 자연스럽게 일을 배웁니다. 마라소는 시간이 흘러 일을 배우고 경험을 쌓으면 안소가 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과 함께 멍에를 메자고 초대하십니다. 당신과 함께 겨릿소가 되자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멍에를 메는 것은 비록 힘이 들겠지만, 예수님께서 몸소 안소가 되시어 우리가 진 짐을 가볍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의 무거운 짐도 가벼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에 그 곁에 조용히 다가가 안소가 되어 준다면 그가 진 짐도 한결 가벼워질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믿음이 약한 형제와 함께 멍에를 메고 동행하며 배려해 주는 사람입니다.
<환대의 주님>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형제들과 함께 강가로 소풍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본격적인 피서철이 가까워오니 벌써 어떤 분들, 이때다 하며 한몫 보시려고 마음 단단히 잡수신 분위기입니다. 웬만큼 쉴만한 물가는 사용료를 지불해야하는 평상으로 빼곡합니다.
평상을 빌릴 처지는 아니고, 사람들도 별로 없기에 평상 바로 밑에 깔개를 펴고 둘러앉았습니다. 카드 한판 끝나기도 전에 무섭게 생긴 관리인이 달려오시더니, 한철 장산데, 이러시면 어떡하냐며, 닭백숙을 시키든지, 아니면 사용료 3만원을 내든지, 아니면 당장 꺼지라고 하시네요.
할 수 없이 강줄기를 따라 더 올라가보니, 인적도 없고, 관리인도 없고, 꽤 괜찮은 물가가 있어서, 이게 웬 떡이냐며 즉시 자리를 잡았습니다. 다시 카드놀이를 시작하는데, 왠지 불안하다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호루라기까지 불며 달려와서 사유지라며 쫒아내는군요.
잠시였지만 이리저리 내쫒기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 천덕꾸러기가 되어 내몰린다는 것, 참으로 기분 씁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환대의 주님이십니다. 선인이든 죄인이든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고 기쁜 얼굴로 환영하시는 넉넉한 주님이십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그 누구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보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우리의 주님은 특별히 삶이 꼬이고 꼬여가는 사람들의 피난처입니다. 우리의 주님은 특별히 캄캄한 밤길을 홀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위로자이십니다. 우리의 주님은 너무나 큰 고통에 짓눌려 울고 있는 사람들의 다정한 친구이신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주님은 사방이 넘지 못할 막다른 높은 담으로 꽉 막힌 사람들의 희망이신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주님, 너무나 감사하게도 사방이 꽉 막혀 꼼짝달싹 못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문 하나, 생명의 문 하나를 활짝 열어주시는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혹시라도 지금 철저한 소외감에 휩싸여 계십니까? 혹시라도 지금 큰 걱정과 근심이 시달리고 계십니까? 혹시라도 지금 등 뒤에 지워진 십자가의 무게가 천근만근입니까? 혹시라도 사방이 꽉 막혀있습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해결사이신 주님께로 나아가십시오. 친정엄마 같으신 그분께로 나아가십시오. 그분께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그저 짠한 얼굴로, 그저 환한 얼굴로 맞아주시는 환대의 주님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보기만 봐도 안심이 되는 우리 삶의 등대이신 주님, 다가서면 너무나 가슴 훈훈해지는 벽난로 같은 주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때로 외롭고, 때로 슬프고, 때로 고달픈 순간도 많았지만,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오직 한 가지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힘든 사람들 무조건 다 내게 오라며 크게 손짓하시는 환대의 주님을 닮은 우리 교회, 생각만 해도 마음 푸근해지는 고향 같은 우리 교회, 남은 내 인생 완벽히 책임져줄 따뜻한 둥지 같은 우리 교회...

+ 마태오 11,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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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인터넷을 통한 가상공간에서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남의 개인 정보를 훔치고, 사기 치며, 익명을 이용하여 어이없는 글을 올리고 비난하며,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심지어 부정투표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것이 병입니다. 차라리 모르기나 하면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으련만…. 아는 것이 좋은데 쓰여 힘이 될 수 있고 능력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알면서도 모르는 게 으뜸이요, 모르면서 아는 게 병통”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당시에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배척을 당하였습니다. 소위 잘나고 똑똑한 내로라하는 사람에게는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최고였기 때문에 주님의 가르침이 들어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철부지들에게는 받아들여졌습니다. 그야말로 촌놈들, 상것들, 별 볼일 없는 못난이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단순함이 있었고 부족하다고 인정하기에 겸손으로 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그것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잘난 사람은 남을 등쳐먹으려 애를 쓰고,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 서로를 헐뜯고 깎아 내리지만 때 묻지 않은 철부지들은 새로운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야말로 잔머리를 굴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단순한 사람을 미덥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이 결코 병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물을 꿰뚫는 통찰력을 가리키며 친숙해 지는 것, 그리고 감정을 이해하며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결국 알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남녀가 결혼을 통해 가장 깊이 만나는 것을 ‘안다’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안다고 하는 것은 당신의 사랑으로 충만히 채워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고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마태11,27) 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과 하느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그 아버지에 관해서 아들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고 그분이 알려준 아버지를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분을 알리기 위해서 그분을 알아야 하는데 그 첫 자세가 “어린이와 같이”(마르10,15)단순한 마음으로 온전히 의지하며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단순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뜻을 더욱 잘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전할 수 있는 은혜가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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