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고르넬리오,치프리아노 순교자 기념일(1디모테오 6,2-12 : 루가8,1-3)

2011. 9. 16. 오전 7:08:40

글자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신하 쿠자의 아내인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라는 여자를 비롯하여 다른 여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돕고 있었다.
(루가 8,1-3)

성 고르넬리오 교황은 251년에 교황으로 뽑혀, 로마 황제의 박해 시대에 2년 동안의 짧은 교황직을 수행하였다. 이단을 거슬러 교회를 지키다가 유배지인 로마 항구 치비타베키아에서 253년 순교하였다. 성 치프리아노 주교는 웅변가와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개종하여 사제가 되었고, 249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대주교로 뽑혔다. 성 치프리아노 주교도 박해로 유배를 당하여 258년 참수되었다. 그는 “교회 일치에 관하여”라는 글을 남겼다. 

  

 

 

말씀의 초대

 의로움과 믿음, 사랑과 인내를 떠나 돈과 재물을 따라가는 것은 모든 악의 시작이다. 마침내는 돈과 재물이 우상이 되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답게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주님에 대한 믿음을 지켜야 한다(제1독서). 여인들이 자신의 재산으로 예수님 일행을 돕고 그들에게 봉사한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은 말씀을 선포하고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을 돕고 헌신하는 것을 포함한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의 복음을 보니, 예수님과 제자 일행을 도와주며 따르는 여인들이 있었네요. 당시 팔레스티나 지방의 관습으로 볼 때 여자들이 남자들을 따르고 돌보아 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여성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빈 몸으로 오로지 하늘 나라만을 선포하는 예수님과 그 일행을 자기들 재산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나라 박해 시대에도 이 비슷한 일을 한 여성이 있었지요. ‘하느님의 종’ 강완숙 골룸바입니다. 강완숙 골롬바는 조선 교회 첫 선교사인 주문모 신부의 입국을 돕고 경제적인 뒷받침을 하였습니다. 또한 1795년 을묘 박해가 일어나 주 신부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자, 주 신부를 자신의 집에 머물도록 하여 당시의 유교 관습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을 함으로써 주 신부의 선교 활동을 도와줍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셨지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7-28). 당시 신분의 차별이 매우 심했던 유다 사회에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이고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는 좋은 일도 궂은일도, 남자도 여자도 따질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가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본당에서 여성들의 활동은 참으로 아름답고 놀랍습니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없이 봉사하는 여성들이 있어서 교회는 더욱 생명력을 가집니다.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복음을 선포하는 곳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 하늘 나라를 일구어 갑니다.

☆☆☆

  ‘마리아 막달레나’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라는 뜻입니다. ‘막달라’는 갈릴래아 호반의 휴양 도시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 일생일대의 변화를 체험했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따르던 여성 가운데 언제나 첫 번째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했던 여인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여인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일곱은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러기에 ‘일곱’이라는 숫자에 얽매일 이유는 없습니다. ‘강렬한 악의 세력’에 빠졌던 여인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아무튼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 전혀 새로운 여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 뒤로는 일편단심 예수님만 섬기며 삽니다. 사랑받은 만큼 사랑을 되갚는 생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도 끝까지 지켜본 여인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악의 세력’에서 벗어났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에서 벗어나자 엄청난 변화를 체험합니다. 평생 감사하며 살 만큼 은혜로운 변화입니다.
우리에게는 ‘악한 기운’이 없는지요? 우리의 삶을 어둡게 하는 ‘악의 세력’을 느낀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내리신 주님의 은총을 우리도 청해야 합니다

☆☆☆

복음에서는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마리아 막달레나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이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셨고, 부활하신 그분을 처음으로 목격했던 분이십니다. 어찌하여 그토록 예수님을 추종하며 사셨을까요?
한때 포기했던 삶이었는데, 그분께서 들어와 빛과 향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한때 좌절했던 인생이었는데, 그분을 만나 삶의 기쁨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인간은 체험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평생의 은인으로 모셨습니다. 그분 곁에 머무는 것을 삶의 이유로 여겼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복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지켜 가는 것은 축복입니다. 헌신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는 일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런 사랑을 예수님께 쏟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랑을 점점 승화시켜 주셨고,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사도로 변신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함을 용서하소서.
그 영혼만을 사랑하려 하나 가끔은 그를 안고 싶어 함을 용서하소서.
부질없이 깊숙이 묻어 버린 기억을 밤새워 도로 캐어 냄을 또한 용서하소서.
허다한 날 혼자 앓는 지병이 힘겨워 가끔은 그를 잊은 척함을 용서하소서.
아니 정말로 잊기 위해 가망 없는 노력을 더러는 함을 용서하소서.
그러나 나를 위해서는 한 발자국도 그의 곁에 갈 수 없고
그를 위해서는 백 리라도 뒤로 물러설 수 있음을
당신은 알고 있나이다.

