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코 16,15-20

2012. 4. 25. 오전 8:31:12

글자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 16,15-20



무엇을 해야 하나요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선생은 많은데 스승이 없고 학생은 많은데 제자가 없다’는 탄식을 듣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초등학교에는 치맛바람이 불고 그래서 ‘스승의 날’ 행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고 사제간의 정이 사라진지 오래 입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던 부모는 사라지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선생님을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폭행을 서슴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고등학교 4학년 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들도 스스로 수강신청을 하지 못하고 부모가 대신하는 현실이라니 그런 말이 나올 만합니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공부 안 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부모가 교수에게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고 하니 부모의 과잉사랑이 자식은 물론 사회를 망치고 맙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회복될 날이 언제일지 안타깝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듣도 보도 못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에서 자유로워질 때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법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바가 옳다고 고집하면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먼저 신뢰해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내 것을 포기하고 스승의 것을 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승께서 제자에게 할 일을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일을 함으로써 제자라는 신분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제자라고 말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제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되 듣는 사람의 반응에 얽매이지 말고 기회가 좋든 그렇지 않든 전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수행함으로 신앙이 더욱 확고해 집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반드시 행동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고백합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힘이기 때문입니다.(로마1,16)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코린1,17)
오늘 우리도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는 삶의 모범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이제는 내가 행해야할 기적>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예수님께서 활발하게 복음 선포 사업에 매진하시던 공생활 시절,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본받아 목숨까지 바쳐가며 말씀을 선포하던 초대교회 시대 당시 한 가지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랄 표징들, 기적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마귀를 쫒아낸다든지, 죽어가던 병자들을 치유시킨다든지, 독을 마셔도 쌩쌩하다든지 하는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전혀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술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국어와 관련된 기적에서 참 부러웠습니다. 수십 년간 죽도록 공부해왔지만 아직도 걸음마 수준인데, 전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술술 딴 나라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기적과 표징의 강도가 그만큼 강렬하다는 반증이겠지요.

     사도행전 28장 3절에 보면 바오로 사도가 탄 배가 난파되어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한 섬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 섬은 이탈리아 반도 아래에 위치한 몰타라는 섬이었습니다. 비가 내리는데다 날씨까지 추워 불을 피우게 되었는데 바오로 사도는 땔감 한 다발을 모아 불속에 넣자, 독사 한 마리가 열기 때문에 튀어나와 바오로의 손에 달라붙습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저 사람은 이제 끝장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바오로 사도는 태연한 표정으로 독사를 손에서 떼어내어 타는 불속으로 떨어트렸습니다. 사람들은 바오로 사도의 몸이 곧 부어오르거나 쓰러져 죽으려니 하고 계속해서 그의 안색을 살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예는 초대교회 시절 부지기수였습니다.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공생활 기간, 초대교회 시대는 ‘기적의 시대’ ‘표징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예수님과 사도들은 기적을 일으키며 하느님의 권능을 만방에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기적의 원동력, 출발점은 어디일까요? 정답은 명확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그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믿음 없는 표징, 확신 없는 기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면 불가능한 것이 사라진다, 우리 인간은 약하지만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니 강건하다는 강한 믿음과 확신이 그 숱한 표징과 기적, 치유의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꼭 단정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표징과 기적은 모든 시대를 통해서 이어져왔습니다.    다만 믿음이 형편없이 약해진 시대, 우리의 시선이 너무나 탁해져서 그러한 기적과 표징들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나약한 믿음, 완고한 불신으로 인해 우리 곁은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기적과 표징들을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대 우리는 사랑의 기적을 펼쳐가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내 작은 선행, 내 작은 헌신, 내 작은 봉헌과 나눔을 통한 사랑의 기적은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행해야 할 기적입니다.

 
 




어느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나이 스물여덟 남자는 어느 사랑하는 여자의 남편이 되었지요. 
나이 스물여섯 여자는 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속에 교회에서 간소한 출발을 하였답니다.
그리고 어느새 3년이란 세월이 흘렀지요.
그때 그들에게 불행이 닥쳤읍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큰 불행이었읍니다.

그들이 살던 자그마한 집에 그만 불이 났답니다.
그 불로 아내는 실명을 하고 말았구요.
모든 것을 잃어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겐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 버린 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두 사람이 만들어갈 수많은 추억들을 더이상 아내가 볼 수 없을 테니...

