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2일 월요일 한가위

2011. 9. 12. 오전 7:38:39

글자

 

2011년 9 12일 월요일 한가위

오늘은 추석 명절입니다. 옛날부터 한 해의 수확에 감사드리는 날이었습니다. 하늘의 도움 없이는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없기에 이런 명절이 생겨났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새롭게 축복해 주시고 우리가 하는 일에도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청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앞서 가신 조상님들과 부모 형제, 은인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세상의 모든 만물이 주님의 보살핌으로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때에 비를 내려 주셔서 양식을 내고 기쁨을 나누도록 하신다. 이스라엘에 내린 사랑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인류에게 전해진다(제1독서). 주님께서 곡식을 수확하시는 땅은 그 위에 사는 인류를 가리킨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추수하시듯 온 인류를 심판하시고 당신의 나라로 불러들이신다(제2독서).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 것으로 평화와 안정을 누리려 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은 주님 안에 있어, 주님께서 숨 한 번 거두어 가시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복음). 

☆☆☆

1독서

요엘 예언서. 2,22-24.26ㄱㄴㄷ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광야의 풀밭이 푸르고,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도 풍성한 결실을 내리라.
23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24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
26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요한 묵시록. 14,13-16
13
나 요한은,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
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5-21
그때에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

 오늘의 묵상

사람들에게 “한 해 최대 명절인 추석은 어떤 날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오곡백과를 내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날’,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는 날’, ‘부모님 찾아뵙고 못다 한 효도를 하는 날’,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과 우애를 나누는 날’과 같은 대답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대답이 많답니다. ‘부부 싸움 하는 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대립하는 날’, ‘형제들 의리 상하는 날’, ‘돈만 쓰고 피곤하기만 한 날’ 등. 한 해 최대 명절이지만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오랜만에 모여 우애와 행복을 나누는 가족도 많지만, 점차 그런 모습은 줄어들고 오히려 가족 간의 불화가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명절 모습인 듯합니다. 마치 핵분열을 하듯 가족이 해체되고 부모와 형제 관계도 이해관계에 따라 우애가 결정되고 있습니다. 아무런 능력도 재산도 없는 부모나 형제는 자신에게 피해나 주는 귀찮은 존재로만 여겨집니다. 쥐꼬리만 한 재산상의 이해관계만 걸려 있어도 형제간에 등 돌리고 사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런 가족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그 안에 인정과 우애보다 물질적 가치가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자기 곳간에 재물을 더 쌓아 두지 못해 불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족의 분열과 불화의 탓을 다른 형제에게 돌림으로써 더욱더 나쁜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대가족이면서도 형제 사이에 우애가 있고 화목한 가정은 형제 가운데 누군가 사랑과 희생으로 모든 가족을 아우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형제에게 왜 희생을 못하느냐고 묻지 말고, 스스로 가족과 이웃을 위해 희생과 아픔을 말없이 참아 내야 합니다. 평화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깃들게 됩니다. 이것이 하늘에 쌓아 두는 재물입니다. 풍성한 수확의 계절,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만은 풍요로워야 하겠습니다.

☆☆☆

 
우리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는 멀리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음력 7월 보름부터 서라벌 여인들이 편을 갈라서 길쌈놀이를 하다가 8월 대보름이 되면, 길쌈을 거두어 서로 견주어 승자와 패자를 가름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날은 승자도 패자도, 모두 서로의 노고를 칭찬하면서 축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이날의 절정은 동산 위에 크고 둥근 달이 떠오를 무렵, 임금이 문무백관들과 백성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천지신명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제사 음식을 골고루 나누면서, 한편으로는 천지신명께 감사를 드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상의 은덕을 기렸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맨 먼저 천지신명이신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렸고, 그다음으로 선조에게 감사를 드렸으며, 마지막으로 형제자매들이 서로 함께 기쁨의 축제를 보냈던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세월이 흐를수록 이러한 미풍양속은 점차 사라져 가고, 오늘날에는 개인주의와 못된 탐욕만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해집니다. 조상 제사라는 의무감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일가친지들과 주변의 이웃들과 서로 기쁨과 생활을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 봅시다.

