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간 금요일(마르3,13-19)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산에 오르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산에 오르신 예수님
반영억라파엘신부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마음에 두셨던 사람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 가운데서 열 둘을 뽑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산이란 하느님이 계시는 곳, 하느님의 뜻이 밝혀지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산에 오른다는 것은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으러 간다고 말할 수 있으며 오늘 우리에게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15,16) 는 말씀대로 당신께서 원하시는 사람을 불렀습니다. 산에 오르셔서 부르셨다는 것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대로 처신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뽑으신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선발했습니다. 그런데 부름 받은 사람의 모습을 보면 특별히 잘난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나운 사람이 섞여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뽑으셨는데 가리옷 사람 유다가 거기 있었고, 남을 등쳐먹는다는 공적인 죄인 세리 마태오, 열혈당원 시몬, 천둥의 아들이라 불리는 야고보, 성질 급한 요한, 다혈질 적인 베드로 등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의 속을 아셨을까요? 아니면 모르셨을까요? 알았다면 저 같으면 아마도 그런 사람은 제쳐 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품고 가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습니다. “함께 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어떤 생활을 해 왔든지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세리 마태오와 열혈당원시몬의 관계는 적대관계입니다. 그러나 부름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새 생활을 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함께 지냈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적인 의미를 말하지 않습니다. 함께하면서 주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사람이 된 것을 기뻐합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은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고 오늘을 사랑으로 살라’고 하였습니다.
“유다’라는 말은 “찬미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뜻을 가진 유다가 왜 주님을 찬미하지 못하고 배반자가 되었을까? 그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몸은 같이 있어도 마음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몸과 마음이 그분과 함께 있지 않으면 유다처럼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있지 않고 어떻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지내야 듣고 보고 체험한 바를 전할 수 있습니다. 사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누리는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은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주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선포하는 바를 살면 그 안에 능력이 주어집니다. 저희는 왜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제자들이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마르9,28-29).고 말씀하셨고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8,33).하며 꾸짖으셨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사탄을 쫓아낸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접고 하느님의 능력을 사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조선 후기 광해군 시대에 광대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얼어붙은 겨울 한강, 양화진 앞 강 얼음판에서 광대들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변에는 불을 피워 놓고 광대들의 놀이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몇 사람의 광대가 춤을 추고 있는데 얼음판이 깨졌습니다. 그 바람에 한 광대의 부인이 그만 강물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부인의 남편인 광대는 자기 부인을 구하려고 허둥지둥하며, 울고불고 야단이 났습니다.
그러나 강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것이 다 광대놀이인 줄 알고 웃어 대기만 했습니다.
광대가 안절부절못할수록 구경꾼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더욱 웃어 댔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 신자가 되었다는 것을 되짚어 생각해 봅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보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면 이렇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원수를 사랑하여라.” 이렇게 사는 것은 하나같이 손해 보는 삶이며 바보같이 보이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려고 열두 사도를 뽑으십니다.
이제 사도들은 세상 속에서 바보 같은 삶을 살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바보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세상을 밝게 하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세상을 즐겁고 재미나게 합니다. 세상의 심장에 사랑의 불을 지피는 것, 이것이 부름 받은 우리의 소명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