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0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낫기를 원하느냐?'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거라.
(요한 5,1-3ㄱ.5-16)
"Do you want to be well?"
"Rise, take up your mat, and walk."

말씀의 초대
주님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든다. 그러면 바다가 되살아난다. 하느님께서는 이 물처럼 모든 생명체에 생명과 활력을 주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벳자타 연못가에서 서른여덟 해 동안 앓고 있던 병자를 고쳐 주신다. 예수님 안에 사람을 살리는 생명이 있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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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벳자타 연못은 평상시에는 물이 잦아들었다가 어느 한순간 물이 분출하는 연못입니다. 사람들은 물이 분출할 때 그리로 뛰어들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병자가 와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서른여덟 해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혼자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곳을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예수님의 이 말씀에 그 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곁에 있었는데도 그는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많은 사람이 그의 주변에 있었지만, 그를 불쌍히 여기고 돌보아 줄 사람이 곁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주변에는 자신의 병을 고치려는 데에만 마음을 쓰는 이기적인 육체들만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벳자타 연못가에 누워 있는 그 병자 곁에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는 내게 과연 어떤 말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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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벳자타 못’ 물이 출렁거리면 기적이 일어나고, 처음으로 뛰어든 이는 은혜를 입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지금도 여러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38년을 기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끈질긴 인내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측은히 여기시어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그날이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병이 나아’ 들것을 들고 가는 그 병자에게 시비를 겁니다.
안식일에는 ‘무거운 짐’을 드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을 낫게 해 주신 분의 말씀만이 있을 뿐입니다. 38년을 기다린 끝에 얻은 치유였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의 시비는 계속됩니다. 그들의 화살은 예수님을 향합니다.
그들 눈에는 38년의 애절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안식일 법을 어긴 행동만이 보일 뿐입니다. 그런 행동을 지시한 사람의 의중만이 관심입니다. 그런 곳에 어떻게 ‘율법의 정신’이 있을는지요? 조직과 단체가 그렇게 바뀌고 있다면 누군가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사랑은 규칙보다 더 소중합니다. 모든 질서를 뛰어넘는 감동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남자는 38년을 기다린 끝에 ‘사랑의 주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벳자타 못은 기원전 2세기경, 성전에 맑은 물을 공급하려고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물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소문에 병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벳자타 못은 우리 곁에도 있습니다. 애절한 믿음으로 다가가면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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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은 물을 두려워하였을 뿐 아니라 물에는 어떠한 신이 살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벳자타 못 주변에 모여든 수많은 병자들이 물이 출렁거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미신 때문인데, 벳자타 못의 물이 출렁일 때 가장 먼저 그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병을 깨끗이 치유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삼십팔 년 동안 앓고 있는 병자의 치유 이야기를 봅니다. 이 병자는 자신이 분명 그 연못에 먼저 들어갈 수 없음에도 낫고자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계속 그 연못가에 누워 있었습니다. 곧, 자신의 힘으로는 치유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병자를 보시고 안타까운 마음에서 “건강해지고 싶으냐?”는 짧은 물음과 함께 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치유를 위해 이 병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오로지 나으리라는 희망과 믿음뿐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을 때에 당신의 자비하신 마음으로 치유해 주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치유의 은총이 있기까지 때로는 삼십팔 년과 같은 기나긴 시련의 기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낫기를 바라는 소망보다 그 소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 요한 5,1-16
핑계 없는 무덤 없다
반영억라파엘신부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주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아담은 아내핑계를 댑니다. 또 아내는 뱀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창세3,11- 13).
하긴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요한 5,8) 하시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것을 본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들 것’을 들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만을 보았습니다. 율법에 매여서 볼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아야 할 것은 38년이나 앓다가 걸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봐야 했습니다. 고통을 거두어 주셨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습니다. 살리는 일은 이미 시작 되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걸어가는 것은 앞으로도 이러한 일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18. 골고타 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