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22일 목요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마르3,7-12)
제1독서<나의 아버지 사울께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시네.>(1사무18,6-9; 19,1-7)
6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이고 군대와 함께 돌아오자,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나와 손북을 치고 환성을 올리며, 악기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면서 사울 임금을 맞았다.
7 여인들은 흥겹게 노래를 주고받았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8 사울은 이 말에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리니, 이제 왕권 말고는 더 돌아갈 것이 없겠구나.”
9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다.
19,1 사울이 아들 요나탄과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탄은 다윗을 무척 좋아하였기 때문에,
2 이를 다윗에게 알려 주었다. “나의 아버지 사울께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시니, 내일 아침에 조심하게. 피신처에 머무르면서 몸을 숨겨야 하네.
3 그러면 나는 자네가 숨어 있는 들판으로 나가, 아버지 곁에 서서 자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겠네. 그러다가 무슨 낌새라도 보이면 자네에게 알려 주지.”
4 요나탄은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좋게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님, 임금님의 신하 다윗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임금님께 죄를 지은 적이 없고, 그가 한 일은 임금님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5 그는 목숨을 걸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였고, 주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임금님께서도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공연히 다윗을 죽이시어, 죄 없는 피를 흘려 죄를 지으려고 하십니까?”
6 사울은 요나탄의 말을 듣고,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다윗을 결코 죽이지 않겠다.” 하고 맹세하였다.
7 요나탄은 다윗을 불러 이 모든 일을 일러 주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을 사울에게 데리고 들어가, 전처럼 그 앞에서 지내게 하였다.
<화답송>시편56,2-3.9-10ㄱㄴ.10ㄷ-11.12-13(◎5ㄴ) ◎ 하느님께 의지하여 두려움이 없으리라.
○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를 짓밟는 사람들이 온종일 몰아치며 억누르나이다. 적들이 온종일 짓밟나이다. 드높으신 하느님, 저를 몰아치는 자들이 많기도 하옵니다. ◎
○ 저는 뜨내기, 당신이 적어 두셨나이다. 제 눈물을 당신 자루에 담으소서. 당신 책에 적혀 있지 않나이까? 제가 부르짖는 그날, 그때 원수들은 뒤로 물러가리이다. ◎
○ 하느님이 내 편이심을 나는 아네. 하느님 안에서 나는 말씀을 찬양하네. 주님 안에서 나는 말씀을 찬양하네. ◎
○ 하느님께 의지하여 두려움 없으니,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하느님, 제가 당신께 드린 서원, 감사의 제사로 채우리이다. ◎
복음
<더러운 영들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마르3,7-12)
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8 또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9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10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연중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 (1사무18,6-9; 19,1-7)
여인들은 흥겹게 노래를 주고 받았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7)
'노래를 주고받았다'에 해당하는 '왓타아네이나'(wathaaneina)의 원형 '아나'(ana)의 기본적인 의미는 '노래하다'이다.
그러나 '아나'(ana)는 '대답하다'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왓타아네이나'는 '한쪽에서 부르고 다른 한 쪽에서는 화답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는 노래의 종류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흥겹게'로 번역된 '하메사하코트'(hamesahaqoth; as they danced; as they played; '뛰놀며')의 원형 '사하크'(sahaq)는 부정적 의미로도 쓰이는 표현이다.
