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4주간 토요일 (루가8,4-15)

2011. 9. 17. 오전 6:49:11

글자

2011년 9월 17일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서

발에 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가 쪼아 먹기도 하였다.

(루가 8,4-15)

 

“A sower went out to sow his seed.
And as he sowed,
some seed fell on the path and was trampled,
and the birds of the sky ate it up.

 

 

 

말씀의 초대

 지상에 살면서 빛의 자녀로 사는 것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삶을 사는 빛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빛을 향하여 나아간다(제1독서). 말씀의 씨앗을 받아들이고 움틔우려면 좋은 땅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 바칠 소출을 내는 주님의 땅이다. 좋은 땅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말씀에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창세기는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어 만드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 곧 히브리 말로 ‘아담’은 ‘땅’(흙)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사람은 하나의 땅일 따름이지만, 하느님의 숨결이 닿아서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땅입니다. 세상의 땅에는 우리 인간이 씨를 뿌리고 거기서 곡식을 추수하지만, 하느님께서 인간을 빚어 만드신 ‘아담’ 곧 사람이 된 ‘땅’은 하느님께서 일구어 씨앗을 뿌리시고 추수하시는 하느님의 밭과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통해 주님께 드릴 땅의 소출을 생산합니다. 형체를 가진 몸은 마음을 담아내고 형체가 없는 마음은 몸으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형체가 없는 주님 말씀은 마음을 통해 우리 몸에 스며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몸을 통해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 등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갈라 5,22 참조). 이것이 주님께서 당신의 땅을 통해 추수하시는 곡식입니다.
‘몸속에 마음이 있고 마음속에 몸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몸 또한 건강을 잃기 쉽고, 몸을 올바르게 관리하지 못하면 마음마저도 병이 들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좋은 땅을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라고 하셨지요. 말씀을 간직하고 그 말씀이 우리 삶으로 열매 맺으려면 우리 몸과 마음을 소중히 보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주님께서 창조하실 때 “보시니 참 좋았다.”는 본래의 좋은 땅이 되어야 합니다.

☆☆☆

 

사는 것이 편안해지면 기도 생활이 덤덤해집니다. 삶의 아쉬움이 줄어들면 성당 가는 것도 귀찮아지기 시작합니다. 신앙의 자세가 나태해지는 것이지요. 사실은 그러한 때 감사의 신앙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한 탓입니다.
물살이 빠른 강을 건널 때는 나룻배에 짐을 많이 싣습니다. 때로는 큰 돌을 싣기도 합니다. 물결에 휩쓸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인생의 강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삶의 짐을 무겁게 하거나, ‘시련의 바위를 싣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통이 있는 것이지요. 불평 없이 받아들일 때, 말씀은 뿌리를 내립니다.
사람들은 삶의 짐을 가볍게 하려고 재미 있는 것만 찾습니다. ‘득 되는 것만 손대려 합니다. 모르는 새 겉모습만 좇고 있는 것이지요. 길가에 떨어지고 바위에 떨어진 씨앗과 진배없습니다. 알찬 열매는 뿌리가 튼튼해야 열립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열매를 결정짓습니다. 자연의 법칙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공통 요소가 있습니다. 인내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고통을 그들은 참아 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시련을 그들은 극복해 냈습니다. 말씀이 뿌리내리도록 좋은 땅을 만든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은 여건이 형성되면 언제든 피어납니다. 노력 없는 곳에는 은총도 없는 법입니다.
 

☆☆☆ 

 오늘 복음에서 들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결론은 좋은 땅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좋은 땅이겠습니까? 유혹이 없고 삭막함이 없고 가시덤불이 없는 땅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도들도 유혹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하였습니다. 성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의 어려움에서 완전히 해방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러한 장애를 만났기에 더욱 기도하면서 하느님께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좋은 땅은 만들어진 땅입니다. 처음부터 좋은 땅에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똑같은 땅과 씨앗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며 사는지가 중요합니다. 자연의 땅도 가꾸지 않으면 버려진 땅이 됩니다. 정성과 애정을 기울여야 좋은 땅이 될 수 있습니다. 평범하게 보이는 이 사실이 좋은 땅의 비결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흐르는 물과도 같습니다. 뛰어넘고 도약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지나간 것에 얽매여서도 안 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일 뿐, 어떤 형태로든 다시 시작해야 새 땅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좋은 땅으로 가는 삶입니다. 

