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0일 금요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스콜라스티카 성녀는 480년 무렵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베네딕토 성인의 누이동생인 성녀는 베네딕토 성인을 따라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몬테카시노에서 수도 생활을 하였다. 베네딕토 수녀회의 첫 번째 수녀이자 원장이 된 스콜라스티카 성녀는 평생을 기도와 헌신으로 살았으며, 오늘날 베네딕토 수녀회의 주보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그러자 그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
(마르 7,31-37)

말씀의 초대
솔로몬의 신하였던 예로보암은 아히야 예언자를 길에서 만난다. 아히야는 솔로몬의 나라를 찢어 그 가운데 열 지파를 예로보암에게 주겠다고 약속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에게 “열려라!” 하셨다. 그러자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힘이 담겨 있다(복음).
오늘의 묵상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시자 사람들은 모두 놀라 감탄합니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자신의 복음서 안에서 군중이 이렇게 감탄했다는 표현을 이곳 말고는 그 어디에서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바로 이 대목이 특별한 의도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에파타!’ 하고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기적의 은혜가 바로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하고 감탄합니다. 이 감탄은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는 창세기의 구절과 그 표현 양식이 일치합니다.
많은 성서 주석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하느님의 창조를 이어받아 신약의 새로운 창조를 이루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마르코 복음사가가 바로 이 구절에서 이례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이미 창조된 이 세상을 다시 새롭고 완전하게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알고 있는 엘리사벳 자매는 청각장애인입니다. 그분의 취미는 음악 감상입니다. 놀라시겠지만 ‘음악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육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느끼고 살아갑니다. 지금도 서예를 가르치고 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열심히 하시며 말씀도 얼마나 이쁘게 잘 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는 영적인 입이 열려 있으십니다.
예수님께서 환자를 따로 데리고 나가서 손가락을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듯이 주님과 한적한 곳에서 따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말씀으로 끝날 수 있음에도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자신을 가두어 놓은 주위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손가락을 귀에 넣고 침을 발라 혀에 대는 행동으로 당신의 관심과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 하셨듯이 우리도 구체적인 행동을 통하여 이웃사랑을 드러내야겠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꼭 안아주는 포옹으로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그의 손길에 담았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물고기를 키웠습니다. 어느 날 물고기가 죽자 아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 울지 마라! 또 물고기 사 줄게.” 이것은 돈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물고기와의 이별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슬픔에 먼저 동참해야 합니다.
“물고기가 죽어 우는구나. 그래 참 안됐다. 엄마랑 함께 묻어 주자.” 이러한 말에 아이는 위로받습니다. 아픈 감정의 치유를 배우는 것이지요. 슬픔이 없으면 인간은 쉽게 교만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아픔을 같이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행동을 취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넓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에파타!’는 ‘열려라!’라는 뜻이라고 성경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말씀 한마디에 그 사람은 입이 열리고 귀가 뚫렸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놀랐던 것이지요. 그러기에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발음 그대로’ 적어 놓은 것입니다.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반영억라파엘신부
귀가 있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그는 귀머거리 입니다. 입이 있어도 하느님에 관해 말할 수 없다면 그는 벙어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의 현존을 깨닫기도 전에 먼저 나를 생각하고 찾으셨습니다. 믿고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로마10.17)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에파타!” 곧 “열려라!” 하시며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셨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귀를 열어주시고 입을 열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사회적으로는 공부도 많이 하고 지위도 있으며 세상 것에는 해박하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에는 둔한 사람들이 있다면 들을 귀가 없는 그는 귀머거리요, 입이 있어도 주님을 전하는 일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반벙어리입니다. 그들의 귀와 입을 열어주시길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침을 발라 혀에 대는 것은 비위생적이고 단전치 못한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고 늘 혼자 외롭게 지냈던 그들에게는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엄마가 자식에게 먹을 것을 꼭꼭 씹어서 주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셨다고 하였는데 하늘을 우러러 본다는 것은 곧 하느님 아버지의 능력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망하였다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물고기 2마리와 빵 5개로 5천명을 먹이시는 기적(루카9,16)을 베풀 때도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떤 처지나 환경 안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기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 성당의 수난 받으신 매괴 성모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보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이 하늘, 천상을 향해 있을 때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3,2)
성경은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을 찾으면 만나 뵐 것이다”(신명4,29)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귀를 열어 주시고 입을 열어 주시는 주님을 뵙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말씀에 열리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위로와 구원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너 한껏 네 입을 벌려 보라, 나는 곧 그 입을 채워 주리라.”(시편80,11) 사람들이 저의 변화된 삶을 보고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하고 놀라워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십니다.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지는 장면입니다.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으셨지만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의 아픔에 동참하시는 모습입니다. 못 듣는 서러움을 이해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날 때 조금만 웃어도 그 사람이 따뜻해 보입니다. 조금만 다정하게 악수해도 사람이 ‘달라’ 보입니다. 그런데 그걸 아낍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에게 ‘일부러’ 손가락을 대시는 예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만나면 서로 웃습니다. 하늘의 기운이 가득 차 있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습니다. 불만을 가진 아이들입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족과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기에 웃음을 감춥니다.
한마디 말도 정중히 하면 주변이 환해집니다. 도움 준 이에게 고맙다고 하면 서로가 행복해집니다. 자녀를 칭찬하면 그의 ‘삶’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걸 못 합니다.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 말을 아낍니다. 복음의 말 더듬는 사람과 진배없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분을 닮으려 애쓰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느 날 주님께서는 “에파타!” 하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전에 ‘듣지 못하던 것’을 듣게 해 주십니다. 자연의 소리입니다. 가족의 소리입니다. 어린이의 소리입니다. 마음을 열면 행복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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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중의 장애를 가진 이를 고쳐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시어 막힌 귀를 뚫으십니다. 그리고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신 후에 “열려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됩니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가 오시면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하고 예언하였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하여 실현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며 놀라워합니다.
지금도 세례성사에서 ‘열려라(에파타) 예식’ 때에 “주님, 귀와 입을 열어 주시어, 뽑힌 이들이 귀로 들은 신앙을 입으로 고백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이 예식은 오늘 복음 말씀에 기초를 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사람들의 막혔던 귀가 열리어 복음 말씀을 듣고, 닫혔던 입이 열리어 하느님을 찬양하게 해 주십사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먼저 잘 들어야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남과 나눌 수 있는 것은 물질뿐만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상대에게 내 마음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남의 말을 잘 들어 주는 것도 훌륭한 나눔입니다. 가끔 신자들과 면담을 하거나 고해성사를 줄 때에 조용히 듣기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저 듣고만 있었는데도 상대방은 스스로 고민을 해결하고는 좋은 이야기에 감사하다는 말을 합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고 전한 말은 복음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