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일< 마태오복음 25,1-13>

2011. 11. 6. 오전 7:26:39

글자

2011년 11월 6일 일요일 (녹) 연중 제32주일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열 처녀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어리석은 처녀는 과거에 매여 있고 미래에 대하여 걱정만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는 현재에 충실합니다. 슬기로운 처녀만이 하늘 나라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순간순간이 주님께서 오시는 시간이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충만한 날입니다. 우리 삶에서 다가오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만날 수 있는 지혜를 청합시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정교회 신학자 에프도키모프는 그의 책 『영적 삶의 나이』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현대인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미래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인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멀리 달아나려고 합니다. 그의 정신은 시간을 죽이는 법을 개발하는 데 활용됩니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고 전혀 알지 못하는 공상의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추상적으로 환치된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성으로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영원성은 오로지 현재에 맞닿아 있고 온전히 지금 이 순간 현존하는 사람에게 그 영원성을 줍니다. 영원성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과 영원한 현재의 이미지 가운데 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구엔 반 투안,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에서 재인용).
깨어 있음은 막연하게 미래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매달리는 것도 아닙니다. 일상의 순간순간을 봉헌하는 것을 말합니다. 현대 신학자 칼 라너는 우리의 일상 안에 하느님의 ‘무언의 신비’가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일도 참으로 인간다운 삶의 본질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고, 영원한 ‘하느님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을 하는 순간도, 가정에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순간도 하느님의 숨은 은총이 드러나고 우리 삶의 본질을 구현하는 시간입니다. 일상에서 싫지만 해야 하고, 피하고 싶지만 겪어야 하는 일들이 사실은 소중한 봉헌 행위이며 하느님의 현존과 마주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는 주어진 현재를 하느님의 시간으로 여기며,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사는 사람이지만, 미련한 처녀는 자신의 과거나 미래에만 매달려서 현재를 소모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로지 현재만이 하느님의 영원성에 가 닿아 있습니다.

 

(마태25,1-13; 지혜6,12 ;1테살4,13-18)
 
  
 
  항상 깨어있어라
 
 반영억라파엘신부
 
 사랑합니다. 사랑의 하느님은 사랑함으로써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삶이 끝날 때 우리는 사랑으로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세상의 종말에 있을 심판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유비무환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리 준비하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종말에 심판이 올 것이지만 준비하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심판 날에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저 마다 한 일도 명백해질 것”(1고린 3,13)이기 때문에 준비한 사람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주님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1고린4,5).
 
 
오늘 복음을 보면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가 명백하게 구분되는 순간은 한밤중에 신랑이 도착하고 나서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정말로 선한 사람이 누구인지 악한 사람이 누구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고 했듯이 착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속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어리석어도 속이 꽉 찬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코헬12,14).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실 것입니다”(마태3,12). 따라서 우리는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는 날 잡아서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안에서 매 순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연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슬기로운 여인들은 기름을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여인들은 기름이 모자랐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름은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복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름이 모자랐다는 것은 주님, 주님하고 입술로는 고백하면서도 고백에 따라 생활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되고 맙니다. 다시 말하면 행동으로 나타나는 신앙생활만이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마음에 든다는 것입니다.
 
 
하필이면 깜박 잠이든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예기치 않은 시간에 갑자기 왔습니다. 잘 준비하고 있다가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오고 말았습니다.
‘하필이면 그때 올게 뭐람!’ 주님께서는 오늘도 방심하는 순간에 오십니다.
 
 
김유신 장군은 말 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생집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있어야(마태25,13)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8절-9절에서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준비하는 것입니다. 준비한다는 것, 또한 깨어있음을 말해줍니다. 가장은 가장으로서, 엄마는 엄마로서의 역할이 있고 자녀는 자녀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역할에 충실 한다면 그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제 아내가 신부님께 하는 것에 반만 저에게 해도 행복이 넘칠 것입니다.’하셨습니다. 신부에게는 예의를 갖추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아내에게, 남편에게, 어른께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공로가 되지 않습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녀에게 부모님께 해야 할 바를 먼저 하십시오.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십시오. 사랑의 실천 없는 신앙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1요한4,16-17). 그리고 “삶이 끝날 때 우리는 사랑으로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십자가의 성 요한).
 