☆☆☆

잘 사는 것과 잘 못 사는 것의 구분은 어렵습니다. 재물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한 삶이 될지는 몰라도, ‘잘 사는 것과는 구분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살지 않으면 대개는 잘 못 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 진정 잘 사는삶이 됩니다. 주님께서 그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물질적으로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영혼은 메말라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삶이란 재물을 모으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육체는 할 일이 많았지만, 영혼은 억눌려 지내야 했습니다. ‘영과 육의 균형이 맞을 리 없습니다. 결과는 불안과 허무입니다. 영혼이 보내는 목마름의 신호인 것이지요
.
잘 사는 삶이란 감사드리는 삶입니다. 감사의 시각으로 보면 어느 것 하나고맙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축복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불평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잘 살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와 비교해 못 산다고 생각합니다. 잘생긴 용모인데도, ‘어느 누구와 비교해 못생겼다고 판단합니다. 상대적 빈곤감입니다. 비교함으로써 스스로가난해지는 모습입니다
.
감사드리는 생활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극복됩니다. 그러기에 옛사람들은 추석 명절을 만들어 억지로라도 감사드리게 했습니다. 감사만이 하늘의 기운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추석 명절미사

 -반영억 신부-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무엇보다도 감사하는 날입니다. 하느님과 조상님들을 기억하고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부모와 이웃에 감사하고 그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명절의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합니다.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납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그 안에서 부모, 형제, 친척, 이웃을 만나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의 정을 키우는 날입니다. 아무쪼록 지금 내가 여기에 있음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처지와 환경이 어떠하든 주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니 만큼 찬미의 노래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생명의 근원이신 부모의 은혜에 대한 보은에 남다른 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부모에 대한 효의 실천은 세 가지 양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첫째가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잘 보전하여 후손에게 길이 전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벼슬길에 올라서 부모의 이름을 드높여 부모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부모님을 정성껏 봉양하고 효도함은 돌아가신 후에도 제사를 통해서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으로써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지 생이 계속됨을 믿었고 살아계실 때와 같이 가족공동체와 계속적인 유대 관계를 유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사는 죽은 이들을 계속 공경함으로써 효도를 이어가는 방법이며 결국 제사의 의의는 은혜를 갚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하느님의 계명과 아무 마찰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나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을 하고 예를 드리는 것은 신앙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이는 죄나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생전에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생전에성균관에서 명예학위를 받게 되셨는데 매스컴은 추기경님께서 과연 성균관의 예법에 따라 절을 할 것인가? 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추기경님께서는 서슴없이 절을 하셨습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를 갖추었다면 그게 우상숭배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천주교는 제사문제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조상공경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우상숭배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조상제사를 철폐하였고 이는 부모의 은덕을 망각하는 인륜을 저버린 짐승만도 못한 무리라고 하여 천주교신자는 죽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1939년 12월8일에 이르러서야 교황청은 조상의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닌 조상에게 효성을 표시하는 미풍양속이며 민족의 훌륭한 유산이므로 수용해야 하고 토착화해야 한다.는 평가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아픔이 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사를 지냄에 있어서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신주 문제입니다. 신주는 밤나무로 만들었는데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그 신주에는 조상의 혼이 마물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은 혼백(넋)의 갈림길이라고 믿었고, 이 혼이 의지할 곳이 없어서 떠돌아다니는데 떠돌아다니게 그냥 두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혼이 머무르도록 하기 위해서 안식처를 만들어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주의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 때는 바로 그 신주를 모셨습니다. 신주를 모신 것은 돌아가신 이를 섬기기 위해서는 볼 수 있는 상이 필요했고 신주는 바로 돌아가신 이의 상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돌아가신 이를 만나는 하나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그 영혼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사람은 단 한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히브9,27) 그리하여 천국이나 지옥, 아니면 연옥에 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따라서 죽은 이의 혼이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근본적으로 대치됩니다. 만약 죽은 이의 혼이 떠돌아다닌다면 세상은 난리판이 될 것입니다. 그 말은 곧 지옥으로부터의 탈출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하느님은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허술한 하느님을 누가 하느님으로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다 하느님의 권능 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주를 모시는 것은 잘못입니다. 