 

 

 

땅을 갈아엎어라

  -반영억신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땅은 다 좋은 땅입니다. 모래땅에서는 땅콩이 잘 자라고 진흙땅에선 미나리가 자라고 습한 땅에서는 버섯이 잘 자랍니다. 기름진 땅에는 콩이나 고추가 잘 자랍니다. 각기 주어진 땅에서 알맞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땅을 관리하지 않을 때 못 쓰는 땅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밭을 갈아엎고 거름을 주는 수고와 땀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주신 내 마음의 밭이 길바닥인지, 바위위인지, 가시덤불인지, 좋은 땅인지 살피는 것도 중요하고 그 땅을 코 못쓸 땅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주신 땅은 다 좋은 땅입니다. 관리를 하지 못해 폐허가 될 뿐입니다. 씨의 운명은 그 씨가 떨어진 땅에 의해 좌우됩니다. 혹시라도 씨앗이 싹트지 못하고, 자라지 못할 땅이라면 지금 갈아엎으십시오. 

하느님께서 아무리 큰 은총을 주더라도 받는 사람이 잘 관리하지 않으면 곧 잃어버리게 됩니다. 많은 경우 자기가 잃어버리고는 하느님께서 은총을 거두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은총을 은총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진주가 주어져도 소용이 없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루가8,15)을 두고 하는 말이니 만큼 우리 마음의 밭을 잘 가꾸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길바닥이라는, 바위라는 가시덤불이라는 장애물들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 하느님의 숨을 받은 우리는 모두가 좋은 밭입니다. 어찌 좋은 밭을 묵혀 두려하십니까? 사랑합니다.

쇠귀에 경 읽기

-변진흥-

 

 우리 속담에 ‘쇠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지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처럼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은 오히려 예수께서 일부러 이런 혼란을 조장하시는 듯한 상황이어서 알아듣기 힘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다시 곱씹어 보면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려주시지만 그분의 선택과 은총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일러주어도 ‘쇠귀에 경 읽기’일 수밖에 없으니 그저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들어라 하는 식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기는 힘듭니다. 마치 햇빛이 사물을 구분하게 하듯이 그분 은총의 빛이 아니면 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그 은총의 빛으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수월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성경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말해 주어도 ‘쇠귀에 경 읽기’이기 십상이라는 것인데, 주님께서는 이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알아서 하라.’는 식의 비유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우리로 치면 자기 자식 챙기는 모습처럼 그분만의 독특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내가 많은 열매를 맺는 영혼이 될 수 있을까?

-강성덕 목사 -


작년에 봉사하던 공동체에서 여러 가지 작물을 심었다. 필요한 먹을거리의 상당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검은콩과 메주콩이다. 처음 밭에 심었을 때는 새들이 와서 모두 먹어치웠다. 결국 몇 곱의 노동량을 투입하여 모종을 해 옮겨 심었다. 자라는 콩에 흙을 북돋워주고, 웃자란 콩은 잘라주었다. 가을 추수 때 과연 얼마나 달렸는지 궁금해서 한 포기를 잡고 열매를 헤아려 보았다. 무려 430개나 달린 것도 있었다. 물론 가장 무성하게 달린 것은 메주콩이었다. 반면 검은콩은 잎은 무성하고 키도 컸지만 열매가 없는 것이 많았다.

올해도 스무 가지가 넘는 작물을 심었다. 무농약·무비료를 고집하고 있다. 이미 많이 거두어 먹고 남는 것은 나누어주고 있다. 그렇지만 다 잘된 것만은 아니다. 토마토는 병이 들어 실패하였고, 옥수수는 큰 수확을 거두지 못할 것 같다. 고구마는 반 이상이 말랐다. 하지만 20포기 안팎으로 심었던 오이와 애호박은 매일 수확하는 기쁨이 넘친다. 씨를 뿌려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은 생명의 신비를 보는 것 같다.

예수님의 비유는 늘 현장감이 있어 좋다. 예수님도 농사일을 잘하시지 않았을까? 하지만 말씀을 읽으며 부담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다. 과연 내가 많은 열매, 백배의 열매를 맺는 영혼이 될 수 있을까? 만일 맺지 못한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분명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맺는다면 그것은 부지런한 농부이신 하느님과 자신을 온전히 그분께 의지한 우리가 하나 될 때일 것이다.