 
많은 사람들이 남의 속을 알려고 애를 씁니다. 저 사람의 성격은 어떨까?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저 사람의 가슴 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그는 무엇을 위해서 살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음에도 남의 속을 알고 싶어 하고 궁금해 합니다. 정작 알아야 할 내 속은 알려 하지 않고 남의 속만 궁금해 합니다. 내 마음이 하느님 앞에 떳떳하고 당당한지, 그분 마음에 드는지를 먼저 알아야 처신을 바로 하지 않겠습니까? 깨어 있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고 있는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역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속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말고 먼저 하느님 앞에 선 자신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천국에 가면 놀랄 3가지
1. 와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오지 않았다.
2. 못 올 것 같은 사람이 거기 와 있다.
3. 내가 거기 와 있다.
 
 
  

 

 

 

 

 
알림마당
 
    창5동성당 1일 대피정 (church.catholic.or.kr/chang5 )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시편34:9)
 
 
․ 때, 곳 : 11월 7일(월) 오전 10시-오후 5시, 대성당
 
․ 주제 : 사랑의 하느님
 
․ 강사 : 반영억 라파엘신부님(청주교구 감곡매괴성모성당)
 
․ 회비 : 3,000원(점심 김밥 제공)
 
 ※ 누구든지 참석하셔서 강의, 미사와 안수로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준비하는 사람 - 고준석 토마스아퀴나스 신부님
 
 세계적인 명지휘자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1867~1957)가 걸은 지휘자의 길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토스카니니는 원래 첼로 연주자였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아주 심한 근시여서 앞에 놓인 악보조차 잘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현악단에서 첼로 연주를 할때마다 토스카니니는 항상 악보를 미리 다 외워서 연주회에 나가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은 연주회 직전에 갑자기 지휘자가 공석이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악단에서는 지휘자를 대신할 사람을 바쁘게 찾았습니다. 악단을 지휘하기 위해선 연주할 곡을 전부 악보 없이 외우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오케스트라의 단원 중에 곡을 전부 암기하여 외우고 있던 사람은 오직 토스카니니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임시 지휘자로 발탁되어 지휘봉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19세, 바로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준비된 사람에게 늘 새로운 기회가 찾아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항상 깨어 주님의 날, 주님의 시간을 잘 준비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우리 신앙인의 준비 자세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비유에서는 열 처녀 중에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을 맞을 준비로써 등잔뿐만 아니라 기름까지 준비했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위해 충분한 기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충분한 기름으로써 등불을 밝히며 밤늦게 찾아온 신랑을 마중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잔만 준비했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준비와 실천에 따라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철저한 준비와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정직과 성실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그리스도인이라는 등잔이 있습니다. 하지만 등잔만 가지고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등잔에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진정한 신앙생활의 기름이 필요합니다. 착한 행실과 열심히한 기도생활, 그리고 이웃을 위한 희생과 봉사가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기름이라고 하겠습니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름을 충분히 준비했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우리도 항상 준비하는 생활로 우리의 기름을 채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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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기쁨, 내적 투쟁과 마음의 평화를 온 삶으로 경험하면서 맑아진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 로제 수사 -
 
 
열처녀의 비유(마태복음 25:1~14)  

  오늘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의 말씀은 열처녀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3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이미 살펴본 달란트비유와 오늘 살필 열처녀 비유 그리고 다음에 살필 양과 염소의 비유가 그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우리가 나누면서 은혜받아야 할 이 열처녀의 비유는 유대인들의 결혼 풍속이 그대로 배여 있는 비유입니다. 유대인의 결혼은 주로 밤에 이루어지는데 신랑을 맞는 들러리들이 대개 "열 처녀"였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최소한 열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회합을 모이거나 할례를 행하거나 유월절을 지키거나 결혼식을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롯과 결혼할 때 "열 사람의 증인"(룻 4:2)을 거느렸습니다. 

  이와 같은 풍습을 잘 알고 있는 주님은 오늘 본문의 혼인잔치에도 열처녀를 신랑을 맞기 위한 사람들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열 처녀 가운데 다섯은 슬기로운 처녀로 그리고 다른 다섯처녀는 미련스러운처녀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왜 그렇게 구분하셨을까요?

