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루가 5,1-11)
말씀의 초대
바오로는 콜로새 교우들이 영적으로 풍성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야만 불신앙을 참아 내고 굳건한 믿음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합당하게 살며 선행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은총의 길을 안내한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베드로 사도를 부르신다.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그에게 기적을 일으켜 주신 것이다. 놀란 베드로는 죄인인 자신을 떠나 달라고 청한다. 그의 겸손이었다. 베드로의 겸손과 순명이 그의 일생을 바꾼 것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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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복음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만나는 또 다른 장면입니다. 그는 밤새 고기잡이에 나섰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실패한 겁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깊은 데로 가서 ‘다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 허탕을 쳤지만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이끌리듯 그물을 던집니다.
이 장면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어찌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을까요? 경험은 자신이 더 많습니다. 고기잡이에 관한 한 그는 고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낮추고 순종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과는 기적입니다. 엄청난 고기가 잡히는 축복이었습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축복 앞에서도 겸손을 잃지 않았습니다.
실패 뒤에 신앙을 만난 이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 이들은 작은 실수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역전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을병을 앓다가 살아난 사람도 어딘가 다릅니다. 삶이 ‘한순간’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성공과는 인연이 없는 듯합니다. 그렇더라도 겸손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베드로에게 가셨듯이, 그분께서는 반드시 오십니다. 인생의 적(敵)은 바깥에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마음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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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허황된 꿈과 현실적으로 가능한 꿈입니다. 복권을 사는 이들은 대부분 눈빛이 달라집니다. 당첨을 기대하는 막연한 희망 탓입니다. 그러기에 맑기보다는 몽롱한 눈빛입니다. 각고의 노력 없이 한탕을 노리는 사람의 눈빛이 어찌 야무질 수 있겠습니까? 허황된 꿈은 사람을 흐느적거리게 만듭니다.
허황된 꿈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망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탕을 노리다 보니 때로는 사기를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들은 쓰라린 고통을 참고 견디는데 자신은 단박에 이루려 하니 편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허황된 꿈이 아니라 현실적인 꿈을 간직했더라면 분명 달라졌을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기적 앞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생각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겸손입니다. 주님 앞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자신을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허황된 꿈에 젖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선택하셨습니다. 그의 진심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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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사업가가 바닷가를 여행하다 작은 어촌에 들렀습니다. ‘장사가 될 만한 것이 없을까?’ 하는 생?막?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다 배 옆에서 햇볕을 즐기고 있는 어부들을 만납니다. “왜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습니까?” 부자는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오늘 몫은 넉넉히 잡았소이다.” 어부들은 건강한 웃음으로 답합니다. “아니, 그렇더라도 잡는 김에 더 많이 잡을 수 있지 않소.” 부자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더 잡아서 뭘 하게요?” 어부들은 귀찮다는 말투로 대답합니다.
“많이 잡으면 돈을 더 벌지 않소. 그 돈으로 더 큰 배를 마련할 수 있고, 그러면 더 많은 돈을 벌고, 배를 여러 척이나 거느리며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고는 뭘 하게요?” 어부들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뭘 하다니요? 그런 뒤에는 편히 앉아 쉬며 삶을 즐길 수 있지 않습니까?” 부자는 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어부가 웃으며 답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의 예화를 조금 각색해 보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바다와 함께 살면서 탐욕을 버린 어부들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어부들을 당신의 첫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려면 욕심에서 자유로워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탐욕에서 벗어나면 분명 주님의 부르심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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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지혜는 돈을 많이 벌라고 가르칩니다. 권력을 추구하라고 부추깁니다. 베드로도 야고보도 그리고 요한도 그렇게 잘살아 보겠다고 열심히 고기를 잡았을 것입니다. 때로는 밤새워 일했지만 허탕을 치면서도 말입니다. 그런 그들을 주님께서는 더 뜻있는 삶으로 이끄십니다.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낚도록 하십니다. 사탕과 진주를 구별할 줄 모르는 아이는 사탕을 선택합니다. 주님께서 제시하신 영원한 생명과 이 세상의 지혜가 부추기는 부귀영화 가운데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
-반영억신부-
순교자 성월입니다. 죽음에 이르기 까지 믿음을 증거 한 분들을 순교자라고 합니다.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 한 고귀한 삶을 기리고 우리도 세례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로마 6,5)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성 예로니모는 “순교자의 피는 믿음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는 “사랑의 순교라고 하는 또 다른 순교가 있습니다. 이 순교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끝없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명을 존속시키어 그들을 동시에 순교자와 증거자가 되게 하십니다.”고 말합니다. 매일의 일상 안에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사랑의 순교자가 되길 희망합니다.
시몬 베드로는 밤새도록 애썼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오랜 경험으로는 예수님께서 그물을 치라는 시간은 고기가 잡히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하며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쳤고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고기를 얻게 되었습니다(루가5,5). 예수님은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요청했고, 베드로도 그저 예수님의 뜻을 따랐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믿음을 요구하셨고 믿음은 순명을, 그리고 순명은 기적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믿음은 모두를 얻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결국 구원은 믿음을 요구 합니다.
