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루카 1,26-38)

2012. 3. 26. 오전 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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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6일 월요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가브리엘 천사가 나자렛 고을의 처녀 마리아에게서 구세주가 탄생할 것임을 예고한 날이다. 성경 말씀처럼 동정녀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명을 받은 천사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라는 인사를 받으셨고, 이에 마리아께서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응답하신다. 이러한 순명으로 마리아께서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동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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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26-38)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 가문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이사야 7,10-14; 8,10ㄷ).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몸소 속죄의 제물이 되셨고, 예수님의 단 한 번의 제사로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다(히브리서 10,4-10).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하고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굳게 믿은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루카. 1,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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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이탈리아 출신 카를로 카레토(1910-1988년)는 샤를 드 푸코가 설립한 ‘예수의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십 년 동안 사하라 사막에서 관상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사하라 사막에서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굳게 한 중요한 기회를 만났다고 하면서, 자신의 체험담을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내가 오랜 기간 사막에 머물러 있을 때였다. 가끔 나는 사막에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한테서 묵었다. 그런데 그 천막촌 아가씨 하나가 다른 천막촌 총각에게 정혼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들었다. 그 아가씨는 나이가 너무 어려서 아직 신랑한테 살러 가지는 않고 집에 있었다. 그 뒤 두 해가 지나서였다. 그 천막촌을 다시 들르게 되어 촌장에게 그 아가씨가 신랑에게 가서 잘 사는지 물었다. 그러자 촌장은 매우 난처한 표정이 되더니 입을 꾹 다물고 마는 것이었다. 저녁 늦게 마을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으로 물을 길러 가는 길에 내가 묵는 촌장집의 하인을 만났다. 나는 호기심에 못 이겨 그 하인을 붙들고 촌장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을 끊은 까닭을 물었다. 하인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를 단단히 믿는다는 표정을 하면서 손으로 멱을 따는 시늉을 하였다. 아가씨가 같이 살기 전에 임신한 것이 드러났고 집안의 체면 때문에 그 희생을 치러야 했다는 것이었다. 정혼한 남자에게 정조를 지키지 못하였다고 해서 그 처녀가 살해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복되도다 믿으신 분』에서).
이천 년 전, 이스라엘에서 처녀의 임신은 죽음을 각오한 행위입니다. 설령 죽지 않는다고 해도 마리아는 이제 처녀 엄마로서 미혼모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자렛 동네 사람들은 끝없이 눈총을 줄 것입니다. 아낙네들의 입방아는 참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 이 모든 어려움과 시련을 견뎌 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말씀이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믿음을 고백합니다. 믿음은 다른 사람들이 주는 상처와 모욕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믿음은 위험이나 고통 한가운데에 있을 때에도 잘 버틸 수 있게 해 줍니다. 믿음의 바탕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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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을 돌아보면 매일매일 교리실마다 레지오 단원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탁자 위에 조그만 성모상 하나, 꽃 한 송이 마련해 놓고 묵주를 손에 잡고 정성스럽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봐 주지도 않는 후미진 작은 교리실에서 이들이 바치는 기도 소리가 참 아름답게 들립니다.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의 가난한 시골 처녀, 그저 흔한 이름에 불과했던 마리아. 하느님께 기도하며 풀꽃처럼 살던 보잘것없는 이. 이 작은 이 안에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께서 잉태되십니다. 보일 듯 말 듯, 여리고 가난한 작은 이의 소박한 기도 속에서 세상 구원의 역사가 열렸습니다.
성모님의 영성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모님처럼 세상의 구원을 위해 풀꽃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처럼, ‘사막 어디엔가에서 사막을 아름답게 해 줄 우물이 되는 것입니다. 저 산을 생기 있게 해 줄이름 모를 풀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그들의 기도는 교회의영적 우물이 되고, 교회 영성의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화와 구원은 영웅호걸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묵주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넘기며 기도하는 소박한 사람들이 일구어 내는 것입니다. 나자렛 성모님의 모범을 배운다면, 우리가 모두 작은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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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입니다. 기쁨의 이유를 은총이라 하고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면 기쁨도 가득하다는 암시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곳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물질이 넘치고, 건강이 받쳐 주면 자동적으로 기쁘게 되는 줄 압니다. 하지만 근본은 은총입니다. 모든 것에 앞서은총이 있어야 함을 천사는 알려 주고 있습니다.
기도와 성사 생활에 힘쓰는 이들은 삶의 불가능을 차츰 가능한 일로 바라봅니다. 할 수 없다고 제쳐 두었던 일을 극복해 나갑니다. 하늘의 힘이 끌어 주시는 것이지요. 이러한 체험 자체가 은총입니다. 사업이든, 인간관계든 그렇게 해서 생각도 하지 않았던방향으로 나아감을 보게 됩니다.
마리아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만났기에 삶이 바뀌십니다. 평소의 신앙생활이 어떠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천사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높으신 분의 힘이 하시는 일이라고만 답합니다. 그러고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기를 가진 엘리사벳이야기를 합니다.
둘러보면 하느님의 손길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께서는 순순히 응답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응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움직여 나가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 담긴 높으신 분의 뜻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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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십자가도 받아들이려 합니다. 오히려 그런 희생을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은총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자식의 십자가를 안고 가면서도 그의 앞날을 위해 기도하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자녀는 힘들고 괴로울 때 어머니를 먼저 떠올립니다. 자신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러한 어머니의 길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장황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께서하시는 일이라고만 답합니다. 그러고는 노년에 아기를 가진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끄심과 깨달음이 답일 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분의 이끄심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께서도 선뜻 답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 뜻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들 앞에서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의 평화를 만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저는 3월17일 청원군 노인복지관 관장을 겸임하는 인사발령을 받았습니다.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결정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왜 저에게는 이러한 십자가를 주십니까? 지금도 벅찬데.....거두어달라고 청해야 하나요?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하신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짊어지고 갈 힘도 주시리라 믿으며 순명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순명을 하라고, 한 알의 밀알이 되라고 강론을 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교구에는 정기적인 사제 인사이동이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인사권자인 주교님께서 발표하기도 전에 신부님들 사이에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서 누가 어디로 갈 것이라고 인사이동을 다 합니다. 그러나 막상 인사발령 공문을 받으면 의외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해마다 그것을 반복하는 것은 인사권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사제로 서품 받으면서 독신과 순명을 서약하며 그리스도를 닮은 가난한 삶을 살 것을 권고 받습니다. 그렇다면 주교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삶의 자리가 복된 곳이고, 그곳에서 기쁨으로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주님의 뜻보다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 서운함을 갖기도 합니다. 주어진 현실을 통해 주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1,30)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리아는 이해되지 않는 이 말씀에 결국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은 바로 마리아의 이 믿음과 믿음에 따르는 순명으로 인하여 구세주의 탄생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의 풍습을 생각하면 약혼한 처녀가 부모도 모르고 약혼자도 모르게 임신하여 배가 불러온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응답은 죽음을 각오한 대답이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순명은 인간이 바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루카1,37) 하지만 인간의 협력을 요구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결코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복종없이 천명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이현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진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걸작품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디이든 주님의 뜻에 기꺼이 순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 분명히 역사하십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당신이 쉼을 원하시면 저는 사랑으로 쉬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일하라고 명을 내리시면 저는 일을 하면서 죽고싶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일상 안에서 언제든 주님의 말씀에 순명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의 손 안에 있는 연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연장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도구가 되는 기쁨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루카1,35) 하였습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내려오시고 높으신 분의 힘이 우리를 덮어 죽기까지 주님의 말씀에 순명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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