  슬기로운 다섯처녀와 미련스러운 다섯처녀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두 집단, 두 종류의 처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

1.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다렸다는 사실입니다.   두 종류의 처녀 모두 신랑을 맞는 일이 사명이었고 그리고 신랑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가서 신랑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 들은 신랑을 맞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격자들이었습니다. 선별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교인으로 따진다면 두 집단 모두 교인입니다. 믿음으로 따진다면 두 집단 모두 믿는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음으로 생각한다면 역시 다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은혜로 따진다면 이 집단 모두 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 신랑이 더디옴으로 인해서 졸다가 잠들었습니다.   신랑은 오리라 기대했던 시간보다 늦어졌습니다. 아무리 신랑도 좋고 사명도 좋지만 졸리는 것을 이길 장사가 그리 않지 않습니다. "아무리 천하장사도 졸리는 눈꺼풀은 들어올릴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도 미련스러운 처녀도 다 졸며 잤습니다. 낮에 일하고 밤에 이런 행사에 참여 하여서 가다린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슬기로운 처녀나 미련스러운 처녀 다 졸았고 그리고 결국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더디온 신랑이 도착하여 "신랑이 왔다"고 했을 때 일어난 것도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함께 자고 함께 벌떡 일어났습니다.

 

3. 이들 모두 등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혼식이 저녁에 열렸기 때문에 그리고 그 시대의 문명이라는 것이 등불문명이었기 때문에 등불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별로 차이점이 없습니다. 외형적으로 보기에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차이점 :1.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등불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준비하였습니다.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당장 필요한 등불만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외형적인 등불만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예비된 기름그릇을 준비하고 그 그릇에 기름을 채워서 가지고 갔던 것입니다. 그것은 정확한 시간에 신랑이 도착하면 좋겠지만 옛날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까지 준비해서 신랑을 맞으려 간 것입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꼭 하라고 명하는 것도 안한 사람과 꼭 하라는 것만 하는 사람은 똑 같이 쓸모없는 존재다"라고 정의했습니다. 

 2. 미련스러운 다섯처녀는 기름준비는 하지 않고 등불만 가지고 갔더라는 것입니다.   미련스러운 다섯처녀는 당장 켤 등불은 가지고 갔지만 불의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름기릇에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3. 여기서 두 집단의 처녀들은 자격도 같았고, 실수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조건도 같았습니다. 문제는 미련스러운 다섯처녀는 기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위험에 대처할 준비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빌리면 되지, 그때가서 대처하면 되지, 사면 되지, 극단적으로는 빼앗으면 되지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슬기로운 처녀들은 실수 하고도 신랑을 맞이하고 미련스러운 다섯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문 밖에서 울 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는 깨어 있는 것이 주요문제거리가 아닙니다. 주님도 깨어 있는다는 것은 한계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깨어 있지 못했다는 것이 슬기롭거나 미련스럽거나를 판단하는 판단의 근거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만 따지면 사실 늦게 온 신랑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제는 그런 것을 다루고자 함이 아닌 것입니다.

   기름을 준비했느냐 하지 아니했느냐 입니다. 신랑이 더디올 수도 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느냐 없었느냐하는 것입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등불이라는 외형만 갖추는 것으로는 결정적인 찬스에서 밀리게 되고, 버림을 받게 됩니다.   기름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미리 미리 준비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닥쳐서 하려다가 기회를 놓친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21세기에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합니다. 지금 사는 게 재미있는 사람이 나중에도 재미있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재진행형''이 중요합니다. 지금 재미없는 사람이 나중에 재미있기 힘들고, 오늘 창의성이 없으면서 내일의 창의성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 고통의 길을 갈 수 있지만 그 고통의 길에서조차 재미와 창의성을 찾아내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 진짜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내 과거를 보려면 지금 자신을 보면 됩니다. 그리고 내 미래를 보려면 지금의 자신을 보면 됩니다.   나중에 준비하리라 하지말고 지금 준비해야 합니다.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지금 예비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일 슬기로운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슬기로운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삶을 종말론적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비유의 말씀은 그런 진리를 잘 말해주고 있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때가서 준비하리라 하면 늦는 것입니다.

