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증언의 삶(요한 5,33-36)

2011. 12. 16. 오전 9:36:46

글자
대림3주간 금요일 (요한 5,33-36)



 참된 증언의 삶


“길을 찾아 헤매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길을 물었습니다.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길이 어딜 가다니요? 길은 여기 있고 당신이 어디론가 가고 있지 않소?’”우리가 가야할 길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하느님나라에로 가야 합니다. 하늘은 우리가 온 곳이요, 가야할 곳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알면서도 다른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요한5,3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에 관하여 증언하신다”(요한8,1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증언에 의해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하시는 일과 하느님에 의해서 증명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먼 이들을 보게 하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걷게 하며, 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귀먹은 이들을 듣게 하며, 죽은 이들을 되살리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게 하였습니다(루카7,22).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9,35).하시며 아버지께서 그를 증언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주님께 증언 받아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도 행동이 뒤따를 때 입으로 하는 말은 효과가 있으며, 누구에게나 벅찬 감동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에페5,15.20). 또한 “모든 더러움과 그 넘치는 악을 다 벗어 버리고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야고1,21). 그리고 마침내 여러분의 빛나는 삶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사람들이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십시오(마태5,16).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듯이 우리도 주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나서야 하겠습니다.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야고2,26)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삶을 통해 주님을 증거 하는 기쁨이 충만하시기 빕니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10,20)
사랑합니다.


 

 

 


 대림 3 주간 금요일

이사야 56,1-3.6-8             요한 5,33-36

2011. 12. 16. 등촌3.

주제 : 올바른 삶의 자세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 질문을 듣는 사람들의 대답은 아주 다양할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삶을 그 안에 담아야 하겠지요? 내 삶을 그 안에 담지 않고서는 그 어떤 대답에도 힘은 들어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힘을 내가 하는 대답에 어떻게 담을 것이냐 하는 것이 아주 신비한 문제로 남게 될 것입니다. 실천을 전제로 하는 대답이어야 힘이 있는 법입니다.

같으면서도 아주 비슷한 질문을 신앙인의 삶에 대해서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일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바른 대답을 한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신앙에서 하는 대답에 사람의 생각이나 경험만 담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에서 하는 대답이 세상에서 하는 대답과 차이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사람의 뜻만 담으면 충분하다고 여기겠지만, 신앙인의 대답에는 사람의 뜻이나 행동만 담는다면 그 대답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사회를 향해서 드러내는 사회교리의 근거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대답을 하고, 올바른 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세례자요한을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이 빛을 따라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적어도 앞으로 나아가다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빛은 정말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내가 넘어지지 말라고, 나를 비추는 빛을 내가 어디에서 발견할 것이냐 하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그러하겠지만, 그 진리는 변함이 없을 일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산다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구원을 얻기에 합당한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이사야예언자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는 일은 첫 번째 역할로 제시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이 공정과 정의를 달리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올바른 길에 대해서 거듭 심사숙고해야 할 일입니다.

 

내가 내 인생을 포기하면, 하느님도 나에게 당신의 구원을 베풀어주실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하는 차이가 아니라,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힘도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역사(役事)도 인간의 협조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알려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능하다면 좀 더 잘 준비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주시려고 하는 축복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올바른 삶의 자세는 멀리 있을 수도 있고, 아주 가까이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가 달라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함께 청할 시간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