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오 1,1-17)

2012. 12. 17. 오전 8:10:36

글자


2012년 12월 17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마태오 1,1-17)

 가락시대(駕洛, 42~532 , 490년간, 총10대)

왕명

재위기간

약사

1

수로왕(首露, 42~199)

42~199

42년 알에서 낳아서 곧 즉위. 아유타국(인도의 한 국가) 공주 허황옥과 결혼함

2

거등왕(居登, ?~253)

199~259

수로왕의 아들. 어머니는 허황옥

3

마품왕(麻品, ?~291)

259~291

거등왕의 아들

4

거질미왕(居叱彌, ?~346)

291~346

마품왕의 아들.

5

이시품왕(伊尸品, ?~407)

346~407

거질미왕의 아들

6

좌지왕(坐知, ?~421)

407~421

이시품왕의 아들. 금토왕(金吐王), 김질(金叱). 왕비 용녀의 사람들을 관리로 등용하여 시끄러웠다. 후에 왕비를 귀양 보내고 백성을 편안히 다스렸다.

7

취희왕(吹希, ?~451)

421~451

좌지왕의 아들. 질가(叱嘉)

8

질지왕(?~492)

451~492

취희왕의 아들

9

겸지왕(鉗知, ?~521)

492~521

고이왕 아들.

10

구형왕(仇衡, ?)

521~532

겸지왕의 아들. 신라 진흥왕이 쳐들어오자 영토를 바치고 귀순함.

 말씀의 초대
야곱은 아들들을 불러 앞으로 이스라엘 가문에 일어날 일들을 알려 준다. 야곱은 유다가 모든 민족들의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의 탄생 경위를 전하는 족보는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류 역사를 이끌어 오셨는지 알려 준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탄생으로 구약의 모든 예언이 이루어졌다(복음).

☆☆☆

창세기는 장차 야곱 집안에 일어날 일을 기록하고 있다. 야곱은 아들들을 불러 놓고, 주님의 축복으로 왕족이 되리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며, 유다의 후손에게서 왕홀과 지휘봉이 떠나지 않으리라는 예언을 한다(제1독서).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직계 후손이심을 제시한다. 예수님 안에서 이스라엘 역사 전체가 이어지고 또 절정에 이른다. 다윗의 후손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약속된 나라를 일으키실 왕이시며, 메시아이시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성탄도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미사 독서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읽을 때에는 괜히 신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반복되는 말을 듣는 신자들이 지루해할 것이라는 노파심 때문이었습니다. 최영미 시인은 예수님의 족보에 대한 이야기를 시로 쓰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허무하다. 그치? 어릴 적, 끝없이 계속되는 동사의 수를 세다 잠든 적이 있다.”
가계의 영속과 씨족의 유대를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족보가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조선 시대가 그랬습니다. 자신을 내세우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한다면 족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문중에서 부끄러운 사람은 의도적으로 족보에서 빼 버리고, 자랑삼을 만한 벼슬을 한 사람은 사실 이상으로 과장해 온 것이 우리나라 족보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과 다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부끄러운 선조의 이름까지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하느님의 생각은 사람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잘못과 허물로 물든 인간을 도구로 당신의 구원 역사를 펼쳐 오셨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우리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곡선을 가지고 직선을 그리시는 분이십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오, 복된 죄!” 하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은 죄로써 구원으로 이끄셨던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지나온 우리 삶의 과정을 조용히 들여다봅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흔적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

족보는 씨족의 혈연관계를 부계 중심으로 기록한 계보와 문벌 기록, 선조들의 가장(家狀), 행적, 묘비명 등을 모아 정리한 씨족의 역사책입니다. 그러나 족보를 말할 때는 가계 안에서 언제나 현재의 ‘나’를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나는 누구의 후손이고, 나의 형제자매들은 누구이며, 나의 후손은 누구인가를 족보가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왕실 계통을 정리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과거 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는 사대부들에게도 허용되었지요. 족보가 없는 씨족이라면 과거 시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족보는 사회생활에 막강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반 서민들에게 허용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7-18세기 상업이 발달하면서부터라고 보면 좋을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서두부터 주님의 족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족보의 중심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족보는 주인공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동떨어진 인물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직계 후손으로서, 예언대로 왕가(王家)의 자손이심을 공식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족보는 예수님께서 곧 장차 약속된 하느님 백성을 일으켜 세우실 메시아이심을 고백하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현존과 활동을 통하여 모든 백성을 하느님 나라로 불러 모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족보는,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 당신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는,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적 증언서입니다.