즉 능동형으로 사용된 경우에는 '비웃다', '조소하다'라는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고, 여기처럼 강조 능동형으로 사용된 경우에는 '악기를 연주하다', '기뻐하다'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져, 어떻게 보면 비웃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온몸으로 즐거워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러한 독특한 표현을 통해서 이스라엘 군대의 개선 퍼레이드의 축제적 분위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한편 '수천'에 해당하는 '빠알라파이우'(baalapaiu; as thousands)는 '천'을 뜻하는 '엘레프'(ellep)의 복수형에 남성 3인칭 단수 소유격 어미가 붙은 형태로서 문자적으로는 '그의 수천명'을 의미하고, '수만'에 해당하는 '뻬리브보타이우'(beribbothaiu; his tens of thousands)는 '만'을 뜻하는 '레바바'(rebaba)의 복수형에 남성 3인칭 단수 소유격 어미가 붙은 형태로서 문자적으로는 '그의 수만명'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서 비교되는 요소인 '천'과 '만'에 해당하는 '엘레프'와 '레바바'는 숫자적 의미 이상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히브리어에서 '레바바'(rebaba)는 '수없이 많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레바바'와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명사 '라브'(rab)는 '무수한'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 선두에 있다는 의미로 '우두머리'라는 뜻도 가진다.
그런 차원에서 다윗이 죽인 자의 수효로 묘사된 '수만' 혹은 '만만'이라는 숫자는 보통 군인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뛰어난 '우두머리'나 행할 수 있는 용맹스러운 전과임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다.
따라서 사울은 '수만', '만만' 보다 적은 '수천' 혹은 '천천'으로 자신의 치적을 노래한 산술적 의미 때문에 노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 그 노래에는 다윗이 사울 임금보다 더 훌륭한 우두 머리라는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불쾌해 하면서 몹시 노했던 것이다.
사울이 사무엘서 상권 18장 8절에서 "이제 왕권 말고는 더 돌아갈 것이 없겠구나"라고 불편한 심기를 표현한 배경에는, 바로 본문의 내용이 왕권 혹은 왕위로 이해될 수 있는 '우두머리'라는 의미까지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중 제2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예수님의 활동을 요약하는 오늘 복음은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오고 있음을 전합니다.
“큰 무리”라는 표현이 두 번 반복되며, 적어도 외적으로는 지금까지 예수님의 활동이 성공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무리는 “갈릴래아에서,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
곧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의 거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온 이스라엘 방방곡곡에서 몰려들었습니다.
이는 어제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이 헤로데 당원들과 예수님을 없애기로 모의한 모습과 대비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뜻밖입니다.
그분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을 피하시려고 제자들에게 거룻배 한 척을 준비하라고 이르십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이를 고쳐 주셨기에, 누구나 그분께 손을 대려고 밀려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을 보기만 하면 엎드려 소리 지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가 처음 나옵니다.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침은 신앙에서 나온 고백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온 외침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들을 통하여 당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는 듯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꾸짖으십니다.
예수님의 정체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 안에서’ 비로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깨닫고,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도 십자가 죽음의 길을 함께 걸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 제2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수많은 사람이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는 더러운 영들의 고백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을 수 있게 하여 주는 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사람들에게 당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을까요?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처음 고백한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모두 지켜본 백인대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하고 말하였다”(15,39).
예수님의 진짜 모습이 십자가 위에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진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기적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당신 목숨을 내놓으심으로써 드러나십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는 더러운 영들의 고백에는 십자가가 빠져 있습니다. 기적만 있을 뿐입니다.
악은 이렇게 우리가 십자가로 향하지 않게 만듭니다.
십자가 없이 기적만 바라보며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고백하게 만듭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을 바라게 하고,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는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요즘 우리 성당에서 하는 것들은 아닌가요? 9일기도, 100일기도 등등)
조금만 힘들면 언제든 하느님께 등을 돌리게 만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좋아하고 편한 방법으로만 우리를 구원하셔야 한다.’는 교만이 우리 안에서 자라게 합니다.
