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6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마태오7,21,24-27)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 시대가 오면 온 유다 땅이 시온 산에서 하느님을 향해 감사의 노래를 부르리라고 예언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베푸신다(제1독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으며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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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견고한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다고 한다. 거기에 들어갈 사람들은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이다. 그러니 주님을 신뢰하라고 한다. 주 하느님만이 영원한 반석이시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그분께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만이 들어간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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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국화를 키우는 데 대작(大作)을 만들려면 2년을 공들여야 합니다. 겨울에는 온실에서 국화를 가꾸는데 연료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연탄을 땝니다. 연탄을 보면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나는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을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요즈음은 그리 흔하지 않지만, 연탄은 사람들이 먹고 잘 수 있도록 자신의 온몸을 태웁니다. 그것도 모자라 다 탄 연탄재는 으깨져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게 미끄러운 빙판길에 뿌려집니다. 연탄이 가르쳐 주는 지혜의 깊이가 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다는 것은 연탄처럼 자신을 태워 남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한 장의 연탄이 되어 주는 것, 이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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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모시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하고 깊은 신앙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충분치 않습니다. 입으로 하는 신앙 고백에 행동과 활동이 따르지 못하면, 그러한 신앙은 공허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생활과 동떨어진 신앙은 우상 숭배일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은 결코 그 집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반석이 곧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다면,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그 말씀들을 실제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그 사람은 거짓 신앙인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하십니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었을 때 그 집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신앙심이 깊다고 자만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낮추어 겸손한 태도로 주님의 말씀을 세상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기초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기쁘고 떳떳하게 생활 속에서 그 믿음을 고백하고 증언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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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짓는 집은 기초가 튼튼합니다. 웬만한 지진에도, 어지간한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그런 집을 원합니다. 하지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기초가 약해 쉽게 무너집니다. 일부러 그곳에 집을 지을 사람은 없습니다. 복음 말씀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반석 위의 집’인지 ‘모래 위의 집’인지 돌아보게 합니다.
미래를 믿지 못하기에 사람들이 흔들립니다. 돈과 재물에 매달립니다. 건강이 최고라고만 생각합니다. 불안이 원인입니다. 평범하게 맡길 수는 없는지요? 미래도 건강도 아버지께 맡기며 살 수는 없는지요? 그렇게 하라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그렇습니다. 맡기면 보호해 주십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됩니다. 맡기지 못하기에 은총이 함께하지 않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맡기며 사는 이들입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내세우는 이가 복음에서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맡긴다는 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는 행위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그분께서 주시는 것으로 여기며 ‘기꺼이 받아들일 때’맡기는 것이 됩니다. 주님의 보호는 원하기만 해선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맡길 때 적극적인 보호를 받습니다.
참된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튼튼한 신앙생활을 바랍니다. 반석 위의 집처럼 견고하고 흔들림 없는 믿음을 바랍니다. 그런데도 실천이 어려운 까닭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반석은 기초입니다. 기초가 튼튼하면 결실 역시 견고해집니다. 신앙의 기초는 겸손입니다. 인생을 겸허하게 사는 것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첫걸음입니다.
별것 아닌데도 착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별한 자리도 아니건만 대단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가치는 자리가 빛내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처음에는 자리가 사람을 빛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합당하게 살지 못하면 자리가 그를 어둡게 합니다. 그를 비천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자리만도 못한 사람이 되는 결과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첫 번째 반석 위의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기쁘게 사는 생활입니다. 언제나 기쁨과 함께해야 믿음의 기초가 튼튼해집니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지만 본인이 즐겁지 못하다면, 역겨운 위치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신앙의 기초는 흔들립니다.
하늘 나라에는 겸손한 이들이 갑니다. 기쁘게 살았던 이들이 갑니다. 기쁘면 감사하게 되고, 감사드리면 겸허해집니다. 이 세상에서는 환영받고, 저세상에서는 영광 속에 있게 됩니다. 그러니 어찌 기쁨과 겸손을 신앙생활의 기초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 실천하라
-조명연 신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위대한 사랑을 갖고 작은 일들을 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녀님의 말씀처럼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로 크고 위대한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작은 일들의 실천에서 우리 인생의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사람들은 위대한 일을 하겠다고 거창한 계획을 세우곤 합니다.
하지만 계획만 세울 뿐 지금 당장 해야 할 사소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봉사하면서 사는 것이 꿈입니다.
