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루가 1,46-56)

2012. 12. 22. 오전 8:11:42

글자

 

2012년 12월 22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루가 1,46-56)

  

 

말씀의 초대
자식이 없던 한나가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낳은 아이 사무엘을 데리고 성전으로 올라가 사제 엘리에게 보인다. 주님께서 보내 주신 아들이기에 주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다(제1독서). 엘리사벳의 축복의 인사에 마리아 역시 노래로 화답한다. 이 노래를 통해 마리아는 전능하신 분께서 자신에게 하신 일을 찬송하며 이스라엘이 구원될 것임을 예고한다(복음).

☆☆☆

한나는 자식이 없었지만, 주님께 기도하여 사무엘을 얻었다. 한나는 아이가 젖을 떼자, 제물을 들고 아이와 함께 성전으로 올라가, 엘리 사제에게 아이를 주님께 바치겠다고 서약한다. 이 아기가 후에 다윗에게 기름을 부음으로써 왕정이 확립된다(제1독서). 엘리사벳의 찬미가를 듣고, 마리아 또한 찬미가를 부른다. ‘마리아의 노래’는 초대 교회 때부터 불린 성모님의 찬미가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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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우리는 다른 이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 기쁨을 느낍니다. 더욱이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에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성모님만큼 하느님의 사랑과 신뢰를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의 노래’는 하느님께 받은 사랑과 신뢰에 대한 환희의 노래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감사하며 사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앤서니 퀸이 주연한 ‘길’이라는 오래전의 흑백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 잠파노가 유치장에 들어가자 주인공의 여자 친구인 젤소미나는 실의에 빠집니다. 그러자 주인공의 친구가 그녀를 위로해 주려고 돌멩이 하나를 손에 쥐어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젤소미나,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가 있어. 이 돌멩이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세상 모든 것에도 의미가 있을 수 없어.”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가 있다면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요?
‘마리아의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헤아려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낮고 천한 우리를 보살피시면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궁핍과 질병, 두려움과 불안 등 온갖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참으로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한다면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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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께서 복되신 분으로 일컬어지시는 것은 그분이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셨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엘리사벳의 증언대로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보잘것없는 시골 여인들이었던 엘리사벳이나 마리아께서 복된 여인들로 기록된 것은 바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의 찬미가를 듣고 화답하신 ‘마리아의 노래’는 가난한 이들의 염원이 절실히 담긴 신앙 고백입니다. 그 찬미가는 예수님을 통하여 자유와 해방을 주시러 오시는 하느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가난한 이들의 애절한 노래이며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시고, 불의한 사회 구조와 질서를 뒤집어엎으시어 역사 속에 새로운 변혁을 이룩하십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은 해방되어 참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곧 오실 아기 예수님은 세상과 인간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인생길과 인간 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바르게 이끌어 주십니다. 마리아께서는 당신 태중에 계시는 그분께 인류를 대신하여 지극히 간절한 심정으로 찬미를 드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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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색깔이 있습니다. 살면서 만든 것이지요. 밝고 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갑고 어두운 사람도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살려는 이도 많지만,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분위기로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역시 오래 하면 향기를 지니게 됩니다. 그런 이는 가까이 가면 밝고 경건한느낌을 줍니다. 그렇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어두운 느낌을 주는 신앙인도 많이 있습니다.
복음의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가를 남기십니다. ‘마리아의 노래입니다. 성모님의 향기가 묻어 있는 기도문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셨지만 겸손으로 일관하신 성모님의 신앙 고백입니다. 교만한 이를 흩으시고, 비천한 이를 높이셨다는 것이 내용의 핵심입니다.
우리 역시 살면서 주님의 도움을 많이 체험했습니다. 어려운 일들이 쉽게 풀려 나간 경험입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실패인데도, 뜻하지 않은 사람이 나타나 도와주었던 사건입니다.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개입이었습니다. 축복을 우연으로 여기는 것이 교만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를 내치신다고 하셨습니다. 늘 겸손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축복은 다시 옵니다. ‘마리아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입니다