이화은의 시 사람의 노래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여인들     

-최혜영 수녀-

 

 예수님 주변에는 많은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가까이 하시는 예수님 곁에 여자들이 많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유난히도 세간의 이목을 받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막달레나)로 출신지가 갈릴래아 지방의 수도 티베리아스 북쪽의 막달라 마을이었나 봅니다. 성경에 따르면, 막달레나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내주신 여자로 예수님의 장례를 지켜보았고 어느 누구보다 먼저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달레나에 대해서는 온갖 호기심이 발동하는지 그동안도 숱하게 많은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의 관심이 되어 예수님의 애인으로 그려졌고, 최근에는 소설 <다빈치 코드>가 인기를 모으면서 예수님과 막달레나의 결혼설이 들먹여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성을 가지셨기에 성적 존재로서 성적 욕망을 경험했으리라는 가정은 가능하겠지만 인간이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야만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오히려 남자들의 욕망을 멋대로 막달레나라는 인물 안에 투사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예수님께 온전히 치유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을 해치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김덕진-
 

 여권신장 시대’·‘페미니즘 시대’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다. 물론 동남 아시아나 중동지역 여성들이 받는 정도의 핍박을 대한민국 여성들이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도 탄생했고, 얼마 전까지 제1야당의 대표도 여성이었다. 여성 CEO나 여성 대법관 등 흔히 말하는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러나 이러한 몇몇 사례를 기준으로 이 땅의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직도 기업에서 정리해고 대상 1순위는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이고, 여성은 집안일이나 하고 아이나 키우면서 남성들이 하는 일에는 관심을 꺼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남성들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호주제가 폐지되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갓집에서 상주 노릇은 나이가 어려도 아들이 하는 것이고, 아들이 없으면 사위가 하는 것이 미풍양속처럼 되어 있는 것이 우리 사회다. 여전히 이 땅의 절반인 여성들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희생과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이 구절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고 두루 다니셨는데 마귀에 시달리던 여인들이 자기 재산을 털어 시중을 들며 예수님 일행과 동행했다는, 너무나 평범한 구절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게는 “시중을 들었다”는 구절이 상당히 불편하게 들려왔다. 이는 마치 여성들이 모두가 남성인 예수님 일행을 시중 드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구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당시 사회의 ‘양성평등의식’이 현저하게 낮았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예수님은 당시 사회의 소수자이고, 차별받는 사람들이던 여성들을 일행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심지어 일곱 마귀가 들었다가 떨어져 나간 마리아 막달레나와도 제자처럼 동행하셨고, 당신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하셨다. 2000년 전 예수님은 그렇게 소수자들,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하신 분이셨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처럼 우리 주변의 소수자들과 동행할 수 있을까?

   

  숨은 공로자가 되어라

  -반영억라파엘신부-

“나누면 나눌수록 풍요로워지고 버리면 버릴수록 자유롭게 됩니다.”(성 빈첸시오) “쌓아 놓으면 쌓아놓을수록 줄 것이 없습니다. 주면 줄수록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마더 데레사) 이것이 사랑의 논리입니다. 그러므로 베풀 때는 기쁜 마음으로 민첩하게 해야 하고 후회 없이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복음을 전하셨는데 제자들과 막달라네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라는 여자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도왔습니다. 그들 중에는 일찍이 악령과 질병에 시달린 사람도 있었는데 주님을 만나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악령과 고통을 통해서 주님을 만났고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했기에 모두를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따름으로써 주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되었고 나중에는 십자가 밑에도 설 수 있었고(루가23,49) 천사들로부터 주님 부활의 소식을 듣고 이를 사도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습니다(루가24,10). 그들에게 ‘시련은 은총의 기회’였습니다. 

여인들은 주님을 만남으로서 행복했고 자기의 것을 내놓음으로써 제자들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베풀었지만 보답을 바라지 않았고 자기네 재산을 바쳤지만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숨은 공로자들 입니다. 그들은 “은혜를 베푼 것은 모래밭에 새기고 은혜를 입은 것은 돌 판에 새겼습니다.”우리는 그 반대입니다. 

오늘도 각 성당의 성모회를 비롯한 많은 액션 단체들이 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궂은일을 도맡아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생색을 내지 않고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습니다. 아마도 자발적인 봉사를 하는 사람이 없다면 복음전파의 구원사업은 물론 성당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숨은 공로자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도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를 보면“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1티모6,8-9)라고 적혀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은 선한 것이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화가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인들이 자기네 재산을 주님의 일에 쓴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의 뜻에 알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은총을 간구해야겠습니다. 사실 ‘누가 부자가 된다 하여도, 제집의 영광을 드높인다 하여도,... 죽을 때 그 모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으며 그의 영광도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합니다.”(시편49,17-18).

알퐁소 성인의 기도문으로 마음을 모아 기도합니다. “당신이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저는 저의 뜻을 버리고 당신의 뜻에 저의 뜻을 맞추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숨은 공로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치프리아노는 말합니다. 시련의 때에 “단식과 밤샘과 기도에 항구하도록 합시다. 이것들은 우리를 용감히 서 있게 하고 인내하도록 도와주는 천상의 무기들입니다.”마음을 다해 기도할 때‘시련은 은총의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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