두 번째는 제사 날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음식을 잡수시러 온다는 사상과 조상들을 잘 공경하면 조상이 복을 준다는 사상은 바꿔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돌아가신 분들이 음식을 잡수러 오시기 때문에 음식을 차렸다면 신앙과 위배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은 음식을 잡숫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생전에 좋아하셨던 음식이나 못해드린 음식을 차려 대접함으로써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기억하는 것이지 조상이 와서 잡숫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고 복을 주고 안 주고는 조상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을 부르고 음식을 차리고 거기에 복을 기원하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들이 천상에 들지 않았다면 천상에 오르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천상에 계시다면 그분들이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심을 믿습니다. 제사의 핵심은 효요,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 천주교회의 전통적인 제사는 무엇입니까? 미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바치신 십자가의 죽음을 제사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하시며 이 제사가 계속 이어지기를 명하셨습니다. 명절에는 특별히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아직 천상의 영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 연옥에 계시는 분이 있다면 우리의 기도와 희생으로 하루빨리 하느님나라에 갈 수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위령미사는 바로 교회공동체가 한마음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을 위해 자비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주 미사봉헌을 하여 효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유한 미풍양속인 제사를 봉헌하며 세상을 떠난 조상이나 부모,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꼭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더 더욱 중요한 것은 살아계신 부모님, 어르신께 효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돌아가신 후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무슨소용이 있겠습니까? 요즘은 부모 찾아뵙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미리 형식적으로 찾아뵙고 자기들끼리 여행을 가는 분위기입니다. 진정한 효는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고 사랑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즐겁고 복된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참고로 불교의 49재를 말씀 드립니다. 49재는 한마디로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 즉 불공입니다. 석가모니께서는 25세에 출가하여 6년의 고행을 한 후 득도하여 48년간 설법을 하셨고 49년째에 세상나이 80세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49라는 숫자가 중요하고 또 불교에서는 윤회설을 믿는데 사람이 죽은 날로부터 49재를 치르는 날 사이의 기간을 ‘중유’라고 하여 이 기간에 생전의 업에 따라서 다음세계가 결정된다고 봅니다. 즉 모든 중생은 천상, 인간, 축생, 아수라(싸우다),아귀(다툼),지옥의 여섯 세계를 윤회하며 이 가운데 아수라, 아귀, 지옥을 ‘삼악도’라 하여 고통과 지옥으로 가득 찬 세계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49재는 죽은 자가 삼악도에 들어가지 않고 보다 나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비는 불공입니다. 49일째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그날을 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9재 미사를 봉헌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성당에서 50일 탈상을 권장하는것은 아래의 설명에서처럼 성령강림의 오순절을 기념하기위함입니다.
 
탈상 절차에 대하여....(돌아가신지 50일째 되는날)
 
*전 가족이 위령미사에 참례하고 신자 가정에서의 탈상,기일등 선조를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날에는  가정의 제례보다 우선하여 위령미사를 봉헌하도록 알려줍니다
*사목지침서*
 (가족중에 비신자 분들이 계시더라도  함께 미사에 참여하시도록 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 위령기도를 바치시고 (가톨릭 상장예식 123쪽 짧은 위령기도 )
 * 전통적인 제사는 각 가정의 형편에 따라 지내시면 되겠습니다.
  
 “우리 나라는 3년 탈상, 1년 탈상, 100일 탈상이었으나,

  현재에 와선 49일 탈상이 많아졌다.

