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2012. 12. 8. 오전 7: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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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8일 토요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신앙 교리입니다. 예전에는 무염시태라 했습니다. 죄에 물들지 않고 수태되셨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분이시기에, ‘원죄와는 무관하게 태어나셨다는 것이지요. 원죄는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지은 죄입니다. ‘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어긴잘못입니다. 이후 인류는 말씀을 거역하고 싶은 성향을 안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원죄의 본질입니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초대 교회 때부터 시작된 민간 신앙입니다. 근세에는 성모님께서 직접 발현하시어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프랑스 산골 마을 루르드에서 베르나데트에게 나타나신 일입니다. 이 발현은 교회의 공인을 거쳐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2 11)이 되었습니다. 1854 12 8, 비오 9세 교황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회칙을 반포합니다. 이렇게 해서 12 8일은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가브리엘 천사는 예수님의 잉태를 성모님께 알립니다. 혼인하지 않으셨던 마리아께서는 불가능한 일임을 고백하십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말씀에 즉시 응답하십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신 성모님의 고백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26-38)

Behold,
I am the handmaid of the Lord.
May it be don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말씀의 초대

창세기는 어떻게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는지를 설명한다. 교만한 인간이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죄가 이 세상에 왔다.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당신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다. 바오로 사도는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것이라고 말한다(제2독서). 가브리엘 천사는 나자렛 고을에 사는 요셉의 약혼녀 마리아에게 찾아가 그가 장차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임을 알려 준다. 마리아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천사의 말에 믿음으로 응답한다(복음).

☆☆☆

주님께서 아담을 부르신다. 그는 숨어 있다. 그분께서는 따 먹지 말라고 명한 나무 열매를 왜 따 먹었는지 물으신다. 아담은 하와가 시켰다고 말한다. 하와는 뱀의 유혹이었다고 답한다. 뱀은 사탄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이렇게 해서 사탄과 사람 사이는 화해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1독서). 예수님만이 인류를 낙원으로 다시 데려가실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통해 그러한 은총을 지금도 주고 계신다(2독서). 가브리엘 천사는 나자렛에 살고 있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하며 인사한다. 주님의 힘이 함께 계신다는 암시다. 그러고는 놀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를 알린다. 그토록 기다려 왔던 메시아의 출현이 시작된 것이다. 마리아는 순종으로 받아들인다(복음).

 

 

☆☆☆

 

오늘의 묵상

성모님께서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대리인이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뜻을 거부한 것에 반해,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전 존재는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자신을 온전히 비우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비운 그 자리에 예수님을 받아 모셨습니다. 성모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 은총의 태양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차가운 세상 위에 밝게 떠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원 행위의 주체는 분명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릴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들어오셔서 함께하시도록 당신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 순명이 성모님과 인류 역사를 달리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느님께 순명한다는 것은 성모님처럼 하느님께 문을 열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열린 문으로 들어오셔서 그 사람의 인생과 구원의 역사를 새롭게 엮어 내십니다.
모든 사람 안에는 믿음과 의심이라는 양극이 있습니다. 이 믿음과 의심에 따라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고, 역사가 바뀝니다. 유다의 의심은 죽음으로 이어졌지만 성모님의 믿음은 생명을 낳았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계단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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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신앙 교리입니다. 예전에는 무염시태라 했습니다. 죄에 물들지 않고 수태되셨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분이시기에, ‘원죄와는 무관하게 태어나셨다는 것이지요. 원죄는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지은 죄입니다. ‘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어긴잘못입니다. 이후 인류는 말씀을 거역하고 싶은 성향을 안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원죄의 본질입니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초대 교회 때부터 시작된 민간 신앙입니다. 근세에는 성모님께서 직접 발현하시어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프랑스 산골 마을 루르드에서 베르나데트에게 나타나신 일입니다. 이 발현은 교회의 공인을 거쳐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2 11)이 되었습니다. 1854 12 8, 비오 9세 교황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회칙을 반포합니다. 이렇게 해서 12 8일은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가브리엘 천사는 예수님의 잉태를 성모님께 알립니다. 혼인하지 않으셨던 마리아께서는 불가능한 일임을 고백하십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말씀에 즉시 응답하십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신 성모님의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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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천사 가브리엘의 인사말입니다. 그는 나자렛의 마리아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쁨의 원인은 은총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은총과 함께 계신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사는 것이 즐겁지 않으면
은총과 함께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느님의 기운이 떠나면 누구라도 우울해집니다. 무엇을 해도 허무감이 떠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기운을 안고 살아야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 있든 기쁨이 함께합니다. 가만있어도 마음이 환해집니다. 그러니 천사의 일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 천사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기운이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없이 성모송을 바쳐 왔습니다. 영세 후 얼마나 많이 이 기도를 외웠는지 모릅니다.
묵주 기도를 한 번 바치면 성모송을 쉰세 번 외우게 됩니다. 한 번 외울 때 한 사람씩만 기억해도 수많은 사람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를 위해 성모송을 바친다면 그때마다 천사가 됩니다. 악한 생각이 괴롭히고 힘든 사건이 우울하게 할 때 성모송을 외워 보십시오. 정성으로 성모송을 바쳐 보십시오. 어느새 천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되어 성모님 곁에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 강헌철 신부-