그런데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하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왜 많은 고기를 잡았는데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두려워했을까요? 동안에는 고기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능력의 예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그래서 떠나 달라 합니다. 거룩하신 분을 가까이에서 모시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 되게 무릎 꿇는 그 모습이 오히려 제자의 참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죄 많은 자의 고백을 받아들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이제는 더 이상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 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지만 베드로는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지식이나 경험, 업적, 애착, 인정으로부터 벗어나 주님의 자유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따름으로써 예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믿게 되고 전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든지 따를 수 있는 마음의 준비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겸손과 순명을 우리의 예물로 봉헌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순명의 역사가 고기를 잡지 못한 피로와 절망을 한 순간 희망과 성공으로 바뀌었듯이 하느님을 깊이 만나는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선입견과 지식, 경험들이 주님 안에서 녹아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그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또 행동해야 하는데 내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면서도 그분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야 어찌 사람들이 나의 낚시에 낚이겠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그분이 원하시는 모양으로 축복된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주님을 만나러 어디로 갈까나
-상지종신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나 이병에 가득히 넣어가지고서 라라라 라라라라 온다나"
어렸을 적 즐겨 부르던 동요입니다. 고기를 잡으러 어디로 가야할까요? 고기가 있는 곳으로 가야지요.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는 어리석음을 빗대는 말로서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라는 뜻의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주님을 만나러 어디로 가야할까요?
성당에, 기도하기 위한 고요한 침묵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기도할 때... 맞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성당에'만', 고요한 침묵의 시간과 공간 속에'만'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린 답입니다. 적어도 주님을 만나는 데 있어서 만큼은 '연목구어'라는 말이 맞지 않으니까요.
일상 생활 안에서는 주님과 함께 있음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애써 특별한 장소와 시간을 찾는 분들을 보면, 그분들의 열심한 모습에 감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상 생활 안에서, 자그마한 만남들 안에서는 주님을 만나고 있지 못하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가지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만난 어부 베드로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부럽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일상 생활 안에서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써 베드로에게 있어서 오늘의 일상은 어제와는 다른 일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어디로 갔을가요? 아무데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 자리를 진득하니 지키고 있었을 뿐입니다.
행운의 사나이 어부 베드로! 호박이 덩굴째 들어온다고 했던가... 물고기도 많이 잡고, 주님의 부르심도 받고... 왜 나에게는 이런 행운이 없을까? 아니요.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 행운('은총'이라고 하는 것이 신앙인다운 표현이겠죠.)을 지금까지 잡지 못한 것뿐이지요. 높은 곳만, 먼 곳만 바라보고 있으니,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싶네요.
"베르나르도야! 너는 날 만나러 어디로 올거니?"
친구 예수님께서 던지시는 하나의 화두입니다. 벗들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시지 않나요?
"가긴 어딜가요? 지금 함께 계시잖아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내게 맡기신 일들을 통해, 당신은 언제까지나 함께 하시잖아요. 함께 하시고 부르시는 당신을 몰라 본 제가 바보죠!"
이렇게 답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그리스도인일이 아닐까요?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사랑하는 벗님들 모두 가장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자그마한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참담한 심정>
-양승국신부-
하필 물때가 맞지 않아 밤낚시를 완전히 망친 날,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에 올라오십니다. 그리고 시몬에게 하시는 말씀은 더욱 뚜껑 열리게 만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그 말을 들은 시몬은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몹시 언짢았습니다. 그날은 전문직 여부였던 시몬과 동료들조차 밤새도록 그물을 쳤지만 단 한 마리도 못 잡았던 일진이 좋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어떻게 단 한 마리도 못 잡을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사실 낚시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낚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한 마리도 못 잡은 시몬의 그 참담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낚시는 사실 물때가 언제이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시몬과 그 동료들이 밤낚시를 한 때는 아마도 가장 물때가 가장 좋지 않을 때로 추정됩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쳐보았지만 피라미 새끼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 허탈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루 밤을 괜히 허송세월 했다는데서 오는 허탈감, 일단 잡아야 먹고사는 게 어부인데, 한 마리도 못 잡았으니 공쳤다는 말입니다.
일단 고기를 좀 잡았어야 새벽녘의 그 기가 막힌 매운탕에 소주 한잔도 할 수 있고, 또 피로도 풀 수 있을 텐데, 완전히 공치다보니 속은 더욱 쓰렸습니다. 학수고대하고 있는 가족들 얼굴이 떠오르면서 시몬의 어깨는 더욱 쳐졌습니다. 집에 들어갈 면목이 없었습니다.
이토록 심기가 불편해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불난 데 부채질이라도 하듯이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이 말을 들은 시몬과 동료들은 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 지가 뭔데, 아무리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을 한다지만, 그래도 고기잡이에는 우리가 일가견이 있는데, 우리가 이 직종에만 종사해온 지가 벌써 30년인데, 지가 뭘 안다고, 그리고 말하는 것 들어보니 더욱 가관이네. 지금 이 시각에 고기는 무슨 고기! 그리고 또 깊은 곳으로 가서 치라고? 야! 끓는다 끓어!"
동료들을 겨우 달랜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며 마지못해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쳤습니다.
이 상황에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치라 "는 예수님의 요청은 한 마디로 기존에 시몬이 지니고 있던 낡은 가치관, 인간적인 삶의 양식,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버리라는 요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인간적인 것들을 버려라! 그래야 완전히 새로움인 나를 받아들일 자격이 생긴다"는 진리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보다 전적인 신뢰를 요청하고 계십니다. 기존에 시몬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적인 자질이나 능력, 경험들을 다 던져버리고 당신과 함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자는 예수님의 초대가 바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쳐라"는 말씀의 요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부르시고 선택하실 때 조건 없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따라서 인간은 시몬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두려움을 없애주시고 그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이제 시몬은 배를 육지에 대고 어부라는 직업을 버립니다. 이제 시몬은 새로운 성취수단을 발견한 것입니다. 시몬의 삶은 이제 고기를 낚던 삶에서 하느님의 사람을 낚는 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