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2012.1.9*(마르1,7-11)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듯

2012. 1. 6. 오전 7:52:30

글자

주님 공현전 금요일 2012. 1. 6


(마르1,7-11)
그때에 요한은 7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9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1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듯

반영억라파엘신부 
 
가정 방문을 하면 신발을 바로 놓아주고 먼지도 털어주고 가끔은 구두약도 발라 윤을 내주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면 미쳐 단정하게 하지 못한 미안함도 있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예수님 당시 풍습은 주인이 외출을 하였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종이 신발 끈을 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뒤에 오실 주님을 선포하며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다(마르1,7)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요한은 자기 자신은 감히 예수님 앞에서 종 노릇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품위가 높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한다. 는 겸손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은 한창 인기가 좋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그 인기를 누릴만한데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오실 주님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큰 겸손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나를 추켜세우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입니다. 그러나 그 바보의 몫, 겸손이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덕목입니다. 겸손으로 세례자 요한의 뒤에 오신 주님께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는데 그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어서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1,11). 하늘이 갈라졌다는 것은 하느님과 인간의 장벽이 무너졌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세상이 인간의 세상에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이사63,19)입니다.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에게 내려왔다는 것도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의 활동이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 예수님을 택하셨습니다.

가끔 신자들이 나는 추기경님께 세례를 받았네, 어떤 주교님께 세례를 받았네 하면서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누구한테 세례를 받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오는 은총은 베푸는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내려오는 것은 하늘에서 하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 물론 세례를 주신 분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은총을 얻게 되었으니 그분이 영적 은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따라서 고마운 만큼 자녀다운 삶을 사는 것에 마음을 더 두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무리에 섞여서 마치 당신자신도 죄를 고백하여야 할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마치 불속에 있는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듯이,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의 처지가 되어서 오신 것입니다. 무능력한 분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할 능력을 가지고 죄인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어둠 속을 비추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진흙으로 빚어 만든 인간의 코에 입김을 불어넣어 숨을 쉬게 하신 생명의 영으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겸손의 옷을 입고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성 예로니모의 말씀을 기억해 봅니다. “겸손의 그림자를 가진 사람은 많지만 그 덕을 가진 사람은 적습니다.”(성 예로니모) 사랑합니다. 




                        
일 년 중에 가장 춥다는 소한입니다. 지금 저는 작은 시골 본당에서 8년째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꽃을 통해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고자 해마다 국화를 키워 가을이면 국화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지금은 널리 알려져 가을 축제 때에는 이 지역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국화를 구경하러 저희 성당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올 가을에 피어날 국화들이 온실 하우스에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국화가 얼어 죽지 않도록 온실에 연탄을 때서 보온을 합니다. 추울 때는 행여 국화가 얼어 죽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소중하게 돌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요한 23세 교황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닫힌 교회의 창문을 활짝 열고 신선한 공기가 교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숨통을 트여 놓으신 분입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박물관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삶이 충만하고 꽃이 만발한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물러나 세상을 초탈해서 사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고 광야로 나갔다가 다시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내내 주변의 많은 사람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는 큰 희망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뿐 아니라 교회의 꽃밭을 가꾸는 일꾼들입니다.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교회의 꽃밭을 가꾸어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모여 올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주님 세례 축일 2012.1.9
 (마르1,7-11)


 우리의 모범으로

반영억라파엘신부 
세례를 받으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세례성사의 효과에서 가장 먼저 얘기하는 것이 ‘모든 죄를 용서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 없으신 분이 세례를 받으신다는 것이 말이 안되고 더군다나 죄인들인 군중 틈에 끼여서 아주 평범하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죄인도 아니시면서 죄인들 속에서 세례를 받으셨을까? 예수님은 분명히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세례를 받으신 것은 바로 우리를 위해서 입니다. 주님은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고 그래서 세상 안에 직접 들어오신 것입니다. 마치 불 속에 있는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불 속에 뛰어들어야 하듯이 말입니다.

일찍이 세례자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창세기의 말씀을 기억함으로써 이해를 도울 수 있겠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2,7) 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숨을 불어 넣을 그릇을 만드는 일은 요한이 하고 그 그릇을 채우는 일은 하느님께서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신다는 의미는 하느님의 생명을 준다는 뜻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역할은 하느님의 생명을 받기 위해 그릇을 준비하는 일인데 그것은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리는 회개요,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바탕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세례를 주신 분을 기억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교리를 가르쳐 주신 분들, 신부님, 수녀님, 대부, 대모를 기억합니다. 다들 고맙고 소중한 분들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으니 감사해야 마땅합니다. 그들은 나의 영적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 세례를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은총은 분명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사방팔방에서 모여들어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특별하지 않게 겸손한 모습으로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1,10-11) 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들, 딸이 되었다는 것을 상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 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티토3,5-7) 하고 말합니다. 생명의 숨을 넣어주신 주님의 세례를 기억하고 우리의 세례를 새롭게 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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