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 월요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마르코 9,2-10)

2012. 8. 6. 오전 7: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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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6일 월요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마르코 9,2-10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마르 9,2-3).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은 공관 복음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이 말씀에 따른 것이다. 곧 예수님께서 일부 제자들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일을 기리는 축일이다. 오늘 축일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 40일 전에 지낸다. 교회의 전승에 따라,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40일 전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의 결과인 영광스러운 부활을 미리 보여 주시고자 거룩한 변모의 표징을 드러내셨다. 1457년 갈리스토 3세 교황이 로마 전례력에 이 축일을 도입하였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오르시자 얼굴 모습이 변하시고 옷은 새하얗게 빛났습니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엘리야는 예언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예수님의 변모 사건은 예수님께서 율법과 예언을 완성하시는 분이심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율법을 완성하시고, 예언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의 시대, 곧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왔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평지가 일상생활을 나타내는 곳이라면, 산은 외딴곳으로서 하느님을 만나는 좋은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높은 산으로 가시어 하느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하나가 되신 예수님의 모습은 하느님을 닮아 거룩하게 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러 외딴곳으로 피정을 하러 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고 그분 안에 오래 머물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을 닮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빛나는 모습으로 변하신 것도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밖의 태양 빛을 받아 성당 안을 아름답게 비추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 이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참으로 특별하고 기이한 예수 변모 사건>

 

     예수 변모 사건은 참으로 특별하고 기이한 사건이기에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몇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①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 모두를 데리고 타볼 산으로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베드와 야고보와 요한 세제자만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세 제자만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선발하신 12사도 가운데서도 핵심 멤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차별대우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도단의 중심과 균형을 잡아야할 그들에게 특별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제자단의 리더들인 그들에게 명확하게 당신의 신원을 드러내 보이는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② 구릉과 계곡 사이에 위치한 높이 600미터 정도의 타볼 산 정상에 오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모습이 변하십니다. 얼굴은 광채로 빛나시고 입고 계시던 옷 역시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타볼 산 위에서의 변모는 예수님의 신성과 초월성을 드러내는 광경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변모 앞에 입이 쩍 벌어지게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변모를 바라보면서 드디어 예수님의 신원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③ 이윽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왜 이 장면에서 뜬금없이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합니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 삶의 중심이자 원리인 율법을 창시한 율법의 원조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구약시대 예언자 중의 대예언자로서 언젠가 도래할 메시아에 대해 가장 명쾌하게 예언했던 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두 분의 모습을 통해 구약과 율법에서 약속한 메시아의 재림, 그의 수난과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④ 마침내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런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구름은 본래 신성을 드러내는 표상입니다. 즉 실제적인 하느님의 출현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세 제자 앞에서 종결자로서, 완벽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메시아 성을 확증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통해 세사도의 눈을 가리고 있던 예수님과 관련된 베일이 완전히 벗겨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명명백백히 확인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초월성, 메시아 성을. 그리고 자신들의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원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하느님 아버지의 음성을. “너희가 따르고 있는 예수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의심하지 말고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느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여 이 세상에 내려오신 ‘육화사건’은 모든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강생 사건 앞에서 인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해왔습니다. 완전 불신, 무관심, 호기심, 냉대, 귀 막음, 무시, 적대...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교 교회의 선택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육화 사건’에 대한 전적인 수용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외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빛으로부터 오신 빛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느님으로부터 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삶입니다. 봉헌생활이란 예수님의 인생에 대한 지속적 관상의 삶입니다.

     그 어떤 훌륭한 인간적 지혜라 할지라도 하느님 계시의 신비 안으로 완전히 파고들 수 없습니다. 오직 열렬한 기도를 통해서만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접근할 수 있으며 그를 알고 그를 사랑하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아무런 조건 없이,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우리들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신비로운 육화 사건을 향해 활짝 개방하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욕심을 부리려면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어떤 개가 고기 한 첨을 물고서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물속에 비친 제 그림자를 본 그 개는 그것이 더 큰 고기 덩어리를 물고 있는 다른 개라고 생각했습니다. 물속의 개가 가지고 있는 고기를 빼앗으려고 덤벼듬과 동시에 자기 입에 물고 있던 고기 덩어리를 놓치고 말았습니다.”(이솝우화) 이 이야기는 현재 가진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욕심내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좀처럼 이미 가진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없는 것에만 생각합니다.”(쇼펜하우어)

베드로 사도도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만을 데리고 산에 오르셔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의 옷은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습니다(마르9,3). 이때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마르9,5)하고 말하였습니다.

좋은 것을 보았으니 그 체험을 영원히 간직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욕심을 부리려면 이런 욕심을 부려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을 온전히 차지하고 싶은 욕심 말입니다.“주님, 당신 외에는 아무 것도 원치 않습니다. 주님만을 차지하게 하소서”(예수아기의 성녀 데레사). 사실 주님은 “세상의 빛”(요한 8,12)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빛의 자녀이며 대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 속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1데살5,5) 그러므로“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에페5,8) 분명한 것은 어떤 마전장이도 하얗게 할 없을 만큼 빛났다는 말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다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빛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9,7)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요한2,3-4)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어야 할 장소, 초막을 지어야 할 장소는 산 위가 아니라 베드로가 매일 생활하고 있는 삶의 현장입니다. 물론 초막을 지을 재료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매일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생활할 때 베드로와 우리가 머물 초막이 지어질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묵상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서도 초막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사람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삶의 연륜에 걸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변모는 곧 체험하게 될 부활의 표지입니다.“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2고린3,18).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3,2). 그러므로 다른 욕심은 접고 주님을 뵙고자 하는 마음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도 해와 같이 빛나도록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알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며, 이 모든 것을 모르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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