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완성 (마태 5,17-19)

2012. 3. 14. 오전 10:01:15

글자

2012년 3월 14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마태 5,17-19)

  

 

말씀의 초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고 실천해야 할 규정과 법규들을 가르쳐 주며,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후손들에게도 알려 주도록 명령한다. 하느님께서 주신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는 것이 이스라엘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들을 완성하시러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이라는 새 법으로 율법과 예언서들을 완성시키신다(복음).

오늘의 묵상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맨발 가르멜 수도회의 공동 설립자로서 관상 수도회의 기둥 가운데에 한 사람입니다. 그는 가르멜 수도회를 엄격하게 개혁하였으며 철저하게 수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투옥과 오해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를 적대하는 사람들은 거짓과 악의적인 고발로 그를 수도회에서 내쫓으려고까지 하였습니다. 말년에 그는 감옥보다도 못한 독방에서 홀로 지내면서 참기 어려운 학대와 모욕에 시달렸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건강은 점점 나빠졌고 결국 그는 육신의 고통과 형제들의 무관심 속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심지어 장상들은 아무도 그에게 그들 수도회의 설립자라는 명예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자신이 겪는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길이라고 믿고, 어떤 모욕과 고통도 받아들였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그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혹독한 고독과 고통 속에서도 자신은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의 옷을 입히고 사랑의 신발을 신기도록 할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받은 고통과 모욕을 증오와 복수 대신에 사랑으로 갚겠다는 뜻입니다. 그는 끝까지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세상의 지혜를 이긴다고 믿었습니다.
선과 악, 진실과 거짓, 겸손과 오만 사이에는 중간이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 편에 서지 않으면 악의 세력에 지배당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하느님의 편에 서 계셨기에 거짓과 악을 이기실 수 있었습니다.

 

 법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몸은 움직여도 마음은 따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동과 감격이 있어야 몸과 마음도 함께하는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규칙과 법규가 많은 조직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자율과 투명성이 앞서야 살아 움직이는조직이 됩니다.
율법의 근본은 사랑입니다. 율법은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님을 천명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율법에 매달리는 행위를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매달리면 폐쇄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찌 율법뿐일는지요? 무엇이든 거기에 목을 매고살아가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하느님을 위한 계율이고, 사람을 위한 계명입니다. 이것을 망각했기에 엉뚱한 방향으로 갔습니다. 유다인 역시 몰랐기에 율법을 글자 그대로만지키려 했습니다. 숲을 못 보고 나무만 본 셈입니다. 어떤 법이든 사람을 위해존재해야 합니다. 사람을 법에 옭아맨다면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조직이든 단체든 마찬가지입니다. 목적은 언제나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려고 단체에 가입했는데, 그 안에서 상처를 받는다면곤란한 일입니다. 더구나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주고 있다면 바리사이의 조직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십니다. 거짓 율법참된 율법을 구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거짓 율법은 인간이 만든 것을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처럼 꾸며 놓은 것입니다. 당연히 사람을 옭아매고 못살게 굽니다.
그렇지만 참된 율법은 해방과 자유를 줍니다. 기쁨과 편안함을 제공합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사랑의 계명이라 하셨습니다.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합니다. 소극적인 율법 준수를 적극적인 실천으로 바꾸라는 것이 말씀의 의도입니다. 하지 말라는 율법을 하라는 계명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일상사에도
하지 말라는 지시가 너무 많습니다. 그 많은 금지 사항이 있음에도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다가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1서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천사의 언어를 말하고 예언의 능력을 지니며 재산의 전부를 나누어 준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장 참조).
그러니 사랑을 가슴에 담아야 합니다.
하지 않는 사랑이 아니라 하는 사랑입니다. 자녀들에게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하라는 말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의 사랑이 아이들에게 쉽게 전달됩니다. 사랑을 받아들이면 아이들은 금방 환하게 바뀝니다.

 


유시찬 신부와 함께하는 수요묵상

 오늘 복음은 확실하게 묵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의 깊은 의미를 올바르게 제대로 알아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묵상은 대충 어느 정도 생각을 하면서 기도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약간의 위안 정도는 받을 수 있겠지만, 영적 위안을 얻는 수준까지 이르고자 한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알아듣고 있던 것보다 한 뼘 더 깊이 파고들어 알아듣는 게 없다면 영적 충만을 기대하기 어려우니까요.

예수님은 안식일 규정을 어떻게 준수하느냐를 놓고 논쟁을 곧잘 벌이시고, 적어도 외형상으론 그 규정을 어기곤 하셨습니다. 이러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예수님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모두 폐지하려고 오신 줄로 오해되기 쉬웠습니다. 이 점에 대해 예수님은 경고하고 계시며, 당신의 말씀과 행동을 제대로 알아듣도록 촉구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어떻게 알아듣고 있는지 보면, 바로 그 사람의 존재 깊이와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초등학생이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대학생이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인생의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이 이해하는 것은 그 깊이와 넓이와 농도에 있어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도 우리 각자는 자신의 존재 수준만큼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해의 폭과 깊이에 있어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 초등학생 차원의 이해는 틀렸고 대학생 차원의 것은 맞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는 예수님에 대한 현재의 이해 수준을 바탕으로 조금씩 더 나아가고 깊여 나가야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느님 나라의 가장 뚜렷한 징표는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마태오 5,17-19
 스스로 지키고 가르쳐야


시골 본당 신부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성당으로 가고 있는데 앞에 트럭이 길을 막고있었습니다. 왕복 1차선 길에서 얼마나 천천히 가던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추월해서는 안 되는 곳이지만 속도를 내어 추월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경찰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면허증을 주면서 죄송합니다.하였더니 그분이 신부님이시네요! 바쁘신가 보죠? 하였습니다. 속이 상해서 제가 잘못하였으니 딱지나 끊으시지요! 말했더니 그냥 가십시오. 다음부터는 천천히 다니십시오. 하며 친절하게 보내주었습니다.

다음날이었습니다. 지역 관할 경찰간부 소양교육에 제가 강사로 초빙된 날입니다. 경찰서장을 비롯하여 70여명이 모여있었습니다. 저는 전날의 일을 서두로 꺼냈습니다. 제가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냥 보내주셔서 부끄러움이 더 컸습니다. 정말 좋은 말을 하기는 쉽지만 말 한대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잘못을 범하거든 앞으로는 꼭 벌점을 주십시오! 한바탕 웃고 나서야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르치는 대로 행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근본 정신을 사랑으로 요약하셨습니다. 율법의 완성은 계명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계명준수 만으로는 율법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도 법이니까 지킨다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안전과 공공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나의 생명을 지키는 차원에서 지킨다면 그것은 큰 사랑의 행위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만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챙기는 모범을 보여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5,1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과연 언행일치의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사는가를 점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결정한 것은 미루지 말고 그분의 뜻대로 실천하시고 가장 사소한 것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에페6,6) 여러분은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2) 그리하여 율법을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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