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가 17,20-25)

2012. 11. 15. 오전 8: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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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15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가 17,20-25)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cannot be observed,
and no one will announce,
‘Look, here it is,’ or, ‘There it is.’
For behold,
the Kingdom of God is among you.”

 

 

 

말씀의 초대
오네시모스는 주인인 필레몬에게서 도망쳐 감옥에 갇혀 있는 바오로 사도를 찾아와 옥바라지를 하면서 신자가 되었다. 바오로는 오네시모스를 필레몬에게 보내면서 선처를 부탁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하여 이미 시작되었고, 장차 세상 종말에 예수님 안에서 완성될 것이다(복음).

☆☆☆

감옥에 갇힌 바오로 사도는 필레몬에게 옥중에서 얻은 아들 오네시모스를 부탁한다. 한때 필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스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맞아들일 것을 요청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지만, 이미 우리 가운데에 있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를 두고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하더라도 현혹되지 말라고 하신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고, 장차 그분 안에서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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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조각가 최종태 선생은 자신의 신앙 이야기인 『산다는 것은 그린다는 것』에서 그가 겪은 신비 체험을 조심스럽게 전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엄청난 일을 겪은 그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간략히 소개합니다.
그는 갑자기 강렬한 빛이 번쩍거리며 주변 전체가 빛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엄청난 누군가가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의 의식 세계는 끝이 났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그에게 큰절을 올리고 바닥에 앉았습니다. 절을 올리고 앉았을 때,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가 살아온 일생과 자신이 다 보였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모든 것은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왔습니다.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찾던 분께서 먼 데 계시지 않고 자기와 함께 늘 마주하고 계셨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물들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생명력이 넘치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엄청난 체험을 한 그는 이렇게 고백하며 글을 맺습니다. “어둠은 세상의 것이다. 자유는 ‘완전한 항복’에서만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죽음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싶다. 육신적인 죽음, 세상적인 것의 죽음, 그것이 완전한 항복이다. 자유의 나라, 사랑의 나라, 기쁨의 나라. 우리가 다 같이 희구해 마지않는 곳, 그곳이 하늘 나라다. 거룩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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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나라가 어떻게 올 것인지 신비스러운 표징이나 기적을 구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주님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이미 현존하는 것이고, 또 실현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나라를 눈에 보이는 기적이나 표징 같은 것에서 찾으려 합니다. 날짜나 시간, 아니면 거짓으로 어떤 사물을 꾸며서 사기를 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주님처럼 우리도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서,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선포하고자 겪는 고난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걷지 않으면 얻어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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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득세하는 날이 언제냐는 질문입니다. 대단히 현실적인 물음입니다. 유다인이 이방인을 누르고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날을 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답변은 명쾌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하느님 나라는 현실의 성공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는 말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식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와 계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나라는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있었습니다. 현실의 모든 것은 그분의 다스림 안에 있습니다. 어느 누가 그분 섭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는지요? 현실과 미래에서 그분의 손길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나라는 믿음 안에서의 깨달음입니다.
종말 역시 하느님 나라의 한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언제 올지 모릅니다. 인간의 판단 기준을 초월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면서 기다리면 됩니다. 지금 계속되는 삶의 끝이 나의 종말입니다. 저만치 오는 비를 미리 뛰어가서 맞으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분명 이 세상 안에 있습니다. 아기와 눈을 맞추며 환하게 웃는 엄마의 얼굴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마당을 뛰어다니는 어린이의 모습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길섶의 들꽃 속에서도, 그 위를 맴도는 나비와 잠자리와 새들의 지저귐 속에서도 ‘하느님의 나라’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습니다. 감사하는 눈길로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의 천국’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믿음과 감사로 사는 이들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뜻합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은 종말을 의미합니다. 그분의 완벽한 다스림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날은 기쁜 날입니다. 그렇지만 놀랍고 두려운 날로 인식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면서도 많은 이가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단체와 조직을 형성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정을 떠나 그곳에 들어간 이들도 있습니다.
헬레나 씨는 여고 교사였습니다. 서른이 넘었지만 혼자였습니다. 주일이면 봉사 활동에 여념이 없는 그녀는 나름대로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교직 생활에 착실하던 그녀가 어느 날 사표를 내고 이상한 단체에 가입하였습니다. 본인은 결코 이상한 곳이 아니라고 했지만 사이비 종교였습니다
.
헬레나 씨는 그곳에 퇴직금을 모두 바치고 가족들과도 연을 끊었습니다. 어렵게 그를 찾아가면 곧 종말이 온다며 자신을 찾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무엇인가 느낀 것이 있기에 그렇게 살고 있을 겁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가족을 외면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 큽니다
.
종말은 언제 올지 모릅니다. 우리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닌 까닭입니다. 종말을 좌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십니다. 그러기에 열심히 살면서 기다리면 됩니다. 지금 삶의 연장이 종말인 셈이지요. 저만치 오는 비를 미리 뛰어가서 맞으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 여기서부터

반영억 라파엘 신부

좋은 곳, 아름다운 곳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특별히 신앙인은 더없이 좋은 곳, 하느님의 나라에 머물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는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17,21)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묵시록에는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묵시21,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모시는 곳에 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또 사는 곳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상태가 곧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내게는 이제 천당 영복이 시작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영복을 얻고자 한다면 하느님만을 열심히 공경하시오” 하고 말씀하시며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는 “ ‘내 눈으로 천당과 지옥을 보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천당과 지옥이 있음을 믿으리요?’ 하는 이는 마치 소경이 제눈 어두운 것을 생각하지 않고, 눈으로 하늘을 보지 못하니 해와 달이 있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고 말씀하시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을 촉구하였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먼 훗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자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13,34)는 새 계명 안에 성장되고 마지막 날에 완성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여기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번 일상 안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은 기쁨 속에 있고, 거기가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슬픔 속에 있습니다. 그곳이 지옥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천국이고, 사랑이 없으면 지옥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십니까? 그렇다면 사랑하십시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십시오!
주님께서 눈물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시며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 우리를 위한 사랑의 발걸음이었다면 우리도 어떤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사랑의 끈을 결코 놓아서는 안 됩니다. 그곳이 하느님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왔고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부터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믿는 이들이여, 이 땅 위에 살지만 천국을 그리워합시다.”(성 베르나르도)
그러나 “안락의자에 앉기만을 원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성 필립보 네리)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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