 

마니피캇 - 성모의 노래는 곧 예수님의 노래

- 박상대신부-

오늘 복음은 루가복음의 전사(前史) 중 네 번째 단락에 해당하는 ‘마리아의 노래’를 들려준다. “Magnificat anima mea Dominum ...”(내 영혼이 주님을 크게 찬미하며 ...)라는 시작부분의 첫 글자를 따 ‘마니피캇’(Magnificat), 또는 ‘천주 찬미가’로 불리는 마리아의 노래는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하고 장엄하며, 가히 혁명적이고 깊은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이다. 마니피캇을 마리아가 직접 지어 읊었다고 생각하는 성서학자들은 거의 없다. 루가가 복음서를 집필하기 전에 이미 부활공동체가 예수의 인류구원사건을 기리기 위해 지어 불렀다는 것이 통설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학자들은 구약시대 말기에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이 메시아사상과 결부시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이와 유사한 노래를 읊었다고 주장한다.


마리아의 노래와 비슷한 내용의 찬가는 이미 구약성서에 있다. 엘카나의 아내이자 석녀(石女)였던 한나가 사무엘을 낳고, 아이를 야훼 하느님께 봉헌하며 바친 감사와 찬미의 기도가 바로 그것이다.(1사무 2,1-10) 사무엘을 통하여 한나의 입장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신의 처지가 이처럼 바뀌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그토록 원했던 아들을 얻었기 때문이지만, 한나는 이 모든 것이 야훼 하느님의 크신 은총임을 깨닫고 그분께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기도한 것이다. 물론 마리아는 한나와 같은 처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행한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이 비단 자신에게뿐 아니라 마리아 안에 잉태된 메시아를 통하여 온 세대에 베풀 것으로 깨달은 것이다. 메시아는 온 세대의 처지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하느님 고유의 방식으로 준비된 역전과 개벽을 마음의 눈으로 본 것이다. 사람은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구별된다. 있는 자는 통상 부유하고 권세를 가졌으나 거만하고 교만한 자들이다. 없는 자는 비천하고 배고픈 이들이지만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거만한 자들을 내치시고 비천한 이들을 거두어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마니피캇의 내용은 앞으로 메시아 예수께서 세상에 대하여 펼치실 일이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이 일을 오늘 마리아의 입에 노래로 담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마니피캇은 분명 마리아가 부른 감사와 찬미의 노래이다. 마리아가 어떻게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누구든 이런 생각을 한 번은 해보았을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저 소박하고 순진하기만 했을 마리아, 배운 것도 넉넉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마리아, 청년 요셉과 약혼하여 혼인날을 기다리며 매사에 조신(操身)하고 있었을 마리아가 어떻게 이런 엄청난 지식이 담겨있는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사실은 우리가 마리아의 노래 때문에 놀라기 전에 어제 복음에서 엘리사벳의 마리아에 대한 칭송에서부터 놀랬어야 했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가 1,42-45)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약간의 억측이 담긴 주장을 했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는 순간 성령 하느님께서 태아인 요한을 시켜 이와 같은 칭송을 드렸다는 것이다. 즉 성령을 통하여 요한이 예수께 드린 칭송이었다는 말이다.


하느님의 은혜를 입은 엘리사벳이 요한을 잉태하고 여섯 달을 지내는 동안은 놀라움과 기쁨의 나날이었다. 엘리사벳은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하느님 성령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고, 자기 안에 성령께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갔던 것이다. 마니피캇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마리아가 천사의 예방을 받고 메시아 탄생의 예고를 접하는 순간 한줄기 내적 광명이 그녀를 꿰뚫고 지나가며 그녀의 정신을 밝혀주었고 지식을 머리에 담아 주었다. 엘리사벳보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훨씬 더 많이 자신을 열고 있었다. 그래서 마니피캇은 성령의 노래이며,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신 메시아 예수의 노래인 것이다.
 