고통 앞에서, 어렵고 힘든 일 앞에서, 진짜와 가짜가 명확히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을 향한 요나탄의 우정이 진짜라는 것도 죽을 위협 앞에서 드러나게 된 것처럼(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이 진짜임을 십자가 위에서 드러내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주님께서는 우리를 십자가로 향하게 하십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를 위한 진짜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은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믿음입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2주간 목요일]
많은 병자 치유
(마르 3,7-12)
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8 또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 일곱 지역의 이름입니다, 갈릴래아를 기점으로 남쪽 동쪽 북쪽입니다.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와서 큰 무리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9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10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 큰 무리, 군중, 그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침 받고 싶어서 몰려왔습니다. 고통 받는 그 많은 이들이 치유 받고 싶어서 손을 대려고 몰려들면 예수님을 밀쳐 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댈까봐 타실 배를 준비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왜 그랬을까? 많은 이들이 몰려들어 당신께서 밀려나는 등 사고가 날까봐? 그 답을 다른 장소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마르5,24-34)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 재산과 시간만 낭비했습니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 피를 흘리는 여자가 다른 이의 옷을 만진다는 것은 그 다른 이가 부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레위15,25-27참조)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 구원 받았다, ‘네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하십니다. 그러니까 열 두해 동안 그 누구도 어느 의사도 그 여자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목자 없는 양처럼 이 회당, 저 회당(온갖 피정) 길을 잃고~ 큰 무리, 군중이 되어 쫓아 다녔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아픔, 고통을 너무나 잘 아시는 예수님이기에 애통해 하시는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그들을 위해 당신이 타실 배(교회)를 준비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헤매지 않고, 밀쳐대는 일 없이 참 목자, 의사이신 예수님이 계신 그 참 교회에서 주님의 양식(말씀)으로 온갖 질병(죄)에서 벗어나 자유하라고~ 그러면 소문을 들은 그 군중 속에서 밀쳐대는 이리 없게 될 것이니까요.
(에제34, 21-22) 21 너희(지도자들)가 약한 양들을 모조리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내고 뿔로 밀쳐 내어 밖으로 흩어 버렸으니, 22 내가 내 양 떼를 구하여 그것들이 더 이상 약탈당하지 않게 하겠다. 내가 양과 양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
= 율법을 사람의 규정, 교리로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 그 힘으로 사람들을 판단하며 하느님의 계명, 나무 하나의 희생, 그 대속의 죽음 그 사랑을 알려 주지 않았던(탈출15,25참조) 그래서 그 하느님의 대속 그 진리를 잃어버리게 했던 그 사랑(법)을 약탈했던 그 지도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참 목자, 참 의사이신 예수님을 진리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한10, 7-11)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 값으로 죄인들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의지하면 예수님과 하나, 한 몸이 되어 이곳저곳으로 헤매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24, 23-25) 23 그때(시련)에 누가 너희에게 ‘보라,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다!’, 또는 ‘아니, 여기 계시다!’ 하더라도 믿지 마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큰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 죄의 덮으심, 그 하느님의 대속의 계명을 사람들의 윤리의 계명으로 가르치는 것, 거짓입니다.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해 둔다. 26 그러므로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광야에 계시다.’ 하더라도 나가지 마라. ‘보라, 골방에 계시다.’ 하더라도 믿지 마라.
=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을 참 목자(의사) 참 진리로 믿고, 의지 한다면 내가 진리를 갖은 자가 되어 헤매지 않게~ 온갖 종교 행위로 시간 낭비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의 시간은 곧 생명입니다. 그 살아있는 시간에 예수님을 진리로 그분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에페5, 16) 16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 주님과 한 몸 되기 위한 시간을 쓰는 것, 신앙 생활입니다.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질병의 치유가 아닌 우리 죄의 용서, 구원을 위해 속죄 제물로 대신 죽으신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진리로 믿고 의탁 하는 것입니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예수님을 치유의 예수님으로 소문을 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복받는데~ 매일미사 열심히 다녀봐~ 너희의 행실로 잘 섬겨봐~ 너희 뜻 그 기도 잘 들어 주셔~ 하면서 ...... 그러나 그런 예수님으로 사람들에게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는데 듣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진리(십자가)가 아닌 자기 자랑 잘 하는 것입니다.
(1요한2. 2) 2 그분(예수)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 예수님께서 내 죄 대신 죽으시고 당신의 생명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그것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福입니다.