한 분 하느님 앞에 서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는 신앙인

-경규봉 신부-

사도 바울로는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디모테오에게 명령한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므로 그때까지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라고 명령한다.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시고, 복되신 주권자이시며 왕 중의 왕으로서 불멸하신 분이시라고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린다.

초대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이설(異說)과 거짓된 가르침을 퍼뜨리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도들이 애써 이룩한 교회 공동체를 어지럽히며 분열시켰다. 사도들이 이민족들 속에서 살아가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러한 거짓 교사들로부터 교회를 지켜내고 하느님의 진리를 수호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었다.

때로는 여러 가지 모함과 비방에 시달리고, 그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많은 박해와 고통 속에서 사도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과 충동에 시달려야만 했다. 사도 바울로 자신도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았으며 죽을 위험에 처했었기 때문에 디모테오에게 격려를 넘어서서 명령함으로써 그의 믿음과 심지를 굳건하게 해주는 것이다.

바울로는 먼저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 앞에 서라고 명령한다. 오직 유일하신 하느님만이 불멸하시며 우주와 세상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통치자이시다. 하느님만이 만복의 근원이시며 빛 가운데 계신다.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 서야 한다. 하느님 앞에서 다른 모든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제 아무리 빛을 발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빛이 아니며 태양 앞의 촛불과 같다.

제 아무리 크고 강한 힘을 가졌다 할지라도 힘이 아니며, ‘새 발의 피’(鳥足之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 서있는 사람은 세상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유혹과 협박도 물리칠 수 있으며, 갖은 박해와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 하느님께서 그의 힘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 서서 살아가도록 바울로는 권고를 넘어서서 명령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반대하고 박해하는 자들 앞에서 언제나 당당하셨던 것처럼,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증언하시며 진리를 선포하셨다(요한 18,36-37). 이처럼 당당하신 그리스도 앞에 서서, 그리스도처럼 대담하게 복음과 진리를 선포하도록 명령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재림하실 것이며,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이므로, 박해와 역경을 이겨내며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도록 명령한다.

바울로 사도가 명한 이 명령은 곧 우리에게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하느님 앞에 서도록 명령하신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명령하신다. 수난과 죽음을 당하시면서까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시고 복음과 진리를 선포하신 그리스도처럼 반대와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명령하신다.

오직 하느님만이 한 분 주권자이시며 왕 중의 왕이시므로 하느님 앞에 서서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충실히 걷도록 명령하신다. 오직 하느님께 영예와 권세와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 앞에 서서 하느님께서 주신 삶을 살아가도록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느님 앞에 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신앙인,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꿋꿋이 걸으며, 고난과 역경을 통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신앙인,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신앙인이 되자..........◆

 

 기름진 마음의 밭을 가꾸자.

-최현욱 신부-

어떤 유명한 성자(현자)에게 가르침을 받던 제자가 하루는 스승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삶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스승이 대답했습니다...“삶은 진리를 깨달아 가는 것이다.”
“그러면 진리란 무엇입니까?”
“진리란 깨달은 사람이 말하는 것은 다 진리이다. 진리란 눈 뜬 사람이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깨달은 사람이고, 눈 뜬 사람입니까?”
“깨닫고 눈 뜬 사람이란 자신의 삶의 중요성을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에 두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 에 두는 사람이다.”

