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마태오 9,1-8)

2012. 7. 5. 오전 6:38:47

글자


2012 7 5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마태오 9,1-8)

 "Courage, child,
your sins are forgiven."

 

 

말씀의 초대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는 아모스가 임금과 나라에 반란을 꾸미고 있다고 고발한다. 아모스는 자신의 부르심을 역설하며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치유해 주시며 죄의 멍에에 눌려 살던 그를 자유롭게 해 주신다. 그러자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한다(복음).

☆☆☆

아모스가 임금의 성소를 고발하는 말을 듣고, 성소의 책임자 아마츠야 사제는 아모스가 기존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아마츠야에게는 아모스의 비판과 단죄가 주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아닌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백성의 소요와 반란을 막을 수 있으면 그뿐이다. 그렇지만 아모스는 오로지 주님께만 순종해야 함을 강조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치심으로써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신다. 그러나 율법 학자들은 종교적 이론에만 집착한 나머지, 인간이 놓인 상황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해방시키시는 분이시다(복음).

☆☆☆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병이 들면 ‘내가 평소에 무슨 죄를 많이 지어서 이런가?’ 하며 자책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중풍 병자도 자신은 하느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세월을 보냈을 것입니다. 중풍 병자는 목숨은 살아 있지만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당신 앞으로 데려오는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용서받았다는 것은 하느님과 끊어진 끈이 다시 연결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용서해 주시며 그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제 중풍 병자는 용서를 통하여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짓누르던 무거운 멍에를 그의 어깨에서 벗겨 주셨습니다. 죄의식으로 족쇄에 묶여 있던 병자를 자유롭게 해 주신 것입니다.
중풍은 혈관에 피가 제대로 흐르지 않아서 몸이 마비되는 병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앞이 꽉 막혀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 다가가면 그분께서는 우리 인생의 막힌 곳을 뚫어 주십니다. 우리는 약하고 불완전하여 죄로 넘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죄의식에 짓눌려 살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며 자유롭게 살도록 해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옛날 사람들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질병은 지은 죄 때문에 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주님께 데리고 옵니다. 평상을 들고 온 사람들이 기특합니다. 대체로 중풍 병자는 소외되기 일쑤인데, 이들은 자기네 공동체 일원으로 삼을 뿐 아니라, 그를 주님께 데리고 와 고쳐 주십사고 청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유로우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자유를 방해하는 죄의 뿌리부터 뽑아내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은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깨끗하게 씻어 주십니다. 우리로서는 매일의 삶이 언제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율법 학자들은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론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사랑을 이해할 수도 없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을 주님이신 그리스도 덕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

 

 

중풍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질환입니다. 그 결과 한쪽 팔다리가 마비되거나 발음이 힘들어집니다. 본인에게는 청천벽력입니다. 충격으로 한동안은 삶의 많은 부분이 흔들리게 됩니다. 새롭게 인생을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지만 저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복음의 중풍 병자는 예수님을 찾아왔다가 기적을 체험하고 돌아갑니다. 자신을 태우고 왔던 평상을 본인이 들고 나간 것입니다. 그의 표정이 어떠했을지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놀람과 환희와 감사로 빛나는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주님께서는 그의 죄까지도 용서해 주셨습니다.
유다인들은 원인 모를 질병은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지은 죄의 벌이 그 사람에게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네 죄를 용서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죄를 용서해 주었기에 죄의 결과인 중풍도 사라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율법 학자들은 따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운명이 바뀌는 사건을 자신들의 지식만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눈길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몸이 건강하다고 마음도 자동적으로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마음은 절대로 건강해지지 않습니다.

 
 

한 집에 머물러라!

-강신모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중풍 병자를 치유하는 것과 그의 죄를 용서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어려운가??”

물으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중풍 병자를 치유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겠지만, 당시 유다인들은 죄를 용서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하느님만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대사제조차도 심지어 메시아조차도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중풍 병자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치유하심으로써 당신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보이십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에 과학을 발전시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습니다. 동시에 하느님처럼 서로 용서할 능력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정복하는 능력은 계속 개발해 왔지만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 서로 용서하는 능력은 그냥 버려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과 의학이 발전했어도 사람들은 욕심 부리고 자연을 파괴하고 서로 미워하고 스트레스 받으며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삶은 겉으로는 발전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비틀려 가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의 문명이 무절제한 욕심과 증오로 파괴되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용서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용서의 권한

-이준석 신부-

 유다인들은 하느님께만 유보된 몇 가지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보시고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모독한다며 투덜거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심으로써 당신의 말씀이 옳았음을 입증하셨습니다.
이에 군중은 용서의 권한을 사람들에게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
오늘 복음의 이면에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에 대한
초대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들 사이에 오래된 논쟁이 숨어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인간이 죄를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인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으로 유보시키려 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인간의 삶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마태오 복음사가는 교회를 통한 죄의 용서가 유효함을
오늘 복음을 통해 입증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용서의 은총을 교회 안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해 성사입니다. 고해 성사는 단순히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한 가상적인 예식이 아닙니다.
성사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의 권한을 주신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며 실제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니 자주 고해 성사를 통해 주님 앞에서 건강한 삶을 회복하도록 합시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7월 13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 마태오 10,16-2312.07.13조회 49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마태오 9,9-13)12.07.06조회 60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마태오 9,1-8)12.07.05조회 65+ 마귀들을 두려워마라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12.07.04조회 752012년 6월 25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남북통일 기원 미사]12.06.25조회 223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오 6,24-34)12.06.23조회 675마태6, 19-23 묵상/ 그리스도 안에 쌓는 모불12.06.22조회 4392012년 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12.06.18조회 63예수성심 대축일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12.06.14조회 439갈길은 멀고 험해도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12.05.30조회 524+ 바늘 귀를 아주 크게 만들어 ( 마르코 10,17-27)/ 반영억라파엘신부12.05.28조회 8465월 3일 목요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 요한14,6-1412.05.03조회 1,157“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 6,52-59)12.04.27조회 536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코 16,15-2012.04.25조회 77부활 제3주간 화요일 (요한 6,30-35) 내가 생명의 빵이다.12.04.24조회 46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요한 6,22-29)12.04.23조회 46부활 제2주간 목요일(요한 3,31-36)하늘에서 오신 분12.04.19조회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