 

<인생은 바이킹>

-양승국신부-

 모처럼 저녁시간 서울시내를 나갔었는데, 한 대형 백화점 앞은 그야말로 별세계였습니다.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안개 등, 휘황찬란한 성탄장식으로 저는 딴 세상에 온 듯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성탄장식처럼, 동화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지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의료 사고로 인해 한순간에 사랑하는 가장을 잃고 억울해하는 한 유족들을 접하고 할말을 잃었습니다.

한 몇 일 차가운 강물위로 꽃잎처럼 떨어져 내린 여리디 여린 영혼들을 생각하며 밤잠을 설칩니다.

뿐만 아니지요. 마땅한 거처도 없이 잠수에 들어간 외국인 근로자들의 하염없는 눈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삭막하고 팍팍한 시절입니다. 진정 가슴 설레는 일은 찾아보기가 힘든 나날들입니다. 마음 두근거리는 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 간절하고 애틋한 기다림에 밤잠을 설치게 되는 일은 점점 사라져만 갑니다.

"도대체 왜 이런가?"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우리가 너무도 높은 곳까지 올라와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실은 전혀 그게 아닌데, 우리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이 올라 갈 데까지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 분명합니다.

놀이동산에 있는 바이킹을 탈때마다 "아! 그래 인생이란 이런 것이구나!"하고 무릎을 칩니다.

우리네 인생은 하늘 높은 곳을 향해 힘차게 올라가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가슴 섬뜩함을 느끼며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활짝 꽃피어나는 장밋빛 나날일 때가 있는가 하면 죽음보다 더 괴로운 회색 빛 나날도 있습니다.

희망으로만 가득 찬 유년시절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 내려놓고 떠나야할 임종의 순간이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떠나갑니다. 오직 주님만이 영원한 설렘의 대상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인연들도 50년 60년이면 다 떠나갑니다.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염원했던 지위도 도달하기 무섭게 물려주고 내려와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애써 모아왔던 재물도 언제 빠져나갔는지 모르게 빠져나갑니다.

그 모든 것들은 스쳐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결코 영원한 설렘, 영원한 동경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영원한 우리의 연인이자 희망, 설렘의 대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마니피캇(성모의 노래)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님을 향한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성모님의 생애는 온통 주님의 현존으로만, 주님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생애였습니다.

주님으로 가득 채워졌던 성모님의 인생이었기에 현실이 아무리 각박하고 고통스럽다해도 끝까지 표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비천함을 돌보시는 하느님

반영억라파엘신부

성탄이 코앞에 다가 왔습니다. 낯선 카드와 선물을 받으며 죄송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저는 아직 카드를 쓸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과분한 선물을 받기만 하며 빚을 지게 됩니다.
저는 최근 몇 해 동안은 카드를 보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매일 같이 우편물을 확인 합니다. 어느새 받을 줄만 알고 줄 줄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탄을 맞이하여 무엇보다도 받는 것에 익숙해진 자신에 대해 거듭 태어나야하겠습니다. 


마리아는 시골의 보잘것없는 여인이었습니다.
힘없고 가난하고 비천한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말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1,47-48) 비천함을 굽어보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며 또 희망입니다.
우리의 비천함도 돌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주님을 믿고 순명 하는 가운데 세상 사람들이 그를 복된 여인,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 거룩하신 어머니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느님의 가르침을 믿고, 믿는 바를 행동으로 실천하게 될 때 비로소 복된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때때로 자신의 처지나 여건, 환경을 비관합니다. 능력이나 성격을 상대와 비교하며 위축되어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 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루카1,51-53) 하느님께서는 지금 나의 처지를 인정해 주시고 그 안에서 구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지금은 보잘것없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면 빛나는 존재입니다.

젊은 날에 아이를 배지 못하는 돌계집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엘리사벳도 늙은 나이에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일을 해주셨구나(루카1,25) 하고 고백하였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자신의 처지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을 믿고 충실한 삶을 살았으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전능하신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나의 비천한 처지를 돌보시는 하느님을 기억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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