 

   가정의례준칙에 의한 49일 탈상이나, 이는 불교의 49제사의 49일로써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기간이다. 우리는 50일 탈상이 좋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유다인들은 출애굽의 파스카 사건의 종결을

            오순절에 기념했었다. 히브리말에서 오순절이라는

               ‘쉰번째 날’을 ‘Asseret’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종결’, ‘끝’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신앙의 오순절의 성령 강림 또한

                그리스도의 새로운 파스카의 완성이며

             재창조의 시작이기에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

 

   "이렇게 볼 때, 이 50일은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영원한 존재 말살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삶의 종결이며 완성인 동시에 새로운 삶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50일의 상기 동안에는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바치며  죽은 이가 하느님의 자비를 힘입어 영생을 누리기를 염원하고,

 이 상기를 마친 다음에는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죽은 이와 함께 바치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 안에서의 통공의 삶을 다지자는 것이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김기현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라고 경고조로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작은 탐욕이 엄청나게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을 점령하고 있을 때, 길키라는 사람이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곳에 잡혀있던 수감자들의 배급량은 하루에 1,200로링 불과할정도로 적었습니다. 빵 여섯 조각, 끊인 물이 전부였습니다. 모든 포로들은 저체중에다 영양 부족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먹을 것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미국 적십자사에서 미국인 포로 200명분, 200개의 꾸러미를 배편으로 보냈습니. 미국인 포로들은 금덩이라도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20킬로그램의 꾸러미 하나에는 각각 분유 한 통, 버터 세 캔, 스팸 세 캔, 치즈, 초콜릿, 설탕 한 파운드씩, 그리고 분말커피, , 연어 통조림, 그리고 말린 자두나 건포도 봉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길키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우리는 주로 빵에다 고기나 기름기는 거의 없고 당분은 물론이고 사실은 아무 맛도 없는 식사만 해왔다. 그러다 입에 넣은 영양 만점의 기름기 많고 맛있는 음식은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였다.” 꾸러미 안에는 음식 외에도 아쉽기 그지 없던 옷가지가 있었습니다. 미국인들이 모두 쓰고도 남는 많은 양이었습니다. 그들은 여분의 음식과 옷가지를 미국인보다 숫자가 훨씬 많았던 다른 국적의 수감자들에게 관대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6
개월 후, 음식은 모두 사라졌고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겨울이 찾아왔고, 수용소 내의 사기는 완전 바닥이었습니다. 성탄절이 지나고 며칠 후, 갑자기 무슨 신기루처럼 수용소 정문 앞에 적십자 꾸러미를 실은 당나귀 행렬이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이었습니다. 일본군 수용소장은 꾸러미 개수를 모두 1,550개로 파악한 후, 1450명의 포로들에게 한 꾸러미씩 분배하고, 200명의 미국인들에게 반꾸러미씩 더 줄 수 있겠다고 계산했습니다. 기쁨과 흥분이 수용소 내에 가득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포로들은 꾸러미를 분배할 수 없다는 공고를 읽고 경악했습니다. 미국인 몇 사람이 수용소 측의 처분에 항의해 미국 적십자에서 보낸 선물이니 자신들만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주지 말고 미국인 포로 한 명당 7개 반씩의 꾸러미를 달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진저리가 난 수용소장은 본부에 판단을 요청했고, 10일 동안 길키와 다른 미국인들은 다른 국적 포로들의 적개심과 증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길키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들 같은 이야기만 했다. 서로가 미국인, 영국인, 백인, 흑인, 유대인, 인도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지내던 공동체가 갑자기 적대적인 민족 집단들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다. 놀라운 성탄절 선물이 남긴 것은 역설적이게도 땅 위의 평화와 정반대되는 상황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소중한 꾸러미가 수용소 한가운데 가만히 놓여있는 동안 인간들의 갈등과 악의의 돌풍이 거칠게 불어 닥쳤다.

이처럼 탐욕은 공동체를 갈라놓고 싸움을 일으키고 불목하게 만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
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공동체를 와해시킬 수 있는 탐욕이 내 안에 있지는 않은지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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