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마르코 7장 24-30절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때에 24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29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마르 7,24-30)
묵상
시리아 페니키아 지방은 그 옛날에는 가나안 지방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리아 페니키아인들을 적대시하며 이교도들인 그들을 개라고 부를 정도로 멸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의 여인한테서 그의 딸에게 든 마귀를 쫓아내 달라는 청을 받으십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이 어떠한지 알아보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식사가 끝나면 빵 부스러기로 손을 비벼 씻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때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는 식탁 아래에 있던 강아지 차지가 되었습니다. 여인은 이 점을 들어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예수님께 간절히 청합니다. 이교도 여인의 믿음과 겸손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간청을 들어주십니다.
믿음은 그 사람이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그를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 믿음으로 굳세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주는 상처와 모욕에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의 아픈 말씀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예수님에 대한 굳은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확고한 사람은 이 세상 것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삶의 위로와 살아갈 힘을 이 세상에서 받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받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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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
<더 큰 성장을 위하여>
제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이교도이자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의 어머니라고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딸 하나 있는 것이 더러운 영, 곧 마귀에 들렸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붙임성 있는 딸이 어느 순간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착하던 딸이었는데 입에 담지 못할 불경스런 욕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키면 스스로를 통제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딸은 비명을 질러댔고 어떤 때는 머리를 아무데나 짓찢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정신이 돌아오면 온 몸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이렇게 더러운 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온 집안 전체를 휘젓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그 집안을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약이 무효였고 정말이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차라리 내가 대신 더러운 영에 들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 어린 것이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이 자기한테 왔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어머니에게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전해졌습니다. 어머니는 앞뒤 따지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정말이지 더 이상 간절할 수 없는 마음으로 딸의 치유를 청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어머니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보여준 예수님의 태도는 꽤나 의아합니다. 청하지도 않았는데도 알아서 척척 치유해주시던 예수님이셨습니다. 때로 이방인, 유다인 가리지 않고 즉석에서 순식간에 소원을 들어주시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르십니다. 그러면서 여인에게 던지는 말이 꽤나 굴욕적입니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순간 제가 그 여인이었다면 정말 빈정 상했을 것입니다. 아니, 이거 너무한 거 아냐? 사랑과 친절, 자비와 온유의 예수님이라면서 어떻게 그런 모욕적인 말씀을 하실 수 있지? 그럼 내가 강아지보다 못한 존재란 말인가? 그래 우리 딸 상태가 정말 위중하지만 이런 수모까지 받아가면서...난 못해! 아마 저같았으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다릅니다. 마지막 배수진을 쳤던지 단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도에 지나치는 굴욕적인 발언에도 눈 하나 꿈적하지 않고 또 한 번 크게 자신을 낮춥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여인의 딸을 향한 지극한 사랑, 겸손한 자세,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결국 기적을 불러오게 됩니다.
가끔씩 사람을 키우는 큰 스승님들의 제자 교육방식을 눈여겨봅니다. 때로 칭찬도 필요합니다. 당근과 격려도 필요합니다.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위로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때로 더 큰 성장, 더 큰 도약을 위해, 더 큰 완성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보라는 차원에서의 자극, 채찍질도 필요한 것입니다. 더 큰 사람이 되라, 스승인 나를 넘어서라는 의미에서 혹독한 과정도 의도적으로 거치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마음이 아니셨을까요? 여인에게 더 큰 믿음을 주시기 위해 자극을 주신 것입니다. 더 크게 한걸음 나아가라고 살짝 튕긴 것입니다.
딸의 치유는 사실 그녀가 얻은 것 가운데 작은 선물이었습니다. 더 큰 선물, 더 큰 깨달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 이 세상에서의 일회적인 치유와 회복뿐이 아니라 영원한 치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 하느님임을 믿게 된 것입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인의 내면 안에서는 큰 도약과 성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치유자를 넘어 영혼의 치유자란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주인임을 넘어 또 다른 세상의 주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철저한 믿음의 소유자
반영억라파엘신부
‘가톨릭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시너지 리더십’이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사 진형기교수는 “신자는 신부의 손님이다. 그리고 신부는 신자를 다스릴 수 없다. 다스리려 하면 실패한다.” 라고 말씀하시며 신자들에게 대접 받고 사는 성직자의 현실을 지적하여 주셨습니다.
팀웍을 중요시한 리더, 현실을 통찰하고 비전을 세우신 리더, 관계를 중시한 리더, 관용과 용서로 실패를 재기의 기회로 삼도록 격려하는 리더, 모든 사람을 소속감을 가지게 하는 리더,
고난을 극복하면서 자신을 성숙시키는 리더, 사람들의 경제 생활을 보살피신 리더, 소외된 자들을 정성껏 끝까지 돌보신 리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행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열매가 맺어지도록 하는 리더’로 소개하셨습니다. 그 중에 몇을 닮았는가 생각하니 부끄러움만 큽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르7,27)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르7,28) 하고 응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결국 마귀는 떠나갔습니다.
이교도 여인은 어떻게 보면 강아지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으려는 간절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놀라운 믿음을 보시고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마침내 여인의 딸에게서 더러운 영이 떠나갔습니다. 믿음은 바로 하느님께서 나를 외면하고 감추어 계신 분처럼 보일 때, 더 큰 신뢰로 자신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5,6)
어쩌면 좋은 일보다 어려운 일이 더 많은 듯합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난관들 안에서 주님께서는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함께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앞에 있는 ‘험한 산을 치워주지는 않으시지만 그 산을 넘을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주님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