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루카 4,31-37
빛이 있으면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옛말에 “등불 하나가 천년 어둠을 물리친다.” 고 하였습니다. 빛을 가지고 있으면 어둠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 악의 세력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빛을 지니지 못하였으니 문제입니다. 물론 희미한 빛을 지니고 있어서 더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주 큰 어둠이라면 빨리 손을 쓸 텐데 희미한 빛이 기회를 놓치게 합니다. 세상의 어둠을 탓하지 않고 하나의 촛불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빛을 선택하면 어둠이 물러나고 어둠을 선택하면 빛이 물러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어두울수록 더 큰 빛을 발하게 됩니다. 더러운 영은 예수님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며 대항을 시도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루카4,35) 하시며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 내셨습니다. 그리고 분명 그 능력을 사도들을 비롯한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루카10,17이하) 사도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 능력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까닭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잘 관리하고 키워야 하겠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에게 대항 하십시오. 그러면 악마가 여러분에게서 달아날 것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야고4,7-8) 하고 선언합니다.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어둠의 세력, 곧 하느님보다는 인간의 욕심을 부추기는 마음에서 자유롭기를 희망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8,6-7)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마음과 몸을 생각합니다. 마음은 걸레인데 말은 비단이니 우습습니다. 품은 마음은 둘인데 몸은 하나이니 우습고 마음은 울고 있는데 얼굴은 웃고 있으니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마음을 고치면 얼굴도 달라지는데 마음은 고치지 않고 얼굴만 자꾸 고치니 안타깝습니다. 성령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기쁨을 차지해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축복의 언어>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언젠가 복음서를 교재로 정말 재미있는 작업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복음서 안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선포하신 말씀만 따로 뽑아서 유형별로 분석하는 일이었습니다.
복음서 안에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담겨져 있더군요. 복음사가가 전개하는 설명과 해설이 주류를 이룹니다. 때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제자들의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환자들, 나병환자들, 죽어가는 사람들, 악령 들린 사람들의 외침도 빠트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복음서의 핵심이자 백미는 예수님 입에서 직접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때로 금실 같기도 하고, 때로 주옥같기도 하는가 하면 때로 천둥과 벼락같기도 합니다.
예수님 말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말씀 선포의 대상에 따라 다양한 색조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씀은 그 가르침이 너무나 쉽고 간결하고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당대 서민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비유를 통한 가르침이 그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때로 비수 혹은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아무리 잡아끌어도 하느님 쪽으로 돌아서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향해 외치는 예수님의 말씀은 거의 독설 수준입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가난한 백성들, 고질병 환자들, 아무리 노력해도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죄인들, 악령 들린 사람들,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간 가련한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한지,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을 주는지, 결국 예수님의 그 말씀으로 인해 그들은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예수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은 이렇게 생명력, 에너지로 가득 찬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에 얼마나 힘이 있던지 말씀이 곧 생명이요, 말씀이 곧 구원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 말씀의 배경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바로 권위였습니다. 그 권위는 아래로부터 온 권위가 아니라 위로부터 온 권위, 세상의 권위가 아니라 영적인 권위, 사람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고, 죽이는 권위가 아니라 사람을 일으키는 권위, 행복하게 해주는 권위, 결국 살리는 권위였습니다.
너무나 변화무쌍해서 믿을 수 없는 이 세상의 권위와는 철저하게도 다른 하느님의 권위가 예수님의 입과 말씀과 존재에 주어졌기에 악령조차도, 적대자들조차도 그 권위 앞에 꼼짝 못하고 물러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겠습니다. 이웃에게 심각한 상처와 고통을 안기는 말은 아닌지, 이웃에게 큰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말은 아닌지, 그래서 병으로 죽음으로 몰고 가는 말은 아닌지...
이웃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어주는 언어, 지루한 일상에 청량제 역할을 하는 언어, 또 다시 힘을 내고 일어서게 만들어주는 언어, 하느님을 떠올리게 하는 사랑의 언어는 우리의 매순간을 축복의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