그후로 남편은 늘 아내의 곁에 있었죠.
아내는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혼자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답니다.
남편은 곁에서 아내를 도와 주었지요.
처음엔 아내가 짜증도 부리고 화도 내었지만
남편은 묵묵히 그 모든것을 받아 주었답니다.

늘 그것이 미안해서...
아내를 그 불속에서 구해내지 못한 것이...
그리고 그 아름다운 눈을 잃게 만든 것이...
많은 시간이 흘러 아내는 남편의 도움 없이도
주위를 돌아다닐 많큼 적응을 하였지요.
그리고 그제서야 남편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죠.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없이 저녁 노을에
한 풍경이 되어도 될 만큼 편안한 나이가 되어 갔답니다.
세월은 두 사람에게 하나 둘씩 주름을 남겨 놓았지요.
아름답던 아내의 얼굴에도 세월의 나이테처럼 작은 무늬들이 생겨나고
남편의 늘 따사롭던 손도 부드럽긴 하지만 많은 주름이 생겨났지요.
남편은 이제 아내의 머리에 난 하얀 머리카락을 보며 놀리곤 했답니다.
이제 겨우 7월인데 당신 머리엔 하얀눈이 내렸군...

 어느 날인가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이제 웬지 마지막으로 이세상을 한번 보고싶어요.
벌써 세상의 빛을 잃은지 수 십년이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당신의 얼굴이 보고 싶군요.
난 아직도 기억 합니다. 
당신의 그맑은 미소를...
그게 내가 본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니까요...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답니다.
아내가 세상을 볼수 있는 마지막 길은
누군가의 눈을 이식 받는것 뿐이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가 않았죠.
아무도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않는 아내에게
각막을 이식해 주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아내는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었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답니다.
하지만 남편은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세월은 이제 그들에게 그만 돌아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 메세지를 받은 사람은 먼저 남편이었지요.
아내는 많이 슬퍼 했답니다.
자신이 세상의 빛을 잃었을때 보다도 더...

그러나 남편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선물을 하나 주고 떠나기로 했지요.
자신의 각막을 아내에게 남겨주는 것이랍니다.
비록 자신의 눈도 이제는 너무나 희미하게만 보이지만
아내에게 세상의 모습이라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었던거지요.

남편은 먼저 하늘로 돌아가고 아내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남편의 각막을 이식 받게 되었죠.
그녀가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늘 곁에 있던 남편의 그림자조차 말이에요.

병원 침대에서 내려와 이제 환하게 밝혀진 거리의 모습을
내려다 보며 도심의 전경을 보면서
아내는 남편의 편지 한통을 받게 되었답니다.
당신에게 훨씬 전에 이 세상의 모습을 찾아줄 수도 있었는데...
아직 우리가 세월의 급류를 타기 전에
당신에게 각막 이식을 할 기회가 있었지.
하지만 난 많이 겁이 났다오.

늘 당신은 내게 말하고 있었지.
나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아직 젊을 때 나의 환한 미소에 대해서 말이오.
하지만 그걸 아오?
우리는 이미 늙어 버렸다는 것을...
또한 난 당신에게 더 이상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오.
당신은 눈을 잃어 버렸지만 그때 난 나의 얼굴을 잃었다오.
이제는 미소조차 지울수 없게 화상으로 흉칙하게 변해버린 나의 모습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오.
그러나 이제 나는 떠나오.
비록 당신에게 나의 미소는 보여주지 못하지만
늘 내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기 바라오.
그리고 내 마지막 선물로 당신이 환하게 변해버린
세상을 마지막으로 보기를 바라오.

 아내는 정말로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을 바라보며
여보... 난 알아요.
당신의 얼굴이 화상에 흉칙하게 변해 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그 화상으로 인해서 예전에 나에게 보여주던
그 미소를 지어줄 수 없다는 것도...
곁에서 잠을 자는 당신의 얼굴을 더듬어 보고 알았지요.
하지만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당신도 내가 당신의 미소를 간직하기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당신이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요.
나는 당신의 마음 이해 하니까 말이에요.

참~ 좋군요!
당신의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이...!

그리고 며칠 뒤
아내도 남편의 그 환하던 미소를 쫓아 남편의 뒤를 따라 하늘로 되돌아 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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