♡ 아멘 -*^ㅇ^*-
연중 제2주간 목요일 복음(마르3,7~12)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9)
예수님께로부터 선포되는 복음과 능력의 치유 행위는 바리사이들과 같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극단적인 반대자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을 덧입으려는 추종자들을 양산하는 대조적 결과를 낳았다.
마르코 복음 3장 8절의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는 것은 온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한순간에 몰려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관한 소문이 퍼지자 이곳 저곳에서 끊임없이 계속해서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음을 묘사한다.
이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여기서 '거룻배 한 척'에 해당하는 '플로이아리온'(ploiarion; a small ship)를 마련하라고 했을 때, '마련하다'에 해당하는 '프로스카르테레'(proskartere; should wait on; ready for)는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다', '온 힘을 기울여 대기하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당신께 몰려든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작은 배를 준비시키신 것은, 여기의 본문 외에도 하느님 나라의 여러 비유를 가르치시기 위한 경우도 있었다(마르4,1).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히 마르코 복음 3장 10절에 나오는 데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전능하신 제2위 천주 성자 하느님이시므로 신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어려움을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병고침이나 자연 재해를 다스리는 목적 이외에, 당신을 신기하게 보이도록 하는 깜짝 놀랄 기적은 극히 제한함으로써, 당시 희랍 사회에 성행하던 미신적인 '신적 인간'으로 비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마르코 복음 3장 12절에 나오는 데로, 성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이루어질 때까지, 말씀과 영적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선포되는 과정에서 당신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는 것을 피하셨고, 특히 더러운 영들을 통해 당신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로 알려지는 것을 더욱 원치 않으셨다.
우리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복음 전파 뿐만 아니라 소위 인기와 명성의 바다에 익사하지 않기 위해서 '거룻배 한 척'을 미리 준비시키고 대기시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전교가 잘 되는 한 장소에서 계속해서 오랫동안 머무시지 않고, 또한 당신의 인기와 명성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다른 곳으로 떠나시기 위해 '거룻배 한 척'을 미리 준비하시며 그곳과 거리를 두신다.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만을 생각하시고 기도하시기 위해 한적한 곳으로 가시기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곳에 전교하러 가시기 위해서 인간성의 모든 찌꺼기와 폐단을 초월하시는 동선을 그리신다.
2026년 01월 22일 목요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많은 군중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그분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고, 하시는 일마다 신비로움이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병이 낫기를 바라며, 구원의 희망을 품고 예수님을 만나고자 몰려들었습니다.
광야와 같은 삶 속에서, 메마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사막의 오아시스이며 짙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몰려드는 군중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거룻배 한 척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니 다음에 오라고 하실 수도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과 눈을 맞추시고 마음을 나누시고자 하셨습니다.
그 안에는 관심과 배려와 사랑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뵐 때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왜 예수님을 찾는지, 그분께 무엇을 청하는지. 이것이 식별입니다. 식별의 과정이 없으면, 우리는 자칫 자신의 욕망만 채우려는 목적으로 예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잘 만나시고자 거룻배를 마련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도록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을 찾고, 그분 안에 머무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참된 것을 식별하고, 그분께서 말씀하신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의 삶을 이끄는 힘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연중 제2주간 목요일]
天國은 그리스도를 따라 올라가는 곳
인간이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그들의 죄로 죽으실 필요가 없으셨다.
복음(마르3,7-12)
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8 또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9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10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 갈릴래아와 유다, 예루살렘, 이두메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까지 큰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육(肉)을 입으신 주님께서 그 많은, 큰 무리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다 상대(相對)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제자들에게 배 한척, 곧 교회(敎會)를 세우라는 말씀을 하신다. 어떤 교회일까?~
(마태16,16-18)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 그 죄의 속죄 제물로 오신 그리스도시다.(요한3,16) *이 반석(盤石), 곧 ‘베드로가 고백한 말, 그리스도’ 위에 교회(敎會)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그들의 죄값을 대속, 곧 당신의 목숨으로 다 갚으셨기에 저승의 세력이 감히 손댈 수 없는 교회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契約)위에 세워진 교회다.