물론 아직은 여력이 되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크게 성공하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작정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모두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아마 계속 계획만 세우다가 인생의 마지막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실천하는 사람
반영억라파엘신부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신이 나서 뛰어놀며 눈사람도 만들고 즐거워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혹 누가 넘어져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따뜻한 햇살이 길을 열어주기를 희망하고 하얀 눈처럼 마음도 맑고 깨끗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작심삼일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돌아보면 결심과 행동은 언제나 다릅니다. 신앙생활의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 깊은 맛을 내야 하는데 세월이 가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틀에 박힌 법을 지키는 것보다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주님의 계명을 합리화 시키는 데 약삭빠르게 움직입니다.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진리는 변함이 없건만 진리를 대하는 마음은 물러지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율법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대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로마2,13). “그러니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2). 그리고 그 실천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에페6,6).
정말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위입니다. 신앙고백이나 찬미의 말도 그 진실성은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지순례나 기도회, 피정을 다녀와서는 너무 좋았다고 떠벌립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삶을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좋았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새로운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에제키엘서에는 실천의 어려움을 “그들의 입에는 열정이 차서 그럴듯하게 행동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제 이익만 좇아간다.”(에제33,31)고 적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면 기반을 잘 다지고 그 위에 지어야지 그렇지 않고 모래 위에 짓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기초가 튼튼하면 큰 바람과 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집을 지으면 비바람을 걱정할 틈도 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듣고 실행하면 큰 믿음의 사람이 되지만, 듣기만 하는 사람은 환난이 오면 곧 흔들려 방황하게 됩니다. 사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2,17).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2,26).
마더 데레사는 말합니다. “예수님께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장애가 될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니까요”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서 결정한 것은 미루지 말고 그분의 뜻대로 실천하십시오”(알베리오네신부). 우리 모두가 실천하면 할수록 더 큰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을 체험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고 하셨으니 실행함으로써 하늘나라를 차지하기를 기도합니다. 한 번에 많은 것을 행하려고 욕심 부리지 말고 작은 것부터 주님의 눈에 드는 것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삼년 동안 돌 하나를 입에 물고>
아가톤이라는 큰 스승이 계셨습니다. 형제들, 후배들과 함께 하는 수도생활, 하루하루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100% 다 완벽하게 만들어주시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분에게도 큰 고민거리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수도자들, 다들 큰 뜻을 품고, 다들 선한 의지를 지니고 수도 공동체에 들어왔지만, 인간적 나약함이나 부족함, 상처를 모두 다 떨치고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다들 아직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 ‘약점’ 한 가지씩 다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살아갈수록 점점 더 형제들의 약점이 크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식탁에서, 또는 노동시간에 형제들의 부족함에 대해서 평가하고, 비판하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남의 말도 자꾸 하다 보니 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인 모르게 ‘속닥속닥’ 험담을 이야기하는 것에 맛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스승 아가톤은 절대 동료들에 대해서 험담하지 말자고 크게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던지 교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크게 실망한 스승은 중대 결심 한 가지를 세웠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답니다.
동료들을 심판하지 않고 침묵을 잘 지키게 되기까지 3년 동안 큰 자갈 하나를 입에 물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대단한 의지요, 정녕 대단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동하는 믿음, 실천하는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우리가 아무리 큰 믿음, 산을 옮길만한 신앙, 원대한 꿈을 지녔다할지라도, 그 믿음, 그 신앙, 그 꿈이 현실 생활 안에서 구체화되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 시대 너무나 많은 말들이 넘쳐흐릅니다. 오늘도 수많은 강연대 위에서 펼쳐지는 강론들, 설교들, 귀가 솔깃한 공약들, 당장이라도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 단 꿀 같은 약속들, 그럴듯한 학문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실제 삶 안에서 현실화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실제로 살지 않는다면 별 쓸모가 없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결실이 뒤따르는 행동입니다.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인 것입니다.
정성껏 기도했다면, 그에 따른 결실이 필요합니다. 열심한 신앙인이라면 그에 따르는 결과가 요구됩니다.
열심한 기도의 결과는 온유함와 자비로움입니다. 온유와 자비는 참된 영성과 그릇된 영성을 판단하는 잣대입니다. 하느님을 깊이 체험한 사람은 그 결실로 온유와 자비를 지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체험한 사람은 쉽게 분노하지도 않습니다. 쉽게 상처받지도 않습니다. 쉽게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온유하고 자비하신 그분의 모습을 따라 모든 것을 포용하고, 모든 것을 품에 담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