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찬 성목요일 12.04.05(요한 13,1-15) 주님의 만찬미사

2012. 4. 5. 오전 5:43:41

글자

2012년 4 5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주님의 만찬미사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요한 13,1-15)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시기 전날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를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신다. 그날 밤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과 맏배를 칠 때 문설주에 발린 양이나 염소의 피가 구원의 표지가 된다. 그리고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서둘러 먹도록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역사적인 날을 대대로 기억하며 파스카 축제를 지낸다(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에 주님의 최후 만찬을 기억하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거룩한 성찬을 거행하고 주님의 죽음을 전하라고 가르친다(2독서).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다. 그리고 성체성사의 참된 의미를 몸소 보여 주시면서 제자들에게도 종이 되어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신다(복음).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최후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성체성사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 주십니다. 당시 주인이 외출하고 돌아올 때 종이 주인에게 존경과 사랑의 표시로 발을 씻어 주듯이,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씩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사람들의 발을 씻어 주는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셨을 것입니다. 이제 만찬이 끝나고 예수님께서 수난기에 접어들면 제자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당신을 떠나고, 유다는 당신을 팔아넘기고, 으뜸 사도로 세운 베드로도 철저하게 당신을 배반할 것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발을 씻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당신의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떠나시기 전에 미리 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신 십자가의 죽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십자가를 지고 스스로 죽는다는 것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내가 발을 씻어 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을 마음속에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오늘 복음의 주님처럼 그 사람의 발을 상상으로라도 씻어 주십시오. 사랑과 용서의 마음이 우러나올 것입니다. 이것이 성체성사의 정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말없이 씻어 주십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십니다. 제자들은 어쩔 줄 모릅니다. 어정쩡하게 발을 내맡기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한사코 거절하다가 무안을 당합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느낌으로 압니다. 스승님께서 베푸시는 마지막 애정임을 직감합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꾸중이 아니라 감동입니다. 제자들은 훗날 예수님의 모습을 실천합니다. 그들은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발을 씻어 주시는 스승님께 저희도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며 다짐했던 것입니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인 오늘 저녁 미사 때 사제는 성경의 이 모습을 재연합니다. 교우들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애정이 빠진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거룩한 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형식이 감동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진심과 애정만이 사람을 움직이고 바꿉니다.
그러므로 말과 행동과 표정에 사랑을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 정신이 됩니다. 아무리 장엄한 전례일지라도 복음 정신이 사라지면 은총이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은총이 없는 곳에는 감동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닮는 일이 형식에 치우치고 있다면 반성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 요한 13,1-15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께서 우리도 ‘끝까지 사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신 다음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발을 씻겨주는 일은 그 당시 하인들이나 하던 일인데 스스로 종이 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3,16)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는데 바로 그 사랑을 주셨습니다.

발은 가장 더러운 부분입니다. 사랑이 큰 만큼 그곳을 닦아 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더러운 곳을 깨끗이 씻어주는 구체적 행위입니다. 말로나 혀가 아니라 손발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은 자의 모습으로 허리를 굽혀 섬기고 봉사하는 아름다운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물로 씻어 주심으로 정화와 생명을 일깨워주셨습니다. 더러운 발뿐만이 아니라 오염된 우리의 마음과 영, 추악한 죄를 씻어 주심으로 멸망하지 않고 생명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13,15)하시며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겸손과 사랑,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사랑은 사랑하는 이들끼리 서로 닮아가서 상대방의 모습으로 바뀌기까지는 결코 완전한 것일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의 모습으로 바뀐 나의 모습을 살펴 부족함이 있다면 속히 채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성 목요일에 애틋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사랑의 절정인 성체성사를 통해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내 주셨음을 기뻐합니다. 주님께서는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들과 양떼를 남겨두고 떠나기에 앞서 가장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미사 안에서 그 선물을 받고 있습니다. 성체는 주님의 사랑자체입니다. 그 사랑을 먹는 사람은 영적으로 풍요케 되고 또하나의 사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체를 모실 때마다 주님의 사랑이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성체성사와 더불어 성품성사를 기억합니다. 주님의 온갖 은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성품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사제는 주님의 도구입니다. 당신의 살가운 사랑의 전달을 위해 사제를 선택하셨습니다.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성격의 소유자를 뽑아 당신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연약한 인간을 도구삼아 일하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능력이 더 간절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제는 영적인 아버지라고 합니다. 과연 여러분은 사제를 영적인 아버지로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생각합니다. 권위만 내세우고, 무작정 따라오라는 식의 독선적인 아버지, 자기중심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열린 아버지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예수님처럼 허리를 굽혀 자녀의 발을 씻겨주는 겸손의 아버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배반자까지도 품에 안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가슴이 넓은 아버지가 되기를 다짐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모두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입었으면 더 바람이 없겠습니다.