사제들은 정기적인 인사이동이 있다. 임기가 되어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나 또한 첫 주임신부로 있었던 본당에서 성당 신축을 다 하지 못하고 떠난 적이 있는데, 갑작스런 인사이동 소식에 본당에서는어떻게 그런 일이 있습니까?”라며 놀라는 분이 많았다. 함께 고생했던 신부가 갑작스레 떠나는 서운함도 있겠지만 성당 신축이라는 큰일이 있는데 그 일은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인사이동 소식에 놀라기도 했고참 우리 본당 사정을 모르시는구나.’ 하고 교구장 주교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 본당은 성당 신축이 잘 진행되고 있고, 나 또한 새로운 사목지에서 기쁘게 생활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 하며 절망하고 포기하고 비난한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은 부정적이고 불행한 시간이 될 뿐이다. 그러나 주어진 어려움이나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믿음과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의탁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좋은 결과가 있음을 우리는 신앙 안에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은 반드시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으로만 내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성 예루살렘이신 성모님>

     우리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지니신 여러 측면의 빛나는 덕행들과 면모들을 흠모하고 경축합니다. 성모님의 탄생을 축하하는가 하면 구세주를 낳으심을 기념합니다.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하심을 기억하는가 하면 하느님의 모친이 됨을 기립니다. 지극히 겸손하신 성모님, 위로자 성모님,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도움이신 성모님...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측면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입니다. 원죄 없는 상태에서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신 사건은 너무나 특별하고 기이한 사건이자 전무후무한 대사건이었습니다.
성령의 움직임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던 ‘무염시태’였습니다. 무염시태 사건은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대사건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불가능이 없음을 명백히 알려주는 대사건이었습니다.


무염시태 이후 성모님의 생애를 묵상해봅니다. 무죄한 상태가 지속되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구세주를 뱃속에 모시고 살았던 열 달 동안의 세월은 매일의 기도요, 피정의 나날이었습니다. 그저 조심조심, 노심초사하면서 열렬한 기도 속에 살아가셨을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빛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관상하면서 무죄한 삶을 충실히 엮어가셨습니다. 갖은 정성과 예의를 다 갖춰 구세주 예수님을 고이고이 양육해나가셨습니다.
때가 이르러 예수님께서 출가하신 이후에도 성모님의 삶은 여전했습니다. 이제 마음 깊숙이 그리스도를 모셨습니다. 이제 성모님은 새로운 도읍 예루살렘, 또 하나의 성전이 되어 무죄한 삶을 지속해나갔습니다. 이런 계속된 노력 끝에 성모님은 거룩한 교회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로 들어 높여지게 되신 것입니다.