 

연중 21주간 금요일 - 여분의 기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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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세달 동안 한국에 들어가 휴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워낙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했기 때문에 매일 규칙적으로 하던 기도시간도 채우지 못 할 때가 많았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기도를 많이 하지 못했는데도 기도 열심히 하며 살 때와 커다란 차이를 느끼지 못하며 살았던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것을 말했더니, 한 수녀님께서, “그건 평소에 많은 기도를 해 놓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거예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맞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 잘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밤새 기도하시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기도할 시간이 부족한데도 큰 어려움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면 그건 내 마음 안에 있는 여분의 기름통에 채워져 있는 기름이 있었기에 그것이 소비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현명한 처녀들과 미련한 처녀들이 등장합니다. 현명한 처녀들은 신랑을 기다리기 위해 등잔을 준비하고 기름도 예비로 따로 준비해 둡니다. 기다림에 지쳐 졸다가 신랑이 온다는 말에 깨어났을 때 열 처녀의 등잔은 모두 기름이 없어 꺼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을 준비해두었던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것으로 보충하여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나머지 다섯 처녀는 결국 허둥대다가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신랑이신 당신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항상 깨어있으라고 당부하십니다. 항상 깨어있으라는 의미는 매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죽음을 준비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한 시간 뒤에 죽는다고 했을 때 서두르지 않고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항상 깨어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살다보면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죽음이 목전에 와 있는 줄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기름만 미리 예비로 준비해 두었다면 하늘나라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기름은 누구에게 빌릴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기름은 등불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 기름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기름은 기도로 채워지고 살아가면서 저절로 줄어듭니다. 성령님이 줄어들면 그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등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미워지고, 용서가 안 되고, 우울해지고, 걱정이 많아지며 절제가 되지 않게 됩니다.

만약 이렇게 성령님이 다 빠져나갔을 때가 나의 마지막 때가 된다면 되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항상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이 충만한 상태에서 또 기름을 채워봐야 특별한 마음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기름이 더 많이 보충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현명한 처녀들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알아야합니다.

첫 째는 내 안에 예비 기름통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아무리 많이 해도 항상 부족한 것입니다. 많이 하면 할수록 남는 에너지는 예비 기름통에 채워져 유사시에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살아가다보면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없게 될 때가 반드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겸손입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태어나 군대 가기 전까지 살던 집은 평택군의 한 시골이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수원으로 다녔는데 자전거를 타고 송탄시까지 나와서 봉고차를 타고 수원으로 통학하였습니다.

토요일 오후는 봉고차가 우리를 태우러 오지 않기 때문에 그 때는 수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다 그렇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버스를 타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한 번은 눈을 떠보니 버스가 송탄을 지나고 평택시를 막 떠나는 중이었습니다. 더 큰 일은 돌아올 차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염치불구하고 옆에 앉은 학생에게 사정이야기를 하고 올라올 차비를 빌려줄 수 없느냐고 사정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은 돈을 주면서 갚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 날은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다음번에는 절대 버스에서 자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고 내려오는 눈꺼풀을 손으로 밀어 올리며 참고 있었습니다. 오산을 지나서 다음 정거장이 송탄이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잠에 떨어져 이번에는 마지막 종착지인 천안 버스 정류장에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날도 올라올 차비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내릴 때라 누구에게 사정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한 골목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한 학생이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학생을 불러 세우고 또 사정 이야기를 한 다음에 돈을 좀 꾸어달라고 했습니다. 그 학생은 겁을 집어먹었는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주었고, 갚을 테니 주소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저를 뒤로하고 괜찮다고 하며 빠른 걸음으로 가버렸습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올라오면서 깨달은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제가 사람도 안 다니는 골목길에서 그 학생의 돈을 빼앗은 것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 학생은 저를 불량학생으로 알고 돈을 털어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번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다음번에는 예비로 올라올 차비를 지니고 탔어야 했는데 그런 실수는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생의 돈을 빼앗는 일까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인생은 내 예상대로만 되어가지는 않습니다. 내 예상에서 벗어나더라도 당황하지 않도록 예비를 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기도는 아무리 하더라도 충분하지 않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기도할 수 없을 상황이 올 때를 대비해서 시간이 나는 대로 성령님을 더 충만하게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여분의 기롬통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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