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 수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마태오 10,17-22)

2012. 12. 26. 오전 9:17:27

글자


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스테파노는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 뽑은 부제이다. 식탁 봉사를 위한 일곱 봉사자의 하나로 뽑힌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는 일뿐 아니라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진리를 증언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또한 유다인들과 논쟁을 벌일 때마다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사도 6,8) 스테파노는 지혜로운 언변으로 그들을 물리쳤다. 유다인들은 스테파노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그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결국 그는 돌에 맞아 순교함으로써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59-60).  

 

 

 

말씀의 초대

스테파노는 죽는 순간까지,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며 기도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의 뜻인 ‘화관’처럼 첫 순교자의 영예를 누리게 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제자들이 당할 고초를 미리 알려 주신다. 제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 앞에서 증언할 것인데, 성령께서 변론할 말을 알려 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받는 미움을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복음).

☆☆☆

스테파노는 죽는 순간까지 기도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선포하며 믿음을 고백한다. 그의 이름의 뜻 ‘면류관’처럼 그는 영예로운 첫 번째 순교자가 된다. 이를 목격한 사울이라는 젊은이는 뒷날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고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베드로와 함께 초대 교회의 기둥이 되어 이방 지역에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를 세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예고하신다. 예수님 이름 때문에 교회의 역사 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박해를 받고 순교하였다. 순교는 구원의 면류관이다(복음).

 

오늘의 묵상

스테파노는 그리스도를 피로써 증언한 첫 번째 순교자입니다. 불과 얼마 전,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유다 지도자들의 증오가 극에 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려움 없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선포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어 놓을 각오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엇이 그를 이처럼 변화시켜 놓았을까요?
스테파노에게 그리스도는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에게 주님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스테파노의 모든 관심사는 주님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테파노는 죽는 순간까지 주님께 의지하며 기도할 수 있었고, 목숨을 바쳐 믿음을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유다인들의 폭력을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견디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을 본받아 자기를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주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첫 순교의 월계관을 썼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를 보이지 않는 박해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 보이지 않는 박해는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받았던 박해보다 영혼에 더 치명적입니다. 칼과 몽둥이 대신 새로운 형태의 박해가 우리 영혼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영혼을 감옥에 가두는 것은 이기주의와 물질주의입니다. 우리가 한 번 이 감옥에 갇히면 풀려나기 어렵습니다. 스테파노의 믿음이 그 감옥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 믿음은 우리를 모든 속박과 억압에서 자유롭게 해 줄 것입니다.

☆☆☆

우리가 잘 아는 ‘민들레’라는 다년생 풀이 있지요. 짓밟혀도 잘 죽지 않고 즙이 매우 쓰기 때문에 가축들도 잘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노란 색의 꽃이 4~5월에 피는데 민들레의 꽃은 생명을 다하면 홀씨가 되어 날아갑니다. 그리고 어디엔가 터를 잡으면, 그곳에 자기 영토를 만들어 다시 꽃을 피우면서 곳곳에 퍼져 나갑니다.
민들레의 이런 생존 방식은 마치 초기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스테파노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순교자입니다. 스테파노의 순교 사건과 함께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가 본격적으로 박해를 받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마치 민들레의 홀씨처럼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방인 지역으로 삶의 터를 옮겨 세상 곳곳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우고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도 초기 그리스도교가 들어와 극심한 박해를 받았을 때 민들레 홀씨처럼 곳곳으로 숨어 다니며 그리스도교를 전파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방방곡곡이 성지가 되었고, 온 땅이 그분들의 신앙의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선조들의 믿음 덕분으로 우리 후손들은 성지에서 힘을 얻고 위로를 받으며 신앙의 큰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지요(요한 12,24 참조). 신앙인은 이렇게 자신을 바치고 희생함으로써 생명을 얻고, 세상은 그 축복으로 하느님의 평화를 누립니다. 비록 우리는 순교 시대를 살지는 않지만, 예수님 때문에 바친 우리의 희생과 사랑은 민들레 홀씨처럼 이 땅 누군가에게 날아가 구원의 선물이 되고 축복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세상 누군가를 위해 작은 희생이라도 바치지 않으시렵니까?