☆☆☆

 

 

마태오 복음은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기적 이야기도 수없이 들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를 첫 장에 기록합니다.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분이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생소한 이름도 많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라 발음도 쉽지 않습니다. 마음먹고 복음을 읽어도 별다른 느낌이 없습니다. ‘첫 장부터 무슨 이름이 이렇게 많은가?’ 그런 생각마저 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씁니다. 이유는 단 하나’, 예수님 때문입니다. 오직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오 복음 첫 장의 사람들도 우리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조상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아브라함과 예수님 사이의 연결이 가능했습니다. 이렇듯 족보의 등장은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알리려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님의 구원 약속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미 죽은 그들의 조상들에게도 이루어질 약속입니다. 이것이 마태오 복음 1장에 담긴 숨은 가르침입니다.

☆☆☆

 

마태오 복음 1장을 읽으면 분심이 생깁니다. 혀도 잘 돌아가지 않는 이름들을 꼭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복음 작가는 왜 그 많은 이름을 미주알고주알 나열했을까요? 예수님에 대한 충성심 때문입니다. 어떡하든지 예수님의 출현을 다윗과 모세에게 연결시키려는 열정 때문입니다. 족보는 인간의 작품입니다. 조상들의 이름은 다시 등장합니다. 내일의 자녀들 속에서 다시 발견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도 결국은 사람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긴 족보를 읽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생소한 이름도 많습니다. 히브리 발음이라 혀가 잘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이런 이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는지요? 예수님 때문입니다. 오직 그 이유 하나뿐입니다.
예비 신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알아보려고 마태오 복음을 펼칩니다. 그러다 족보를 접하게 되면 금방 흥미를 잃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또 낳고 하는 말이 마흔 번 가까이나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연관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역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예수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예수님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이들입니다. 따라서 족보 이야기의 핵심은
예언의 성취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족보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시며, 나머지는 조연들입니다.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렸던 역사의 조연들이지요.
유다인의 족보에는 가문을 대표하는 남자 이름과 대를 잇는 장자의 이름만 기록합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에는 여자들도 있습니다. 세 분은 이방인 여인들입니다. 이렇듯 구세주의 출현에는 세상 모든 이가 동참했음을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싸움에는 중재가 통하지 않습니다. 워낙 감정의 골이 깊은 탓입니다. 투쟁의 역사로 따진다면 다윗 시대까지 올라갑니다. 그때 유다인들과 싸웠던 필리스티아인들이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입니다. 두 민족 사이에는 풀 수 없는 응어리가 있는 것이지요.
이렇듯 호전적인 이스라엘을 우리는 특별하게 기억합니다. 그들이 잘나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역사를 알아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중시하는 것은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나타났기에 그 뜻을 헤아려 보자는 것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시어 어떤 식으로 당신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알고자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마태오 1,1-17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반영억라파엘신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집안에 있는 족보에 여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출가외인’이라는 생각이 담겨있었나 봅니다. 그리고는 나이에 상관없이 아저씨뻘이니 형님뻘이니 하며 ‘촌수’를 따지곤 했습니다. 누가 출세하면 그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며 호들갑을 떨고, 먼 친척도 그때는 아주 가까운 것처럼 느끼며 자랑했습니다. 지금도 혈연, 지연, 학연에 목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미 그리스도의 족보에 여인이 등장했습니다. 그것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은 사람도 부끄럼 없이 올라 있습니다. 시아버지와 동침하여 자식을 낳은 다말, 창녀로써 적군과 내통한 라합, 라합은 예리코를 정탐하러 갔을 때에 여호수아가 보낸 심부름꾼들을 그 여자가 살려 주었기에 그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 그리고 그에게 딸린 모든 이를 살려주었습니다(여호6,23-25).
그리고 젊은 과부로 보아즈를 유혹했던 이방인인 룻,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이를 갈며 싫어했던 이방인을 보아즈는 아내로 삼았습니다. 조상이 번듯해야 행세하는 세상인데 예수님의 조상은 별 볼일 없어 보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다윗은 우리야라는 병사의 아내를 취하여 잠자리를 가졌고, 그녀가 임신을 했다고 하자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하여 우리야를 최전선으로 보내 죽게 한 다음, 그의 아내, 바쎄바를 취하였습니다. 그렇게 빼앗은 여인에게서 얻은 자식을 메시아의 조상으로 삼았으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감추고 싶은 죄인들이 등장함은 의미가 큽니다. 메시아의 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기묘한 방법으로 대를 이어가셨다고 할 수 있고, 또한 의인과 죄인의 장벽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룻을 등장시킴으로써 유다인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도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첩의 자식을 드러냄으로서 구박과 멸시 속에 살아가야할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줍니다.