그러자 제자가 또 다시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인가?’ 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인가?’ 라는 것은 자신의 가슴속에 무엇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인가? 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자신의 가슴속에 악을 품고 있으면 악이 나오고, 슬픔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슬픈 얼굴이 나오고, 기쁨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기쁜 삶의 모습이 나온다.”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가슴속에 무엇을 품고 살아야 합니까?”
그러자 스승이 이제는 아주 근엄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대 가슴속이 하나의 토양이 되게 하라. 그대 가슴속에 담긴 것이 밖으로 싹트게 된다. 그대 가슴속에 담긴 진리가 드러나서 그대의 삶을 결정하게 된다. 만일 그대의 마음속이 좋은 토양이라면 그대로부터 싹터 나오는 모든 것들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속이 나쁜 토양이라면 결코 좋은 것들이 싹터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이고, 우리의 마음은 그 씨가 뿌려지는 밭, 토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토양은 씨앗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네 부류의 사람으로 나뉘어 진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는 길바닥으로 표현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시간도 없이 한쪽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버리는 사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돌밭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머리로,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가시밭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기는 하지만 세상의 온갖 걱정이나 유혹이 있을 때마다 쉽게 흔들리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 삶과 연결이 되지 않는 사람,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좋은 땅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온갖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많은 열매를 맺는 사람,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뿌려지는 내 마음의 밭이 길바닥인지, 돌밭인지, 가시덤불인지, 비옥한 땅인지, 우리 각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리고 과연 나는 하느님의 말씀의 씨앗을 받아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비유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들이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 비유말씀이 누구는 좋은 땅이고, 누구는 길바닥이고, 누구는 돌밭이고, 누구는 가시덤불이라고 구분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누군가에 대해서 “저 사람은 가시밭이다, 저 사람은 길바닥이고 돌밭이다”라고 함부로 구분하고 그렇게 사람을 평가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말씀은 이렇게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비옥한 땅, 좋은 땅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마음의 밭이 도저히 씨앗이 뿌리내릴 수 없는 밭이라면 거름을 주고 잘 가꾸어서 좋은 토양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의 밭이 가시덤불이라면 삽과 곡괭이를 들고 그 가시나무를 뽑아버릴 수 있습니다. 또 내 마음의 밭이 돌밭이라면 그 돌들을 골라내면 되고, 길바닥이라면 쟁기로 갈아엎으면 다시 좋은 토양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이렇게 기름진 마음의 밭을 가꾸라고 이런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인 씨앗을 잘 받아들이고, 또 잘 가꾸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은 우리 마음의 밭이 좋은 밭이 될 수 있도록 어떻게 가꾸고 있는지 오늘 하루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게 뿌려진 은총의 말씀들>

-양승국신부-


며칠간 세미나를 다녀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형제들을 위해 보다 효과적으로 봉사할 수 있겠는가?’하는 주제로 진행된 세미나를 위해 훌륭한 강사께서 물 건너 오셨습니다.


제대로 된 형제적 봉사를 위해 리더십, 조직력, 친화력, 참신한 아이디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등등 여러 덕목들이 요구되지만, 보다 우선적이고 중요한 덕목은 ‘영적생활에 우선권을 두는 삶’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제대로 된 봉사를 하기 원한다면 다른 무엇에 앞서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말씀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복잡한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심산유곡에 위치한 봉쇄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하루 온종일 기도 속에 보내는 사람일까요? 하루 10시간 이상 감실 앞에 앉아 성체조배에 전념하는 사람일까요?


그보다 영적인 사람은 성령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사람, 무얼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운동을 하든지,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사람이야말로 영적인 사람입니다.


기도, 미사, 영적 독서, 피정뿐만 아니라 공부 휴식, 운동, 취미활동, 잠을 잘 때에도 하느님과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은 바로 영적인 사람이며 제대로 된 영성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기보다는 성령의 활동에 많은 부분을 내어맡기는 사람, 밤이슬 내리듯, 미풍이 불어오듯 소리 없이 우리 곁에 머무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영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영적인 사람이야말로 보다 효과적인 형제적 봉사를 위해 적합한 사람입니다.


좋은 말씀들을, 핵심을 찌르는 말씀들에 다들 많이 반성을 했고, 형제들과의 공동체 생활에 새로운 전망을 지니게 되어 다들 기뻐했습니다. 주님께서 보내주신 뜻밖의 선물로 여겨졌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들은 그 말씀들을 마음 깊숙이 간직하는 일입니다. 피부로 와 닿는 만만치 않는 현실 앞에서 가르침을 떠올리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인내를 통해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앞에 펼쳐진 현실은 이론과는 너무나 다르더군요. 집으로 돌아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인내심이 흔들립니다. 갑자기 다가온 잡다한 걱정거리들로 인해 숨이 막힙니다. 밀린 숙제들이 압박합니다. 그 주옥같은 말씀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제게 뿌려진 은총의 말씀들이 바람에 흩어지지 말고 제 마음의 밭 안에 뿌리내려지길 기대합니다. 지속적인 자기 비움과 낮춤으로 말씀의 씨앗들이 숨 막히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작고 초라하나마 싹을 틔우고, 작은 열매나마 맺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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