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 루카 10,1-12

2012. 10. 4. 오전 9: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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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 루카  10,1-12


 

“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평생토록 풀어야할 숙제 하나>

 

    성인(聖人)중의 성인,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여러 덕행 가운데, 참으로 마음에 드는 것 한 가지는 ‘만인형제애(萬人兄弟愛)입니다.

    그분에게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다 형제요 자매였습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내편이건 저쪽 편이건, 내게 도움을 주는 존재이건, 나를 성가시게 만드는 존재이건, 모든 것이 다 하느님 사랑의 손길이 담긴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당시 나타나면 다들 멀찍이 돌아가곤 했던 나병환자를 온몸으로 포옹했던 성인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죽음’, 그 죽음이 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올 때, 성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자매인 죽음이여!”

    늑대는 형제요, 비둘기는 자매였습니다. 오늘날도 프란치스코 성당 복도 한쪽에는 한 쌍의 흰 비둘기가 살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바깥으로 날아가지 않고 성당을 지키고 있습니다.

    철저한 자연주의자, 환경운동가, 생태주의자, 인본주의자, 평화주의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인의 그런 모습 앞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물고기든, 산짐승이든 뭐든 움직이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기를 쓰고 생포하려는 제 모습과 너무나 크게 비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만인형제애’의 원천은 어디일까요?

    바로 그의 참 스승이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택된 백성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백성들, 별것도 없으면서 쓸 데 없는 우월주의에 빠진 유다인들에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당신의 뇌리 속에 가득 차 있던 ‘만인형제애’를 드러내십니다.

    당시 유다인들에게 있어 이웃은 동족들뿐이었습니다. 하느님 구원의 대상도 이스라엘 백성뿐이었습니다. 지독한 선민의식입니다.

    그럼 다른 민족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들을 모두 통칭해서 ‘이방인’이라 불렀습니다. 사람취급도 안했습니다. 구원되든 안 되든 상관할 바 아니었습니다.

    이런 그들 앞에 예수님께서는 이웃에 대한 개념을 다시금 설정해주십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유다인들 입장에서 봤을 때, 인간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참된 인간이 어떤 모습인지를 잘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다른 등장인물들, 사제와 레위인, 그들은 유다인 가운데서도 유다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인간 이하의 행동이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보여준 행동 하나 하나를 따라가 보십시오. 그는 참된 봉사가 무엇인지? 참사람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여러 행동 가운데 눈여겨 볼 것은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입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한 생명이 내 눈앞에서 고통 받고 있다는 그것이었지, 그가 유다인이든 사마리아인이든 상관없었습니다. 그가 북한주민이든 남쪽 사람이든 문제없었습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위험에 처한 한 사람의 생명, 그것만이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의 과제 하나는 사랑의 대상, 사랑의 개념, 사랑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나가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 루카 10,1-12




헛됨에 빠져들지 않게 하소서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오늘도 말과 행동 지켜주시고 온갖 악 피하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혀 삼가토록 보살피시어 시비에 말려들지 않게 하시고 우리 눈 조심토록 지켜 주시어 헛됨에 빠져들지 않게 하소서”.
오늘 성무일도 아침기도의 찬미가 일부입니다. 온갖 악을 물리쳐 이겨야 하고, 헛됨에 빠져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몰라서 잘못을 범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의지가 약하고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일순간의 기쁨을 맛보기위해 큰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인사하느라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마라”고 하시며 헛됨에 빠지지 않도록 단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넉넉해야 무슨 일을 해도 할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지만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저 ‘하느님나라가 다가 왔다’고 전하길 원하셨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여장을 꾸리고 인사치레를 하는 것에 그리고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이를 설득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아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자신의 안락을 더 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소돔이나 띠로, 시돈은 이방인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하느님의 저주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이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경고입니다.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곧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결국 그 지역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스스로 파괴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음의 문을 닫으면 헛된 것에 빠지게 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은총으로 다가오시지만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나 없이 나를 내신 하느님께서는 나 없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십니다”.

 

우리도 자칫 그릇된 신심에 빠져 자기가 최고인 것처럼 생각하고 이중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몸은 교회 안에 머무르면서 삶은 교도권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주장에 빠지는 그들에게는 겸손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일치가 없고 분열을 조장하고 자기도 모르게 교만에 빠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믿음에 따르는 순명을 통해 그리스도의 빛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놓여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원하는 대로 받을 것입니다”(집회 15,17). 그러므로 어떤 처지, 상황에서든지 생명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의 삶을 묵상합니다.

이탈리아의 아씨시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젊어서는 향락을 추구하고 기사가 되기를 꿈꾸었습니다. 그 가정은 포목상을 하는 부유한 가정이었습니다.
군대에 들어가 출세를 바랐지만 적에게 잡히고 중병을 앓는 포로생활을 경험한 후 마음의 큰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재물을 버리고 청빈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성 다미아노 소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프란치스코, 가서 허물어진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 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고 따르는
작은 형제회를 창설하여 청빈, 순명 정결의 삶으로 이웃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의 삶을 사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마음으로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신 분입니다. 그리고 1224년 예수님의 오상을 받았고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성인의 말씀중에 네 생각을 주님께 맡겨라. 그러면 주님께서 잘해 주시리라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맡긴다는 말은 그것을 내준다는 뜻입니다. 내준다는 것은 내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맡김을 받은 사람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것이지요. 결국 내 생각을 주님께 맡긴다는 것은 생각을 할 때마다 혼자하지 않고 주님께 어떻게 할까요?하고 여쭈어 보고 나서 '이렇게 하라 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여라 하면 저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 머리로 생각하는 대신 주님께서 내 머리로 생각하시게 하고 그 생각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20).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일까? 를 생각하면서 사시는 한 주간 되시길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말씀하신대로 사셨습니다. 밥 먹고,잠자고 사람들 만나고 하는 모든 일까지도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려고 늘 깨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무슨 일이든
예수님, 어떻게 할까요?하고 여쭈어 보고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행할 수 있길 바랍니다.
성모님도 늘
이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1,38)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생각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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