내 부모, 혹은 윗대의 조상에서 이상한 가족관계가 형성되었다고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 사랑하시고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구원을 주시러 인간역사 안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계속 이어지는 족보의 끝에 나의 이름도 기록될 것입니다. 기왕이면 하느님의 섭리 안에 내로라하는 인물이 아니더라도 죄인으로 기록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역대 이스라엘 왕 가운데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그분 마음에 드는 아들(마태3,17)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기 위해 기름부음 받은 자요, 주님의 영을 받은 이(루카4,18) 입니다. 이제 그분의 자녀가 그분의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분의 족보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기에 앞서 그분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깊은 상처 그 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어려운 시절 한국에 선교사로 오신 파란 눈의 외국인 신부님들, 한국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한국식 성이나 이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외국 이름이 Robert인 경우 제일 앞 글자를 따서 노신부님이라고 성을 지었습니다. Maurizio인 경우 마신부님으로 이름 짓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웃기는 일이 한번 있었습니다. 
한 선교사 신부님 앞으로 정체불명의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족보 팔아먹는 업체에서 한국 신부님인줄 알고 선교사 신부님께 족보를 팔아먹으려고 집요하게 전화를 했고, 뭔지 모르는 착한 선교사 신부님, 한부 보내달라고 하셔서, 30만 원짜리 큼지막한 족보 책이 간이세금영수증과 함께 도착했더랍니다.
족보, 요즘이야 그게 뭐 대단한 거냐고, 여기지만 과거 우리 어르신들 마치 생명처럼 여겼습니다. 전쟁이라도 날라치면 집문서나 땅문서와 함께 제일 먼저 챙긴 것이 족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도 족보라는 것, 마치 뿌리, 생명,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사 다닐때 마다, 유배 갈 때, 죽음의 길을 걸어갈 때조차도 족보를 가슴에 품고 다녔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족보, 조상, 민족, 뿌리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신약성서의 첫 부분인 마태오 복음서, 그 첫 장에는 그 유명한 예수님의 족보가 줄줄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서두에 별 재미도 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족보가 줄줄이 나열되고 있는 것, 대체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왜 누군지도 잘 모르겠는 의미 없어 보이는 낯선 이름들이 복음서 서두를 장식하고 있을까요? 왜 복음서 첫 출발이 이토록 무미건조하고 흥미 없는 사람 이름으로 시작될까요?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류 그 한가운데 현존해 계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구세주께서는 인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시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간의 기도가 헛되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감히 우러러보지도 못한 정도의 천상 용모를 지니신 분, 우리 인간이 도저히 닿지 못하는 아득한 먼 곳에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의 족보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위에 두발로 굳건히 딛고 서계시는 분, 다사다난한 우리 인간사, 폭풍 속 같은 우리 인생살이 한 가운데서 들어와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예수님의 족보는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 그 안에 들어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예수님의 조상들 가운데는 인간의 위대함도 보이지만 인간의 타락과 죄의 어두운 그림자도 뚜렷이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간통행위, 솔로몬의 배교행위, 이스라엘 역대 왕들의 추문록, 왕실의 혈통 안에 버젓이 끼어들어있는 이방 여인들의 이름도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족보 안에는 상처투성이뿐인 인간의 역사, 인간의 고통, 인간의 아픔이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시아의 재림은 비록 이스라엘이 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현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스라엘 측, 다시 말해서 인간 측의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도래합니다. 거듭되는 인간 측의 불충실과 배신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와 유대관계는 지속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측의 불성실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성실하십니다.

결국 우리 인간의 깊은 상처, 그 사이를 비집고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스며들어 오십니다. 우리 인간 측의 깊은 좌절을 딛고 하느님께서 일어서십니다. 우리 인간 측의 멸망과 죽음을 기반으로 하느님께서 살아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차한 우리 인간의 일상사 안에 살아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질구질한 우리 인간 역사 안에 현존해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때로 결핍 투성이인 우리 인간사 안에서 당신 사랑의 역사를 계속 써나가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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