항상 빛이신 그리스도를 안팎으로 모시고 사셨던 성모님이셨기에 죄에 물들 틈이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현존하시고 거처하시는 곳에서는 죄가 힘을 잃습니다. 죄와 죽음, 어둠은 사라지고 생명과 환희, 밝음과 구원만이 존재합니다.
이런 면에서 성모님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이 일관되게 바라봐야할 신앙의 모델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내면에 그리스도께서 지속적으로 현존하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죄와 죽음이 들어설 공간이나 여유를 주지 말아야하겠습니다.

나자렛의 마리아는 아무런 노력이나 성장통 없이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새로운 도성 예루살렘으로 우뚝 서기까지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 부단한 자기 쇄신 작업을 거듭한 결과가 교회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성모님의 생애 안에서는 지속적인 건너감의 작업이 계속되었습니다. 너무나 황당해 이해할 수 없는 무염시태 사건 앞에 섰을 때입니다. 불신과 의혹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느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전폭적인 신뢰의 삶으로 건너갔습니다. 

어린 시골 소녀였는데 어찌 엄청난 대사건 앞에서 자신감으로 충만했겠습니까? 불안했고 흔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고 계속 되뇌며 확고한 신앙인의 삶으로 건너갔습니다. 
결국 관건은 지속성, 충실성 여부입니다.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이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이지만 지속적으로 하느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킬 때, 지치지 않는 사랑의 마음을 지닐 때 성모님처럼 우리도 새롭고 든든한 성전으로 세상 앞에 설수 있을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불가능한 일이 없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세상은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또 돈이 많은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정작 돈을 가지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돈으로 하느님을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돈이 하느님을 멀리하게 만듭니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돈이 하느님을 만나는데 결정적으로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을 따르기보다 불가능한 일이 없는 하느님께 마음을 두어야겠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를 잉태하게 되리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더군다나 천사는 “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하며 명했습니다. 그러니 마리아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늙은 나이에 임신한 엘리사벳의 잉태 소식을 전하며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1,37)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가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마리아는 자유의지로 응답하였습니다. 천사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고 그 말씀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처녀가 임신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 했지만 “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몰아냈습니다. 결국 구세주의 잉태는 하느님의 은총과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잉태되고 또 태어나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응답을 통하여 세상에 구세주를 낳아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께는 “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의 응답과 협력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를 굴려 계산하고 앞으로 닥칠 일을 고민했더라면 아마도 “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응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약혼한 처녀가 부모도 모르고 약혼자도 모르게 배가 불러온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 아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믿어주기나 할까요?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쫓겨나든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저에게 이루어 주소서’ 한 것은 곧 자신의 모두를 바친 것을 의미합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주님의 뜻을 겸손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봉헌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실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에서 ‘불가능이 없는 하느님을 차지’하기란 너무도 힘이 듭니다.
그래도 우리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순명의 모범을 보이시고 실제로 구원을 이루셨으니 우리도 일상 안에서 성모님을 생각하며 단호한 결단과 더불어 온전한 봉헌의 삶으로 한 발 나아가야겠습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겸손과 순명으로 하느님을 잉태 하셨습니다(성 베르나르도).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으니 역시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기를 원하시며, 또한 마리아를 통하여 다시 오실 것이므로 마리아를 통하여 세상의 구원이 성취될 것입니다(성 루도비꼬).
어머니를 통하여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로 가기 위해 먼저 겸손과 순명의 어머니 마리아께 다가가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업가가 신부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신부님, 제가 1억 원을 봉헌하면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신부님께서 대답하셨답니다. “그거 한번 시험해 봅시다!”

봉헌한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나의 이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봉헌을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어떤 기대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 재물을 내 놓는다면 그것은 예물이 아니라 뇌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결코 뇌물을 즐기지 않으십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위하지 않고 하느님의 영광을 희망하였고 우리 모두를 위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 참된 봉헌을 통해 우리에게 구세주를 낳아주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주님의 뜻을 이루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봉헌의 삶이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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