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 마태오 1,16.18 -21.24ㄱ
요셉 성인은 유다 지파로 다윗 가문에 속했다. 그는 마리아와 약혼하였는데, 마리아께서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시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몰랐던 요셉은 고뇌하지만 천사의 인도로 성가정의 수호자가 되었다. 요셉 성인에 대한 공경은 동방 교회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1870년 비오 9세 교황은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고, 비오 12세 교황은 5월 1일을 ‘노동자들의 수호자 성 요셉 축일’로 제정하였다. 요셉 성인은 성모 마리아와 더불어 한국 교회의 수호성인이다.
☆☆☆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마태오 1,16.18-21.24ㄱ)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나탄 예언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축복의 말씀을 내리신다. 나탄은 주님께서 다윗의 후손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제1독서). 아브라함은 어떤 처지에서도 하느님을 굳게 믿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우리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은 믿음이다(제2독서).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이 드러난다. 의로운 요셉은 마리아와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러나 요셉은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듣고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한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예수님을 기르신 요셉 성인의 축일입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혼인과 가난한 가정, 말 못하며 감당해야 했던 요셉 성인의 삶의 무게를 헤아려 봅니다. 오늘의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글 “아버지는 누구인가”를 실어 봅니다.
아버지는 기분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학교 성적이 자기가 기대한 만큼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도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 있는 사람이다./ ……./ 아버지가 아침마다 서둘러 나가는 곳은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이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피로와, 끝없는 업무와, 스트레스이다./ ……./ 아버지는 자식을 결혼시킬 때 속으로는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뒤에,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 뒷동산의 큰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다.
요즘 많은 아버지가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자녀들 교육비는 점점 늘어만 가는데 가정의 경제 사정은 전보다 더 어려워졌습니다. 직장에서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젊은 사람들이 자꾸 뒤쫓아 옵니다. 퇴직 후의 노후 생활도 걱정거리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들의 시름은 늘어가고 주름은 깊어만 갑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아버지는 뒷동산 큰 바위 같은 이름입니다. 지치고 힘들게 살아가는 아버지들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힘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으면 합니다.
☆☆☆
요셉 성인의 일생에는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약혼 시절 그는 약혼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놀람과 번민 속에서 조용히 헤어지리라 다짐합니다. 그는 착한 남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고뇌는 은총을 받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마음을 정한 그날 밤, 천사는 ‘하늘 나라의 비밀’을 알려 줍니다. 이후 요셉은 성가정의 수호자가 됩니다. 자신의 역할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성모님과 함께,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 박사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 자리에 어떤 모습으로 계셨을까요? 아버지이면서 아버지가 아닌 모습으로 계셨을 것입니다. 이후 성가정은 헤로데의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나자렛으로 돌아와 삽니다.
요셉 성인은 성가정에 반드시 계셔야 할 분입니다. 그런데도 늘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꼭 필요한 분이었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겸손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모든 교회는 그분을 수호자로 모시고 있습니다. 성가정을 수호하였듯이 우리 교회도 보호해 주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에는 요셉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미 운명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분의 죽음에는 분명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함께하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에게 주어진 당연한 위로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살다 간 분이 요셉 성인입니다.
☆☆☆
요셉 성인은 착하고 순박한 사람입니다. 마리아의 잉태 사실을 알았을 때 가만히 헤어지려 했습니다. 약혼녀가 자신도 모르는 아기를 가졌다면 당황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조용한 해결을 선택합니다. 그러한 결단이 있기까지 얼마나 고뇌했을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늘 고뇌와 함께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고뇌는 은총이었습니다. 아픔을 통해 성숙해지라는 하느님의 배려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의 ‘임마누엘’은 자신을 비우고 상처받고 포기한 뒤에야 깨달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또 다른 모습의 요셉입니다. 고뇌 없이 아버지가 되고 남편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라도 고통을 두려워하면 의심이 생기고, 편한 것만 추구하면 이기적으로 바뀝니다.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옹졸한 남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훌륭한 남자는 자신을 감출 줄 아는 남자입니다. 그러면서도 있어야 할 자리에는 꼭 있는 남자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살아가는 남자입니다. 요셉 성인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봅니다.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 마태오 1,16.18-21.24ㄱ<또는 루카 2,41-51ㄱ>
당신의 마음을 닮고
반영억라파엘신부
성물방에 갔더니 한 신자분이 ‘요셉성인 상’을 찾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안고 계신 것이 아니라 ‘요셉’홀로 계신 성상을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님과 함께 계시지 않는 요셉은 의미가 없습니다.”하고 말씀 드렸더니 “요셉성인은 한가하실 것 같습니다. 성모님이나 예수님께는 많은 사람이 매달리지만 요셉성인께는 관심이 덜한 것 같아서 저는 요셉성인께 전구를 청하려고 합니다.”하셨습니다.
저도 요셉성인을 잊고 살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예수님을 생각하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신명기22장을 보면 혼인과 처녀성과 간음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아내를 맞이하여 동침한 다음에“그 젊은 여자의 처녀성이 증명되지 않으면, 그 여자를 제 아버지의 집 대문으로 끌어내어, 그 성읍의 남자들이 그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 그 여자가 아버지의 집에서 음행을 하여 이스라엘에서 추잡한 짓을 하였기 때문이다.”(신명22,20-2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법대로 사는 요셉이 이러한 규정을 알진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마태1,19)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결혼을 준비하며 꿈에 부풀었을 텐데 너무도 황당한 사실에 접하게 된 것이니 실망과 좌절감 속에서 마리아에게 망신을 주고 서운함을 되갚아 주어도 시원찮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드러낼 생각을 갖지 않았다니 그러한 마음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돌에 맞아 죽을 허물까지도 덮어줄 수 있었던 것은 사랑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를 사랑했기에 사랑하는 이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입니다. 사실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요, 능력입니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화를 다스리는 방법은 결국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1,20)했을 때 곧 자기의 생각을 접고 천사가 일러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군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하느님의 뜻을 따른 겁니다. 깊은 신앙은 어려울 때 드러난다고 했는데 바로 이 순간이 그의 믿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화를 다스리는 또 하나의 방법은 철저한 믿음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요셉 성인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마음 상하고 서운함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우리들의 모범이십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며 기쁘고 진실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요셉이 그런 분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코 그것에 대해 알려고 하거나 해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받아들이고 살았을 뿐입니다.
독수리는 파리를 잡지 않는답니다. 큰 동물은 작은 동물과 싸우지 않습니다.‘큰 나무는 쓰러져도 땅에 닿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깊은 물은 소리가 없고 큰 인물은 자신을 내세우지도 칭찬하지도 않습니다. 바로 요셉이 그랬습니다.
"성 요셉은 고통을 수 없이 겪은 분이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수호자이십니다.
시련 중에 그분의 도움을 청하십시오.청하기만 하면 꼭 들어주실 것입니다."
(성 피에르 줄리앙 에미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