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화요일 (요한 6,30-35) 내가 생명의 빵이다.

2012. 4. 24. 오전 7:02:49

글자


4월 24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 요한 6,30-35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말씀의 초대

스테파노는 자신을 고발하는 유다인들을 꾸짖는다. 예언자를 박해한 조상들처럼 처신한다며 비난한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돌을 던지며 죽이려 한다. 그러나 스테파노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정면으로 죽음을 맞이한다(1독서). 생명의 빵은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다. 그런데도 군중은 세상의 빵을 바라고 있다. 하늘의 음식인 줄 아직은 모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께 오라고 하신다. 그러면 결코 배고프지 않고, 결코 목마르지 않을 길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신앙인은 성체를 모심으로써 주님의 은총을 얻는다(복음).

 

 

 

오늘의 묵상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자부심을 갖고 대답합니다. 만나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조상들이 사막을 떠돌 때, 하늘이 내려 준 음식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그 만나라고 하십니다. 기적의 양식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유다인들의 자부심을 건너뛰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빵은 생명의 이유입니다. ‘왜 사는지에 대한 답변입니다. 주님 안에서 삶의 원인을 찾으라는 가르침입니다. 진정 우리는 어찌하여 삶을 이어 가고 있는지요? 분명한 답들 가운데 하나는 가족입니다. 해석이 힘들다면 달리 질문하면 됩니다. 죽지 못하는지되물어 보는 겁니다. 가족이 걸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당신 안에서 삶의 에너지를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인 역시 인생의 사막을 떠돌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언제까지 참아야 할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매일매일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늘의 만나가 그립습니다. 은총의 이끄심에 기대를 겁니다. 희망을 안고 있으면 결국은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서 오아시스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사막에서 가장 강한 짐승은 낙타입니다. 다른 동물은 강렬한 태양 아래서 맥을 못 추지만 낙타는 견디어 냅니다. 그는 자신의 몸에 물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많은 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느 동물과 비슷한 양의 물입니다. 하지만 낙타는 자신의 내부에 물이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기억합니다. 그 기억이 희망이 되어 사막의 뜨거움을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사막에서 강한 식물은 선인장입니다. 줄기는 최대한 물을 머금어야 했기에 뚱뚱해졌습니다. 잎은 최소한의 물로써 버티어야 했기에 가늘어졌습니다. 선인장의 가시는 잎이 퇴화된 것이라고 합니다. 생존을 위한 발버둥은 이렇게 모양새마저 바꾸었습니다. 그러기에 선인장 꽃은 슬픔을 간직한 화려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 생명의 에너지가 있음을 설파하십니다. 인생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려면 당신께 오라는 말씀입니다.
낙타는 오아시스를 만나면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부에 다시 물을 채웁니다. ‘물은 곧 희망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낙타의 지혜를 생각해 봅니다. 희망의 주님께서 생명의 빵으로 오신 이유를 묵상해 봅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육체가 성하면 영혼도 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는 육체만 건강하면 영혼은 자동적으로 건강해지는 줄로 생각합니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표어를 너무 많이 들어 온 탓입니다. 이 외침의 본래 의미는 육체와 함께 정신(영혼)도 건전해지자는 것입니다.
영혼과 육체를 위한 노력은 별개의 것입니다. 육체에 쏟는 정성의 절반만 영혼에 쏟더라도 얼마나 강인한 영혼이 될는지요. 육체는 건강미가 넘치지만, 영혼이 병들어 있다면 문제입니다. 당연히 반응이 나타납니다. 삶이 허무하고 까닭 없는 불안이 떠나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원인을 모릅니다. 영적 갈증인 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지요.
어디로 가겠습니까? 본능의 충족이 탈출구가 되기 쉽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욕과 식욕과 소유욕을 좇는 불나비가 되어 가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갈증을 없앨 오아시스는 당신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은 사막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힘을 받아야 건강한 영혼이 될 수 있습니다. 본능을 조절하는 절제를 지닐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떠돌던 시절, 굶주림에 지친 그들은 모세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졸라 댔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몸소 만나라는 빵을 내려 주셨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만나를 먹고 배고픔을 달랬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당신을 비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먹었지만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인데, 이 빵을 먹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주시는 빵과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당신의 육신이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리시어 우리의 양식인 빵이 되셨습니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양식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역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빵이 되신 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조건 없는 사랑으로 빵이 되시고, 이 빵은 사랑에 굶주린 우리에게 삶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사랑에 대한 굶주림은 계속됩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성체로 오시어 우리를 채워 주십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 6,52-59)12.04.27조회 536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코 16,15-2012.04.25조회 77부활 제3주간 화요일 (요한 6,30-35) 내가 생명의 빵이다.12.04.24조회 47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요한 6,22-29)12.04.23조회 46부활 제2주간 목요일(요한 3,31-36)하늘에서 오신 분12.04.19조회 67“마리아야!”(요한 20,11-18)“라뿌니!”12.04.10조회 101부활 성야(마르코 16,1-7) 가서 일러라. 갈릴레아로 간다고~~12.04.07조회 79주님 수난 성금요일(요한 18,1 - 19,42.)12.04.06조회 46주님 만찬 성목요일 12.04.05(요한 13,1-15) 주님의 만찬미사12.04.05조회 1,108“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14-25)12.04.04조회 964“주님, 그게 누굽니까? (요한 13,21-33.36-38)12.04.03조회 48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붇는 마리아(요한 12,1-11)12.04.02조회 2,012한사람이 백성을 위해(요한 11,45-56)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12.03.31조회 68사람이 하느님이 될 수 없다 (요한10,31-42)사순 제5주간 금요일12.03.30조회 450‘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다'(요한 8,51-59)12.03.29조회 84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1-42)12.03.28조회 643월 26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루카 1,26-38)12.03.26조회 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