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5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악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사람을 살리라고 하였느냐?
죽이라고 하였느냐?
(루가 6,6-11)
“I ask you,
is it lawful to do good on the sabbath
rather than to do evil,
to save life rather than to destroy it?”

말씀의 초대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힘을 받아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사도직은 예수님의 이러한 능력을 전하는 일이었다. 사실 그리스도 안에는 온갖 지혜와 지식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제1독서). 안식일에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쳐 주신다. 그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었다.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주님께서는 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 한다. 안식일에 치료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사람보다 법이 더 중요했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그라든 손은 고통스러운 손입니다. 병으로 그랬든 사고로 그랬든, 그는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한’을 풀어 주려 하십니다. 그는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을까요?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딴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안식일 법을 어기는지 ‘어기지 않는지’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언제 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기약이 없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려 합니다. 안식일인 줄 아셨지만 ‘모든 것’을 뛰어넘으셨습니다. 그분의 넓은 마음입니다. 바리사이들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직 법을 어긴다는 행위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하도 답답하니까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바리사이들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라는 율법이지, 죽이라는 율법은 아닙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을 소홀히 했기에 그런 해석이 등장합니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법을 따지지’ 않습니다. 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법을 따지고 규칙을 내세웁니다. ‘베푸는 연습’을 게을리하면 남아도는 것도 주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인간은 하늘도 좋아하지 않는 법입니다.

마음을 펴라
-반영억라파엘신부-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가을을 느끼게 합니다. 맑고 푸른 하늘은 곡식을 여물게 하는 더없이 좋은 선물입니다. 수확의 때가 되면 수고와 땀의 결실을 맛보게 되는 기쁨이 함께합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때를 기다립니다. 약속된 하느님의 나라를 기억하며 지금 여기서 수고와 땀의 결실을 기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시며 당신의 능력을 통해서 오그라든 손을 이전처럼 성하게 하셨습니다(루가6,10).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기쁨이라면 더 많이 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이 그 사람들입니다(루가6,7). 그들은 마음이 오그라들어서 예수님의 활동을 방해하고 마침내는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 수 있을 것인지 의논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손이 오그라든 것은 마음이 오그라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것은 아닌지? 내가 만들어 놓은 하느님 상 때문에 다른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 마음을 넣어주며 새 기운을 불어 넣어 주시길 청합니다.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시길 희망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일에서든 트집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는 무엇인가 꼬인 사람입니다. 얽힌 것을 풀면 좋으련만 바른 것도 꼬인 것으로 보니 그 사람은 불행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루카7,32)
사사건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못마땅해 하는 사람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긍정을 찾아내는 삶입니다. 긍정의 주 하느님을 생각하십시오! 행동은 마음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잘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무엇이든 주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마음자세를 굳건히 하여 참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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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
-김인한 신부-
어느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발도로프 인형이라는 것을 선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손으로 만든 인형으로 아주 단순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 인형의 얼굴에
눈코입 등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선물한 선생님 말로는 유아들이
자신의 감정에 따라 이 인형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기쁘면
인형도 웃고, 자신이 화 내면 인형도 찡그리는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 법을 어겨서라도 드러내고자 하신 것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째려보고 있던
사람들의 오그라붙은 그 마음들입니다. 예수께서 안타깝게 바라본 것은
오그라든 손보다도 오그라든 그들의 마음입니다.
손을 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오그라든 마음을 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그라든 마음은 다른 이들도 오그라들게 만듭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다른 이를 해할 수 없지만 오그라든 마음은
다른 이를 해합니다. 펴진 마음은 다른 이를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오그라든 마음을 펴고 다른 이를 살리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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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박기호 신부-
예수께서 구마와 치유를 베푸신 기적의 에너지는 애정이다. 가장 강력한 애정은 자기 몸을 보호하는 이른바 본능이다. 그런데 불행한 처지의 누군가에 대한 연민이 넘치면 그가 자기 몸으로 여겨진다. 바로 그때 본능 이상의 에너지가 발생하여 희생과 기적이 된다. 예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이를 당신 앞에 세우시어 치유하신다. 진정 예수님을 영접해 내 상처를 보여드릴 때 치유가 이루어진다.
‘산 위의 마을’ 가족들은 성체성혈의 주님을 영접할 때 다음 기도를 바친다.
‘치유를 구하는 기도’
주 예수님, 당신 앞에 오롯이 왔나이다.
저의 죄를 참회하오며 뉘우치오니
당신의 이름으로 저를 용서하소서.
다른 모든 이들이 저에게 저지른 것을 용서하나이다.
악마와 악령과 그것들의 모든 악행을 끊어버립니다.
주 예수님, 제 자신을 온전히
이제와 영원히 당신께 드립니다.
예수님 당신을 저의 삶에 초대하오며
저의 주님으로 영접하옵니다.
하느님, 그리고 구세주시여.
저를 치유하소서, 저를 변화시키소서.
저의 몸과 영혼과 정신을 강건케 하소서.
오소서, 주 예수님.
당신의 고귀한 피로 저를 덮어주소서.
당신의 거룩한 영혼으로 저를 채워주소서.
주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예수님,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예수님, 당신께 감사드리나이다.
제 삶의 모든 날에 당신을 따르겠나이다. 아멘.
나의 어머니이시며 평화의 여왕이신 마리아님,
모든 천사와 성인들이여, 저를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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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바램
-서영남 -
민들레 국숫집은 오전 열 시에 문을 열고 오후 다섯 시에 문을 닫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이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기다리면 아홉 시에도 문을 엽니다. 문 닫고 정리를 하다가도 배고픈 손님이 오시면 상을 차려드립니다.
진호씨는 몇 해 전에 이혼하여 혼자 살고 있습니다. 시력이 나빠져서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정부에서 나오는 생계지원비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돈이 나오면 술과 노름으로 다 써버립니다. 어느날 술에 취한 진호씨가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 찾아왔습니다. 늦었지만 빨리 드시라며 상을 차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식사를 합니다. 조금 빨리 드시라고 했더니 화를 벌컥 내며 밥을 먹는 데 재촉하니 체할 것 같다고 하십니다. 천천히 다 드시고 물도 한 잔 드신 다음에 밖에서 기다리는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진호씨는 화가 잔뜩 나서 말합니다. “정부에서 한 달에 수백만 원씩이나 받으면서 왜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지 않느냐? 경찰에 고소해 버리겠다.” 옆에서 듣던 대성씨가 “아저씨, 우리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아요.” “세상에 어떤 정신나간 사람이 자기 돈을 들여서 밥을 주는 사람이 있느냐?” 코웃음을 치면서 온갖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큰소리로 떠들다가 다시는 오지 않겠다면서 떠났습니다. 다음날 저녁 무렵에 어색한 웃음을 띠고 진호씨가 왔습니다. “배고프세요?” 고개를 끄덕입니다. 상을 차려드렸습니다. 국수집에 오는 걸 많이 망설였는지 무척이나 시장하셨나 봅니다. 밥을 아주 맛있게 드십니다.
진호씨를 보면서 사람을 살리는 일이 모든 일에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거나 힘이 없어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은 죄인까지도 멸망하기를 바라지 않으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이 원하실 수 없는 악한 일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자유와 생명을 누리며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것도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면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