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목요일(요한 3,31-36)하늘에서 오신 분

2012. 4. 19. 오전 8:15:18

글자


 

2012년 4 19 부활 제2주간 목요일

 

 
 
 
 
 

하늘에서 오신 분은 모든 사람 위에 계시며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요한 3,31-36)

 

 

 말씀의 초대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자신들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불안해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부활과 성령을 체험한 사도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복음을 선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몸소 하느님께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영원하신 하느님을 증언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복음).
오늘의 묵상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에게 당신을 세상에 알리도록 모든 권한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인간이 아드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아드님을 믿어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드님을 믿지 않고 배척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진노를 사서 영원한 생명에서 배제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믿음과 불신,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결단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 해야 할 결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내 집 문 앞에 서시어 결단의 문을 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신학자 파울 틸리히는 믿음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라면 믿음에 왜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을까? 하느님 사랑의 깊이는 우리 인간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끝을 모르는 사랑의 심연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하느님 사랑의 심연에 완전히 뛰어내리려면 용기, 곧 결단이 필요합니다. ‘지금 여기서’ 내리는 결단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 ☆ ☆

 

위에서 오셨다는 말은 하늘에서 오셨다는 표현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시고자 오신 분이십니다. 요한 복음은 그분을 예수님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늘의 뜻을 따르는 행동입니다. 하늘의 힘을 얻는 행위입니다. 그분께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특별히 어린이들의 모습에서 많이 느껴집니다.
엄마가 장에 가는데, 아이가 칭얼대며 따라왔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습니다. “집에 있으려무나. 시장에서 돌아오면 돼지를 잡아 줄게.” 엄마가 돌아와 보니, 남편이 돼지를 잡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기겁을 하고 말립니다. “아이를 달래려고 그랬을 뿐인데, 정말로 돼지를 잡으면 어떻게 해요?”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할 순 없는 일이오. 속임수를 가르치는 것밖에 더 되겠소? 이 참에 돼지를 잡아 함께 먹읍시다.”
어린이는 어른을 그대로 닮습니다. 어른이 하는 대로합니다. 부모가 희생을 실천하면 아이들도 희생을 실천하게 됩니다. 부모가 동정심이 많으면 아이들도 너그럽습니다. 부모가 밝고 환한데 아이들만 어둡고 칙칙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금방 부모를 따라갑니다.
어린이들 역시 하늘에서 왔습니다. 기쁨과 행복을 만들며 살라고 주님께서 보내 주신 생명입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주님의 뜻입니다.

☆☆☆

요한 복음 3장은 예수님과 니코데모의 대화입니다. 니코데모는 예수님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처럼 빠져 들지는 못합니다. 그의 지식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뛰어난 분으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생??바꾸지 않기에 변신 역시 없습니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은총도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열심인 신자들이 가끔씩 편협한 생각에 휩싸이는 것을 봅니다. ‘우리 믿음은 괜찮지만 너희 믿음은 안 된다.’는 생?都求? 그러기에 ‘우리 종교는 옳지만 너희 종교는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믿음의 깊이는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더해집니다.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는 판단을 뛰어넘을 때 가능해집니다. 믿음에 깊이가 없기에 자신만 옳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면 나만 고통 받는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면 남을 생각할 여력이 없어집니다.
어려운 상대는 피하려 들고 쉬운 상대만 찾게 됩니다. 어린이의 신앙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지요.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고 오늘 복음이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포용하시는 분이시지 거절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며 살고 있을 따름입니다.

                               세상에서 나온 사람은 세상에 속하여 세상 일을 말하고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요한 3,31-36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집회16-15-17)는 말씀이 있습니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결과는 너무도 다르기에 신중한 처신이 요구됩니다. 죽음도, 생명도 지금 여기서 결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 생명이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실 미래의 생명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생명의 완성입니다.

 그러나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에서 오신 분이 모든 것 위에 있으면서 그분이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하느님의 진노가 그들 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자업자득입니다. 목이 마른 사람에게 우물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어도 자기가 마시지 않으면 그림의 떡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땅에서 난 사람은 위에서 오신 분, 아버지의 모든 것을 받고 오신 분, 아버지의 사랑 받는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하느님의 말씀과 권능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믿음 안에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읽고 성체를 모실 때마다 영생을 기뻐하고 또 그 기쁨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좋은 것을 혼자만 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영성체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하면 할수록 나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더 큰 영광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땅에서 난 사람은 하늘의 삶을 갈망하고, 지금으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자신의 영혼 사정을 돌보지 않는다면 영원한 생명 보다는 멸망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선택은 자유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히는 사람은 적다”(마태22,14)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에로 초대받았지만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랑합니다.

 

 

 

성령의 神바람

- 전진 신부-

 

성경에 보면, 죽은 사람을 살리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기적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능으로 지상의보통?의 생명을 되찾았을 뿐입니다. 때가 되면 그들은 다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통한 전인적 차원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 안에 온전히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부활을 통해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루카 20,?38)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내 육신이 지금 여기에 살아 있든, 죽어 없어졌든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기만 하면 모두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는데,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현세의 삶을 집착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을 희망합니다. 죽음 앞에서 절망하고 원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차원에서 내 자신과 삶을 들여다본다면, 그 안에 담긴 하느님 생명의 신비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열심하고 좋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본의 아니게 메마르고 팍팍해질 수 있습니다. 부활 시기를 보내면서 별일 없어 보이는 일상의 삶 자체가 하느님의 은총임을 깨닫고, 우리 마음에 성령의 神바람 불어와 삶에 대한 열정과 생기가 불러일으켜져 주님 안에서 거듭난 부활의 삶을 살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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