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5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싸우면 쓰러지게 마련이고
한 집안도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는 법이다.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는데
만일 사탄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가 어떻게 유지 되겠느냐?”
(루가 11,14-23)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께 불충실한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한다. 이스라엘이 범한 죄는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느님을 멀리한 것이다. 하느님에게서 도망치려는 완고한 마음이 죄인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을 반대하던 자들은 예수님께서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서 기적을 행하신다고 비난한다. 마음이 뒤틀리고 눈에 색안경을 끼고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이게 마련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수련』에 나오는 “두 개의 깃발” 묵상을 떠올립니다. 이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깃발과 인간 본성의 원수인 사탄 루치펠의 깃발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이 당신 깃발 아래에 함께하기를 바라시어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이를 거슬러 루치펠은 자기의 깃발 아래로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루치펠은 사람들을 사로잡아서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려고 합니다. 루치펠은 사람들을 먼저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유인하고, 그들을 세상 것에 대한 허영심으로, 그다음에는 한껏 부푼 교만으로 이끌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가난의 참된 가치를 깨닫게 하시고, 세상의 명예와 반대되는 수치와 업신여김을 바라게 하시고, 교만에 반대되는 겸손을 선택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사람들을 당신의 깃발 아래로 모으십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을 식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악한 영들은 그럴듯한 이유와 교묘한 속임수로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시작과 끝이 모두 좋고 모든 일에서 선을 지향하면 이는 선한 영의 표지입니다. 그러나 결과가 악이거나 평화와 안정을 빼앗아 영혼을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하면 이는 악한 영의 표지입니다. 영적 식별 능력을 키워 가는 것은 신앙을 성숙하게 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못하는 어떤 이를 치유하십니다. 그에게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것입니다. ‘은혜와 감사’로 받아들여야 할 장면입니다. 그런데 몇 사람이 엉뚱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한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있는 ‘별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의 표징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몰랐기에 그런 소리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도 그들의 불손을 이해하며 말씀하십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분열을 조장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무엇이든 좋게 생각하면 ‘좋은 판단’을 하게 됩니다. 좋지 않은 생각을 ‘먼저’ 하기에 이상한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힘센 자가 자기 집을 지키더라도 ‘더 힘센’ 자가 덤벼들면 당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보다 더 힘센 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니 늘 선한 생각이 ‘삶을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악한 생각이 들면 ‘곧바로’ 선한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습관은 습관을 통해서만 고쳐집니다.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면, 나쁜 습관은 ‘저절로’ 물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탄을 몰아내십니다. 그분의 권능을 보고 사람들은 놀랍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사탄의 힘을 빌려 그들을 쫓아낸다고 소문냅니다. 그들이 보기에도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분이었습니다.
민중은 기적을 믿고 따르는데 지도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일는지요? 백성들을 지도하고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남의 위에 서려는 사람에게는 영적 활동이 제대로 보일 리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탄을 쫓아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영적 능력이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 일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당신 힘을 잠시라도 허용해 준 이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본모습을 몰랐기에 지도자들은 곡해하였습니다. 사탄의 사주를 받는 인물로 착각하였습니다. 평소 예수님을 의심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의 생??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탄에 대한 평소의 생각은 무엇인지요? 두려움과 막연한 무서움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어떤 세력도 무너뜨릴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과 함께라면 어떤 악의 힘도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교훈입니다.
어중간은 없다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어느 신부님께서 마음을 고쳐먹은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주교님께서 하시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름대로 혼자서 열심히 지냈답니다. 주교님의 사목방침에 구애 받지 않고 이런저런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이 독불장군식으로 지내다가 성경말씀이 가슴깊이 다가왔는데 루카복음 7장32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신부님은 어느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에 차있는 아이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마음을 바꾸었으며 비로소 자유와 해방을 느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앞에서 어중간은 없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면 세상에서 안전한 처세술이 될 수 있지만 주님의 자녀로서 자세는 아닙니다. 또한 주님은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버리겠다.”(묵시4,15-16) 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마귀를 선택해야 하는가? 아니면 주님을 선택해야 하는가? 너무도 당연한 답이지만 삶의 모습은 여전히 이해타산에 휘둘릴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 편에 서는, 그리고 모아들이는 노력을 하는 하루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루카11,17) 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가정도, 공동체도 어떤 모임도 한마음 한 뜻이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모아야 합니다. 나쁜 습관이 있다면 고쳐야 하고 내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열린 마음의 눈을 떠야 하고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있다면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의 넉넉함과 포용할 수 있는 큰 품을 키워야 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위로가 되고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실천이 없다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함으로써 열매를 맺고 주님의 편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침묵을 지켜 보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남들을 비난한다. 그런 사람은 끊임없이 지껄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을 하지만, 침묵을 지키는 셈이 된다. 필요없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에게 가르침을 주면서 자신은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흡사 하나의 우물과 같다. 다른 모든이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고 그들을 깨끗이 씻어 주면서도 자기 자신을 깨끗이 씻을 순 없기 때문이다. 온갖 땟국과 불순함이 그 안에 남아있기 마련이다."(파스톨 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