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오 17,14ㄴ-20
인간적인 예수님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예수님께서는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하시며 불평을 털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사람들의 불신의 태도에서 왔습니다. 당신의 구원활동에 대해 배은망덕한 대접을 받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히브5,7). 예수님께서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계시고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심은 우리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우리의 눈높이로 품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신 예수님께 와서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하고 말씀하시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능력은 믿음 안에서 옵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주님의 능력이 살아나고 기적을 가능케 합니다. 사실 베드로는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배를 떠나 물위를 걸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 능력을 주십니다. 아니 나를 통해 주님의 능력을 드러내시길 원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어떠한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주님을 믿고 바라보면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면 고통만 키우게 됩니다. 바오로사도의 말씀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필리피1,29).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마태28,20)을 믿어야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믿음에 믿음을 더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분명히 그 믿음이 헛되지 않음을 믿는 만큼 체험케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음식을 나누시고 앞 못 보는 이의 눈을 침을 발라 뜨게 하셨으며 때로는 병자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고 믿음으로 구하는 곳에는 어디에든 마다 않고 계셨습니다. 성전 정화를 위해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마태21,12)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지셨으면서도 그것을 뽐내지 않으시고 필요한 이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기쁨이 되어 주셨으며 모든 사람의 구원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오신 주님의 품을 기억하며 우리도 이웃을 향한 눈높이를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외아들을 우리에게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단지 내가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주님의 동행을 믿으며 나에게는 엄격하되 이웃에게는 한없이 넉넉하길 소망해 봅니다. 사랑합니다.
8월11일 토요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마태17,14ㄴ-20
“믿음이 있으면 너희가 못할 일은하나도 없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복사판, 클라라>
성녀 클라라의 삶은 당시 보통 사람들 시선으로 바라볼 때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젊은 시절 클라라는 당시 숱한 청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특급 신부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고정되었습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는 스승 예수님의 가난의 모범을 정신이나 이상, 영성으로만 추종한 것이 아니라, 100% 있는 그대로, 실제로, 구체적으로, 온몸으로 실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회심이후 한 평생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기쁘게 했습니다. 완벽한 가난의 실천을 가로막는 무수한 장벽들과의 피나는 투쟁이 그의 일생이었습니다.
클라라의 삶 역시 사부 프란치스코의 삶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복사판’이었습니다. 클라라의 삶은 마치 프란치스코의 삶의 거울과도 같은 삶이었습니다.
두 분이 그토록 가난을 사랑했고, 그 가난을 온 몸으로 살았고, 그 가난에 목숨을 건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가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난은 모든 덕의 배경이더군요.
클라라가 한 평생 하느님께로 시선을 고정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가난 때문이었습니다.
클라라의 생애가 완벽한 예수 그리스도 추종의 걸작품일 수 있었던 것은 가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클라라가 그토록 겸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난이란 보석을 온 몸에 장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클라라 자매가 원장 수녀로 봉사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한 수녀의 수도복이 너무 낡아서 더 이상 기워 입을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클라라는 자신의 수도복이 그나마 괜찮다는 느낌이 들자 주저 없이 그녀의 수도복과 자신의 수도복을 바꿔 입었습니다.
한번은 식사를 하는 중이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펴보니 빵이 약간 부족해보였습니다. 클라라는 그럴 때 마다 남몰래 식사를 중단했습니다.
또 다른 일이 우리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듭니다.
탁발을 나갔던 수녀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수녀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클라라 수녀는 수녀들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수녀 한 사람이 원장 수녀님에게 이런 일을 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에 발을 뒤로 뺐습니다.
괜찮다, 절대 안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클라라는 제대로 한 대 얻어맞았습니다. 그것도 상대방 수녀의 발로, 그것도 입을 얻어맞았습니다. 클라라의 입을 제대로 걷어찬 수녀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클라라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빙그레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습니다.
“수녀님, 조금도 염려 마세요. 난 괜찮아요!”
사색이 된 수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클라라는 몸을 구부려 자신을 걷어찬 발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