  


 

며칠 전 저는 감기몸살로 무척이나 앓았습니다. 사실 그동안 운동을 충실하게 했었기 때문에 감기 따위는 제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교만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난 연말 계속된 강의, 성탄 판공, 방송출연, 예비신학생 입시 준비, 서품식 준비 등으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감기 몸살을 얻게 되었네요. 온 몸을 누가 몽둥이로 때리는 것 같고, 춥고, 또 머리가 아파서 견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를 더욱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막힌 코였습니다. 코로 숨 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지요.

사실 평소에는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 자체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누가 “지금부터 10분 동안 숨을 쉬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숨을 쉽니까? 아니면 “지금 10번 내쉬고, 10번 들이마셔야지.”라면서 숨을 쉬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웁니까? 아닙니다. 숨을 쉬는 행동은 나도 모르게 나를 위해 내 몸이 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며 놀라운 기적인 것입니다.

나의 몸만을 봐도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 가득 담긴 기적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준은 늘 세상에 있습니다. 많은 재물을 얻어야,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기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병원에서도 고치기 힘들다는 말을 들은 환자가 완치되어야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야지만 기적이고, 반대로 남이 원하는 것을 얻으면 시기심이 발동해서 왜 하느님은 차별을 하시냐고 원망을 합니다.

이렇게 내 기준이 세상에 있으면 절대로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나의 기준이 오로지 주님께 맞추어 있는 사람만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으며, 기적을 통해 큰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기준이 주님께 맞추어 있는 사람은 곧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어떠한 순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이러한 사람만이 세상의 어떤 고통과 시련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주님을 향해 나아가며 날마다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그러한 한 사람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 부제입니다. 유다인들의 거짓 진술로 돌에 맞아 순교하는 그 순간에도 성인은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라면서 주님만을 바라보았고 주님께 철저히 의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스테파노의 이름 뜻처럼 하늘의 왕관, 면류관을 차지하는 놀라운 기적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자주 고통과 시련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 내 자신은 과연 주님과 함께 하고 있었는지를 반성해야 합니다. 혹시 불평불만으로 주님을 더욱 더 멀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스테파노 성인처럼 주님께 더욱 더 매달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았던지요? 기적을 체험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의 체험은 주님께 향한 마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쌩텍쥐페리).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1회전 KO>

 -양승국신부-. 그들이 했던 일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들의 연장이었습니다. 가는 곳 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회개를 외쳤으며, 환자들을 치유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였습니다. 사도들의 하루 일과는 잘 나가는 연예인 못지않은 바쁜 스케줄로 꽉 차 있었습니다.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그리스도교가 빠르게 확장되어가면서 사도들에게는 점점 더 많은 일들이 주어졌습니다

 사도들은 자연스럽게 복음 선포의 보조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는데,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 가운데 자질을 갖춘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눈여겨보았고 동역자로 발탁했습니다. 선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기준 3가지는 신앙심이 깊고, 성령으로 충만하며, 또한 지혜로움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스테파노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가입한 스테파노는 예수님께 완전히 매료되었고 그의 복음에 깊이 심취하고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스테파노는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젊음과 열정, 혈기왕성함을 온통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 2의 예수 그리스도화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스테파노는 그 어떤 사도 못지않은 열렬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사람들은 스테파노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스테파노가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 그리고 탁월한 능력, 그리고 다른 무엇에 앞서 성령으로 충만한 인물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테파노는 사도들 못지않게 마치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습니다. 불치병자들을 치유하였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언변이 대단했던 스테파노는 논리정연하고도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테파노의 말씀과 행적에 감탄하며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스테파노의 대단한 모습에 유다인들의 심기는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큰 위기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대 말빨세기 따지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던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인들로부터 교묘한 변증법도 배워 익혔습니다. 율법학교에서 갈고 닦은 율법과 전통에 관한 지식도 대단했습니다. 그밖에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설교 기법, 대화법도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판정패도 아니고 1회전 KO패였습니다. 워낙 탁월한 언변을 갖춘 데다 지혜롭지,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사람들은 싸워보지도 못한 채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논리가 딸리는 사람들, 기초가 덜 된 사람들이 쉽게 선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억지요, 고집이요, 폭력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들이 선택한 것은 불법이요 권모술수였습니다. 화가 단단히 난 그들은 사람들을 매수해서 유다지도층 인사들에게 가서 스테파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했다며 거짓 증언을 하게 합니다. 그 결과 스테파노는 의회 법정 앞으로 끌려갑니다.