요한복음13장 3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만큼 주님의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스승이 사랑의 길을 걸으셨으니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더 많이 사랑하는데 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사랑에 바탕을 두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있을 수 없다.”는 가르침을 확인하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마음을 다해!

 

주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양승국신부-

 

<그냥, 좋아서!>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야외로 나갔다가 눈요기를 제법 했습니다. 산들바람에도 온 몸을 흩날리며 떨어져 내리는 꽃잎들을 바라보니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생각이 났습니다.

지난 세월 제가 만나고 헤어졌던 수많은 아이들 얼굴들이 꽃잎같이 화사한 얼굴, 어여쁜 얼굴로 하나 하나 다가왔습니다.

저는 살레시오 회원으로 운이 좋았던지 서품 후 언제나 아이들 틈에서 지냈습니다. 많은 아이들을 만났었고, 함께 부대끼며, 미워도 하고, 좋아도 하고,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거리기도 하고...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세월과 더불어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일입니다. 갈수록 가슴 뛰는 일, 흥미진진한 일, 특별한 일은 점점 줄어들고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서글퍼지지요. 좋은 소식, "이거다!" 하는 소식이 줄어드는 대신 부고 소식은 얼마나 자주 듣게 되는지 모릅니다.

"이제 나도 서서히 나이를 들어가는구나. 왜 이리 세월은 속절없이 빠르기만 한건가?" 하는 마음에 서운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이 먹어가면서 좋은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혈기왕성할 때는 아이들이 어찌 그리 밉던지? 싸우기도 엄청 많이 싸웠는데,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아이들이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밉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불쌍한 녀석들이 부모를 잘못 만나서, 시절을 잘못타고 난 이유로 거친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짠해보여서 측은한 마음만 앞섭니다. 그저 하나라도 못해줘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한 명 한 명 개별적으로 만나지 못해 미안할 따름입니다.

한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왜 기분 나쁘게 쳐다봐요?" 하고 빽 소리를 지릅니다. "그냥, 좋아서!" 라고 대답하지요.

오늘 성목요일입니다. 성목요일은 저희 사제들에게 아주 각별한 날입니다. 오전에는 각 교구마다 사제들이 함께 모여 성유축성미사를 거행합니다. 주교님들께서는 근사한 점심도 한 끼 내십니다. 또 저녁 만찬 미사 때는 세족례 예식을 통해서 저희 사제들 삶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자각합니다.

세족례 예식은 우리에게 사제직은 다른 무엇에 앞서 봉사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교님은 사제들 앞에 무릎을 꿇을 것, 사제들은 신자들 앞에 허리를 굽힐 것, 저희 같은 살레시안들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아쉬움과 서운함을 접습니다. 그간 당신께서 가장 중요한 직무로 생각하셨던 제자교육을 마무리하십니다. 종강을 하시면서 당신의 가르침을 최종적으로 요약정리하셔서 제자들에게 제시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세족례인것입니다.

결국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 총 정리는 세족례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죄 많고 나약하고 가엾은 인류를 위한 섬김과 봉사, 그것이 메시아로서 사명의 본질이었습니다.

오늘 성목요일 세상의 모든 사제들이, 또한 교회나 사회 지도자들이 자신의 직책이 오로지 백성들, 특히 가난한 백성들을 위한 섬김과 봉사, 헌신과 자기증여를 위한 직책임을 다시 한번 크게 자각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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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문호영 신부-

오늘은 그리스도의 신비 중에서 그 정점인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3일의 첫날인 성목요일입니다. 오늘 밤에 우리는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거행하셨던 최후만찬을 기념하게 됩니다.

참으로 사랑이 지극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2천년 전 오늘, 당신의 그 무한하신 사랑을 영원히 보여주시기 위해 당신의 몸을 사랑의 속죄 제물로 우리에게 내놓으시고, 세상 마칠 때까지 그것을 기념하고 재현하도록 성체성사와 신품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포콜라레 설립자 키아라 루빅은 성체성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땅 위에 오셨다. 그분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성삼위로부터 땅 위 생활의 그 같은 결단을 감행한 후 그의 생활이 지극히 비상했음에도 단지 33년간만 이 땅 위에 머물지 않고, 그의 결정적 사랑의 순간, 곧 희생과 영광, 죽음과 부활의 순간 안에 대대로 남을 수 있으며, 특히 땅 위 곳곳에 현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니, 이는 사랑의 논리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땅 위에 남았다. 그는 거룩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성체를 발명했다. 이는 그의 사랑이 극단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미사성제를 지내고 성체를 받아 모실 때마다 참으로 그 안에 깊이 담겨 있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예수님의 자기 희생, 자기 봉헌, 완전한 그분의 사랑을 보고, 깨치려고 애써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종이나 하는 발 씻어주는 행위를 하심으로써 다시 한번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을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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