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마르6,1-6)

2012. 2. 1. 오전 10:36:45

글자

2012년 2월 1일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저 사람이 어떤 지혜를 받았기에 저런 기적들을 행하는 것일까?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말씀의 초대

다윗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인구를 조사하도록 지시한다.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의 이런 행위는 주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고 만다. 다윗은 주님의 이끄심에 따라 살기보다 자신의 힘을 믿고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고향으로 가시어 회당에서 가르치신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워하면서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고정 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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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고향에 가시어 언제나처럼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이들은 주로 유다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능력과 지혜를 보여 주셨지만 그분에 대한 편견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출신 배경을 들어 예수님을 배척할 구실을 찾은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불교 선종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마조 선사입니다. 도를 터득한 그가 잠시 고향에 들른 일이 있었는데 이웃에 살던 한 노파가 보고, “나는 무슨 대단한 양반이라도 와서 이렇게 소동이 났나 했더니 바로 쓰레기 청소부 마 씨의 아들 녀석이 왔구먼!” 하더라는 것입니다. 고향의 할머니는 세월이 변하고 사람이 달라졌는데도 어린 시절의 꼬마로만 여긴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 마조는 반은 장난, 반은 감상적으로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지었답니다. 권하거니 그대여 고향엘랑 가지 마소 / 고향에선 누구도 성자일 수 없으니 / 개울가에 살던 그 할머니 / 아직도 내 옛 이름만 부르네!(『선의 황금 시대』 중에서)
익숙함은 때로는 너무 쉽게 해석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아주 익숙한 사물이나 사람의 참된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욱이 편견이나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사물의 진실을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웃과 따스한 정을 나누고, 친구와 우정을 나누며, 가난한 이들과 친교를 이루고, 외롭게 사는 이들과 대화하는 것은 우리의 평범한 하루하루 생활에서는 소중한 체험들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신앙의 눈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 바로 구원의 현실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깨어 있는 신앙인은 비록 익숙하고 작은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도 하느님의 손길, 하느님의 구원을 느끼고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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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도 무시당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언자는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남기십니다. 섭섭함이 배인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무시당했던 체험이 많습니다. 가족이 그렇게 했고, 이웃이 그렇게 했고,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별 뜻 없이 말하고 행동했지만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된 기억들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깎아내립니다. 편견을 갖고 대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평소의 습관일 뿐입니다. 좋은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습관입니다.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지 못하는 잘못된 습관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많이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기적까지도 오해할 수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허물을 지닌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적으로
허물이 있는 존재입니다. 어떤 사람 때문에 신앙생활이 실망스러워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보면서 믿음의 길을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지내면 쉽게 허물이 보입니다. 뛰어난 사람도 틈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주는 상처에 너무 예민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가족에게 상처 주며 사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봐야 합니다. 사랑하면 가끔은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고정 관념탓입니다. 그분의 소년 시절을 떠올리며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들은 이렇게 수군거립니다. 못 믿겠다는 말입니다. 기적의 소문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마법사나 점쟁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사람들의 편견을 놀라워하십니다.
누구나 과거에 매여 살면그렇게 됩니다. 지난 일을 지나간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렇게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힘든 인생을 살게 됩니다. 자신도 힘들고 남도 힘들게 하는 삶입니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기 마련입니다. 변화를 거부하면 결국은 퇴보합니다. 자연의 평범한 진리입니다.
신혼 초에는 남자가 말이 많고, 여자는 듣기만 합니다. 이삼 년이 지나면, 여자가 말이 많고, 남자는 듣는 쪽이 됩니다. 아이를 낳고 나면 가끔씩 싸우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떠드는 것이지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의 내면을 보게 됩니다.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면 진정한 사랑은 영영 싹트지 않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었더라면 주님의 기적을 만났을 것입니다. 삶의 풍요로움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행복의 주님을 그들은 놓치고 있습니다.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반영억라파엘신부

예수님께서는 악마와 병마에게 종살이는 하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심으로써 정신적 , 육체적 죽음에서 구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당신의 고향 나자렛에서는 무시를 당하셨습니다. 고향사람들은 자신들과 같은 신분의 예수님이 자신들보다 월등한 능력과 지혜를 지니게 된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편견과 시기질투심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듯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나자렛이 아닌 다른 지역 출신으로서 훌륭한 가문과 번듯한 학벌을 갖추고 등장하셨다면 그렇게 반응했을까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법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마르6,2) 하고 말하였습니다.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물론 주님의 능력은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나왔습니다.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지혜도 역시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하느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또 실천해야 합니다. 지혜의 근원은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집회서 1장 1절 이하를 보면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다.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계명이다…주님의 사랑은 영광스러운 지혜이며 그분께서는 당신을 보여주실 이들에게 지혜를 나누어 주시어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다.” 고 적혀 있습니다. 분명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지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를 구별하는 사리 판단력입니다. 또한 지혜란 인생의 올바른 방향 감각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올바른 방향을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제시하십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또 생활화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균형과 조화를 통해 삶이 풍요로워 집니다. 사실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서 배움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놀라운 지혜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균형과 조화가 깨지면 소리가 나게 마련입니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경제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자연과 인간의 조화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균형과 조화는 올바른 사리판단력과 방향감각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정성어린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내 생각의 틀을 넘어서 열린 마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아는 사람을 유식한 사람, 지식인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학문이나 지성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며 슬기롭게 사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지식인은 넘쳐 나고 지혜로운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하느님의 지혜를 담은 사람들에 의해서 계획되고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하였을 때 서슴없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지도자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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