 이미 분위기는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과도 같은 각본으로 인해 스테파노의 목에는 꼼짝달싹하지 못할 죽음의 올가미가 걸린 것입니다. 잔인하고 무고한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스테파노는 직감했습니다.

 그러나 적대자들 앞에서 스테파노가 보여준 모습은 너무나 당당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였지만 단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 유명하고 통쾌한 유다 의회 앞 스테파노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그의 설교는 차분하고 논리정연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구원의 역사를 정확하게 상기시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역사의 정점에 서 계심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우상숭배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 끝까지 하느님의 성령을 거역하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고발했습니다. 특히 법정에 둘러 서 있던 대사제와 의회 의원들, 당신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외쳤습니다.

 바로 당신들, 하는 스테파노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의회 의원들은 이를 갈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스테파노를 성 밖으로 끌고 가서 돌로 치기 시작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법정에서의 그 절박한 순간, 그리고 온 몸에 돌을 맞으며 죽어가던 순간에도 주님의 성령으로 가득 찼던 스테파노는 마음의 평정을 조금도 잃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 앞으로도 논쟁을 벌이기 위해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다가옵니다. 그때 우리에게도 필요한 태도가 있습니다. 스테파노가 지니고 있었던 당당함입니다. 황당하고 어불성설인 그들의 논리에 맞서기 위한 논리정연함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령 충만함입니다.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안용태 신부-

  

사제로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뜻을 나의 강론으로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오랫동안 그러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요즘 와서 느끼는 것은, 나는 대부분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좋은 강론이다.’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분은 많아도 실제로 삶이 변하는 교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하느님의 능력은 적어도 제게는 다른 방법으로 드러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오늘 독서에서 스테파노 부제의 긴 설교를 통해 하느님의 업적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 선포되었지만 군중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분의 설교를 기억하기보다 그분의 순교를 기억합니다.
여기에서 저는 한 가지 저를 위한 깨우침을 얻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진리는 말보다 더욱 강력한 전파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은 복음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헌신이라고. 그리고
그런 헌신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다시금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나는 정말로 모든 것을 복음을 위해 내놓고 사는 사람인가. 다시 꺾인 무릎에 힘을 주고 일어나 걸어야 하겠습니다.

 




순교는 죽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사는 것

-
홍성민 신부-

 

성 스테파노는 예수님 때문에 죽음을 당한 우리 그리스도교의 첫 순교자이십니다. 사람들은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이다 이길 수 없자 화를 냅니다. 그를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입니다. 성탄의 기쁨도 잠시이고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아무리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셔도, 나에게는 과연 스테파노 성인과 같은 용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모여 남의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용기가 없어 방관하는 우리입니다.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리 옳은 말이나 행동이란 확신이 들어도 망설이게 되는 우리입니다. 그러기에 순교라는 말 앞에는 더욱 자신이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나라를 위해 살아왔고 가족을 위해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살아왔던 이유이고 목적이기에 그들은 목숨 걸 수 있습니다. 결국 순교는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위해 죽는 사람은 결국 그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순교로 하느님의 뜻을 살아내었던 성 스테파노의 축일을 지내는 오늘, 우리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마태오 10,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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