하느님께서 창조 이전 예비(豫備)하셨던 그리스도(에페1,4), 그 새 계약으로 온갖 영적(靈的)질병들이 고침 받을 수 있음을 , 용서 받을 수 있음을,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의 능력(能力)이다.(에페1,20-23참조)
(에페1,23)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 그리스도로 새로운 피조물(被造物),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영원히...........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 더러운 영들, 곧 거짓 사도(使徒), 거짓 가르침은 절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새 계약(契約)을 믿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율법(律法), 그 옛 계약(契約)이 치워졌음을 믿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히브10,9)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죄인(罪人)인 우리가 영구(永久)히 완전하게, 거룩하게 되었음을 믿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히브10,14) 그래서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하신 그 하느님의 약속을 믿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히브10,17)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시련(試鍊), 환란(患亂) 안에 하느님의 뜻인 우리 구원의 희망이 있음을 모르게 하기 때문이다.
(2코린4,17-18) 17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마련해 줍니다. 18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 거짓 사도는 보이는 것을 위해,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신앙생활을 잘 하라고, 곧 자녀의 대학합격, 사업 번창, 가족들의 건강. 등을 위해 제사(祭祀), 미사, 기도(祈禱)하라고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명예, 재물, 영광을 위한 삶을 살라고 유혹(誘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복(福)인 하늘의 용서, 자유, 의(義), 안식, 영원한 생명인 구원(救援)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독서(1사무18,6-9) 6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이고 군대와 함께 돌아오자,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나와 손북을 치고 환성을 올리며, 악기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면서 사울 임금을 맞았다. 7 여인들은 흥겹게 노래를 주고받았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8 사울은 이 말에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리니, 이제 왕권 말고는 더 돌아갈 것이 없겠구나.” 9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다.
=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크게 칭찬하면, 즉 아랫사람을 크게, 높이 말하면 속상해 하며 시기(猜忌), 질투(嫉妬)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성경(聖經)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육(肉)의 본능을 따라가면 영원한 죽음이다.(야고1,14-15) 그러니 용서(容恕), 생명(生命)인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티토3,3-7) 3 사실 우리도 한때 어리석고 순종할 줄 몰랐고 그릇된 길에 빠졌으며, 갖가지 욕망과 쾌락의 노예가 되었고, 악과 질투(시기) 속에 살았으며, 고약하게 굴고 서로 미워하였습니다. 4 그러나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가 드러난 그때,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6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아멘.
= 성령(聖靈)께서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 그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물)로 우리의 죄(罪)를 무죄(無罪)로 선포하신 것이다.
(갈라5,15-26) 15 그러나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한다면, 서로가 파멸할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16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법)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법)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20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21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 육체(肉體)의 본능(本能)들이다. 한 가지라도 있은면 천국(天國)에 못 들어간다.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23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 성령(聖靈)이 주는 열매다. 곧 성령께서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의 그리스도를 진리(眞理)로 입혀주신다는 것이다. 교회의 몸,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속, 그 사랑으로 다시 살리신다는 것이다.
24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25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 성령의 법인 그리스도의 피, 그 하느님의 새 계약으로 거저 주시는 하늘의 용서(容恕), 의(義), 자유(自由)를 살자는 것이다. 믿자는 것이다.(로마8,1~) 그래서~
26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시비하지 말고 서로 시기하지 맙시다.
=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로 거저 받은 용서, 의(義)를 믿는다면 절대 잘난 척, 시기(猜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도리(道理)인 이웃사랑 역시 척,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진실(眞實)된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호자이시며 능력의 성령님!
시기 질투로 파멸하지 않게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대속, 그 사랑에 취해 치유의 삶을 살게하소서. 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의 말씀으로 서로 용서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